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우울증 환자를 어떻게 도와야 할까?"
가장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우선 우울증 환자는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아픈 환자는 깁스를 하고 있거나, 상처가 보이거나, 아픈 부분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울증 환자는 가족이 아닌 이상 우울증 환자인 것을 알기 어렵다.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도 속사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 환자의 증세가 밤에만 심해지는 경우가 있고, 가시적으로 상처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아픈 사람보다 동정심을 갖기가 더 어렵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본인이 아프다고 큰소리쳐도 그 고통의 크기가 잘 가늠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네가 뭐가 아픈데? 누구나 사람은 우울할 때가 있어'라고 고통의 깊이를 지레 짐작해 버리고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따라서 우울증 환자에게 우울증이 별거 아닌 것처럼 대하는 것은 더욱더 환자에게 상처가 된다. 절대 본인이 나약해서 증상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너보다 더 우울한 사람도 있어" 혹은 "뭐가 그렇게 우울해, 다른 사람들도 더 우울해"와 같은 말을 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과 그냥 "우울함"의 차이를 확실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우울증은 일종의 감기 같이 일시적으로 기분이 다운되는 상태가 아니다. 자신이 뇌를 컨트롤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아픔으로 호르몬의 불균형이 지속되는 상태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기분을 조절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나는 우울증으로 자살한 연예인 기사를 접하고 "뭐가 그렇게 우울하지, 나도 가끔 우울한데"라고 웃으며 넘겨버리는 동료의 얘기를 옆에서 들은 적이 있다. 마음이 착잡하고 속상했다.
우울증은 기본적으로 우울증에 해당하는 증상 5가지 이상이 2주 연속으로 지속되어야지만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PsychiatricAssociation)가 2013년 개정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DSM-5)에 따라 우울증으로 진단받을 수 있다.
두 번째, 우울증 환자가 우울함의 극에 달했을 때 그 어떤 부정적인 말도 환자에게는 부정적인 소리로 들리기 때문에 절대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질러서는 안 된다. 우울증 환자는 이미 본인의 감정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별거 아닌 자극에 큰 반응을 보이기 쉽다. 일례로 나는 우울증이었던 언니의 차에 대해 별생각 없이 차가 별로 안 좋다는 식으로 지나가는 말로 한 적이 있다. 그 후 몇 년 후 기억도 나지 않던 나의 발언에 갑자기 언니가 자제력을 잃고 화를 내며 그때 나의 말이 상처가 되었다고 계속 나에게 맹공을 퍼우었던 기억이 있다. 우울증 환자는 보통 예전에 상처받았던 많은 기억을 지속적으로 끄집어내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계속해서 사과를 요구한다. 진심 어린 사과를 해도 우울증은 해소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인지적 부조화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겪었던 일과는 다르게 기억이 왜곡되어 계속해서 그 일을 사실로 믿는 경우도 다반수다. 이럴 때 일반 사람들은 우울증 환자를 이성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고, 받아주기 힘든 상태가 된다. 그럴 때마다 화도 나고 짜증이 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를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라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3시간마다 잠에서 깨고 울고 보채는 신생아에게 우리는 울고 보채고 괴롭힌다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한 너그러움과 인내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다.
그렇다면 우울증 환자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절대적인 지지와 상처에 대한 공감이다. 우울증은 자신이 뇌를 컨트롤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아픔으로 호르몬의 불균형이 지속되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 상처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감과 지지가 필수적으로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상처로 얼룩진 마음이 조금씩이라도 미약하게나마 회복되지 않을까?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난 너를 이해해... 네 말이 맞아... 네가 아프고 힘들었겠다. 이런 말로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지는 못하겠지만 해줘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이 가장 바라고 필요로 하는 것 그 기저에는 아픔에 대한 공감이 있지 않을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공감해 주는 마음에서 사람들은 위로를 얻는다. 우리의 뇌 속에는 "거울 신경"이라는 것이 있다. 행동 이해, 모방, 의도 이해, 공감 등의 역할을 하는 신경세포이다. 말 그대로 누군가 어떠한 행동을 하면 우리가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거울처럼" 타인의 행동을 모방할 수 있게끔 하는 신경 세포가 그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공감은 영어로 Empathy로 감정을 의미하는 라틴어 pathos에 이입한다, 들어간다는 뜻의 어간 "in"의 합성어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나의 감정처럼 이입해본다는 뜻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의 궤적과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을 나처럼 이해하기란 사뭇 쉽지 않다. 그래도 조금의 연민을 가져보자. 언니가 아팠던 그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스스로 상기시키려고 무던히 노력한 것은 "인간은 연민을 느낀다"라는 사실이었다. 나와 다른 피부색, 신념, 사상, 정치적 색깔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거울처럼"은 어렵겠지만 공감하려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조금 더 따듯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