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품에서 오래오래

작은 손에 담긴 무한한 사랑

by 빛나볼게요

부쩍 더워진 날씨.
집에만 있자니 답답하고, 나가자니 덥다.
뒹굴거리며 TV만 보던 아이의 모습이 괜히

신경 쓰인다.

"엄마랑 동네 한 바퀴 돌까?"
슬쩍 말을 걸어본다.

보통은 “그래!” 하며 잘 따라나서던 아이가

오늘은 망설인다.
덥기도 하고 귀찮은가 보다. TV에 눈을 떼지 않는다.

"문구점도 들르고, 카페도 가볼까~?"
아이의 마음을 흔들어보려 살짝 덧붙여본다.
그제야 "좋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제 이 정도는 해줘야 움직일 나이가 된 걸까.

그렇게 우리 둘, 목적지 없이 동네 한 바퀴를 나선다.

“문구점 먼저 가자!”
이런 약속은 까먹지도 않고, 먼저 휙 달려간다.
뒤따라 문구점에 들어서니,

아이는 진지한 얼굴로 수십 번은 돌며 물건을 고른다.
고민 끝에 꺼내든 건, 오백 원짜리 지우개 하나.

집에 넘쳐나는 게 지우개지만,
문득 나도 어릴 적 그랬던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 눈엔 다 똑같아 보여도,

내겐 전부 다른 게 학용품이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기분 좋게 계산한다.
작은 지우개 하나 들고 좋아하는 모습이 참 귀엽다.


다시 뜨거운 햇살 아래 걷는다.
볼이 빨개진 아이가 말한다.
“엄마, 카페도 가기로 했잖아!”

또 잊지 않고 기억한다.
좋아하는 음료가 있는 카페로 성큼성큼 앞장서는 아이.
주문을 마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가장 잘 드는

자리를 찾아 앉는다.
하지만 나는 딸아이를 일으켜 다른 자리로 옮긴다.

땀이 식으며 바로 감기에 걸리곤 하니까.
아직은 내가 챙겨야 할 게 많은 내 아기니까.

언젠가 이런 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겠지.
그게 편해질까, 서운할까.
요즘은 가끔 그 둘 사이에서 흔들린다.


자리에 앉자, 아이가 말한다.
“엄마, 있잖아~”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귀가 슬슬 쉬고 싶어진다.

"응~ 알았어. 엄마 커피 좀 마실게.
엄마 핸드폰으로 놀고 있을래?"

요즘 아이가 푹 빠진 심리테스트를 켜주고,
나는 옆자리에서 커피를 마신다.
조그만 손으로 질문을 읽고 꽤나 진지하게

대답을 써내려가는 모습이 그저 귀엽다.

마지막 문항이 끝나고,
‘소원을 적어보세요’라는 화면이 뜨자
아이는 내 눈치를 본다.
그리고는 손으로 가리며 조심스레 써내려간다.


‘엄마랑 죽지 않고 평생동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순간, 마음이 묘하다 그냥 엄청 좋으면서
행복감인지 감동인지 모를 벅참이 차오른다.

이 아이에게 나는 아직도 세상의 전부구나.
나는 가끔 내 모성애를 의심해본 적도 있는데,
내 아이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나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있었구나.

조그마한 그 한 문장에
내가 지금 얼마나 소중한 시간을 살고 있는지

또렷하게 각인된다.


말없이 지켜봐주고,
그 소원은 모른 체해주기로 한다.


그러다 문득,
나 어릴 적에도 비슷한 소원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잊고 살았던 그 순수한 바람.
그 시절의 나를, 커가는 딸을 통해 다시 만날 때면
가끔 서운했던 감정들, 외로웠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내 아이에게만큼은 그런 감정 대신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을 안겨주고 싶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써내려가는 책 참 잘 지은 제목같다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엄마’


엄마로 사는 나에게 가장 큰 위로이자,
가장 큰 행복인 내 딸.

이전 11화소란이 지나간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