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이 지나간 자리에서

조용해서 더 선명해지는 풍경

by 빛나볼게요

요즘 우리 집은 참 조용하다.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그리고 제법 오래 머물러주는 평화다.


주말이면 남편과 아이가 군말 없이 대청소에 나선다.
청소기를 돌리는 소리, 걸레 짜는 물소리,
그 사이사이 들려오는

"여기 먼지 많아!" "와, 내가 청소 잘했지?"
그 모든 소리가 참 듣기 좋다.


가끔은 셋이서 보드게임을 펼쳐놓고 깔깔대며 웃는다.
누가 이기고 지는지보다, 누가 더 우기고 웃기는지가 더 중요한 시간.
그 웃음소리 속에서 나는 한 박자 늦게 따라 웃는다.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오래 기억해 두려는 마음으로.


평일엔 각자 할 일을 하며 조용히 하루를 보낸다.
남편은 분리수거를 하러 나가고,
아이도 제법 조용히 앉아 숙제를 한다.
나는 틈틈이 글을 쓴다.
키보드 두드리는 내 소리가 집 안에서 제일

큰 소음일 만큼, 고요한 시간이다.


이렇게 각자의 시간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흘러가는 하루.
겉으론 조용하지만,

안에서는 분명 다들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인지 문득,

이런 평화는 나만 느끼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혹시 나만 이 고요함에 감탄하고,
나만 괜히 조심스럽게 숨을 죽이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나는 요즘이 참 좋다.
아무 일 없는 날들의 반복이 주는 안정감.
누구 하나 삐걱거리지 않고,

나도 무너지지 않고 흘러가는 하루하루.
그런데 아주 가끔, 마음 한쪽이 쿡 찔린다.
‘이런 날들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언제 다시 예고 없이 뭔가 일이 생기면 어쩌지?’

불안은 늘 조용히 뒤에 따라온다.


그렇다고 지금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나는 이 평화가 너무 소중하고,
오히려 이런 날들이 있어야 다음 고비도

견딜 수 있다는 걸 안다.


어릴 땐 잔잔한 날이 지루했는데
엄마가 된 지금은 그런 날들이 참 고맙다.
큰일 없이 넘어가는 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내 기분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지나가는 며칠이
얼마나 큰 회복인지를
이제는 알 것 같다.


고요한 날엔 생각이 더 잘 들린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생각보다 꽤 괜찮게
엄마 노릇을, 아내 노릇을, 나 자신으로서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다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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