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에 입학하고 3~4일쯤 되었을까.
하나만 낳겠다고 했던 엄마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에 못 이겨
저 멀리 배를 타고 가 약을 지어오셨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아들을 낳았다.
이건 우리 집의 전설로 남아 있다. ㅋㅋ
남동생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나 시작은 이 말이다.
“너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저 멀리 배 타고 가서…”
전라도에서 배를 타고 갈 정도면
정말 큰맘 먹은 일 아니겠는가.
그만큼 간절히 바랐던 거겠지.
내가 여덟 살 무렵이었는데,
그 시절에는 형제 터울이 이렇게 많이 나지 않았다.
일곱 살 차이면 정말 엄마가 둘째를 낳을 생각이 없었던 거다.
엄마는 아이 낳고 키우는 게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나는 8년을 외동으로 살았지만,
질투 1도 없이 내 동생이 너무 예뻤다.
동생이 태어나던 날 저녁,
엄마가 있던 병실은 온돌마루였다.
온 가족이 그 병실에서 함께 잠을 잘 수 있었다.
작고 예쁜 아기를 보고 나는
당장이라도 집에 데려가고 싶었다.
“아기야, 우리 집에 오면 내가 진짜 잘해줄게.”
그게 내 첫 번째 다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누나 엄마’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첫 육아 전쟁, 아니 독박 육아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