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젊은 날에 들었던 노래를 유튜브로 찾아서 가끔 듣곤 한다.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평소에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던 일련의 사건들이 마치 최근에 일어난 것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기억이라는 게 참 희한한 것이 뭔가 그것을 불러올 촉발제(trigger)가 있으면 그간 켜켜이 쌓인 시간의 먼지를 걷어내고 그 안에 감춰진 부드러운 속살을 보여준다. 대학 입학시험을 망치고 며칠 동안 잠만 잤던 시절,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했던 순간, 어느 봄날 한낮, 막걸리 서너 잔에 취해 휘청거리다가 문득 올려다본, 한없이 빙글빙글 돌던 파란 하늘, 돈 때문에 부부싸움을 한 후 아버지의 낡은 가죽 허리띠로 머리를 질끈 동여맨 채 누워있던 어머니의 뒷모습, 아프다고 징징대던 아이를 등에 업고 동네병원을 향해 종종걸음치던 모습.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았고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저 나는 기억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내가 대학교 4학년일 때 대구 시내에는 ‘록카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페라고 해서 커피나 음료를 파는 곳은 아니었고 술을 마시면서 음악을 듣고 춤을 출 수 있는 술집이었다. 춤을 춘다고 해서 무대가 있는 건 아니었다. 카페 손님들은 술을 마시다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었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에는 꽤 넓은 공간이 있어 춤을 춘다고 해서 옆자리의 손님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지금의 시선으로 록카페 안을 들여다본다면 약간 괴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머리를 사정없이 앞뒤로 흔들며 춤을 추다니! 나이트클럽도 아닌데 뭔 일인가 싶었을테다.
록카페라는 이름처럼 카페에서 나오는 음악은 강렬한 비트의 록(rock)이었다. 나 역시 록 음악을 즐겨 들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얼터너티브나 프로그레시브 계열의 록이었다. 그런데 내가 친구들과 자주 갔던 록카페에서는 주로 헤비메탈 음악을 틀어주었는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곳은 내 친구 A가 좋아하던 장소였다. A는 기분이 좋거나 슬프거나 우울할 때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갔고 거기에서 술을 마시는 대신 춤을 추었다. 170cm가 넘는 키에 마른 체형을 가진 그녀의 춤사위는 뻣뻣한 막대 인형 같았고 우리는 그녀의 동작에 자주 웃음을 터트렸다. 돌이켜보건대 아마 실제로는 그녀의 춤이 우스웠다기보다는 우리가 술에 취해 기분이 한껏 들떴을 확률이 높았다. 카페 안은 시끄러운 음악 소리 때문에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으므로 A를 제외한 우리는 싼 생맥주를 시켜 연신 들이켰기 때문이다.
A를 비롯해 한동안 몰려다녔던 친구들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는 진로가 달라지면서 자연스레 하나둘 뿔뿔이 흩어졌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열심히 들락거렸던 록카페에도 발길을 끊게 되었다. 마치 우리들의 무관심이 무슨 시발점이라도 된 양 우후죽순 나타나던 록카페도 어느새 거리에서 사라졌다. ‘록카페, 헤비메탈, 친구’라는 해시태그는 나의 기억 저장고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전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 때문에 나는 이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게 되었다. 얼터너티브 록밴드인 R.E.M.의 “Losing My Religion”은 술에 잔뜩 취한 내가 헤비메탈만 고집하던 록카페 주인에게 틀어달라고 자주 졸랐던 노래였다. 팝 음악에 대해 나름의 일가견이 있던 록카페 주인은 애초에 돈 때문에 시작한 장사가 아니라며 나의 요청을 거절하곤 했는데 나 또한 술에 취하면 주정(酒酊)이 만만찮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십여 분간의 실랑이를 벌이다가 주인은 “그래, 나 또한 이십 대를 거쳤건만 너희들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지”라는 위로를 건네며 결국 나의 노래를 틀어주었다. 그 주인은 이제 팔순 노인네가 되었을 것이다. 나처럼 그도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기억창고를 찾아 지난날을 떠올리다가 잠시나마 우리를 생각해낼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