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
숲에 녹음(綠陰)이 짙어지기 전
계절은 작은 전조를 흘린다.
나무와 풀들은 겨우내 묵혀온
차가운 기운을 슬며시 내어 놓는다.
언 땅을 뚫고 나온 연둣빛 싹 하나,
바람 따라 흔들리는 이름 모를 풀잎들.
나는 그 시점을
'녹음(綠陰)이 시작되는 자리'라고 부른다.
녹음을 채집한다는 건 그 찰나의 신호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식물 채집은 어쩌면, 기억을 수집하는 일이다.
잠깐 멈춰 서서, 발끝에 스친 들풀의 이름을 떠올려보는 것.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 누군가 떨어뜨리고 간 이파리 하나를 주워 손안에 담는 것. 그 순간의 온도와 향기까지 함께 수집한다.
잠깐 멈춰 서서 무언가를 수집한다는 건 결국, 놓치고 싶지 않은 감각을 붙드는 방식이다. 그렇게 수집된 시간들이, 어느새 내 하루의 중심이 되었다.
아이를 돌보고, 식사를 차리고, 청소를 하고, 일을 하고… 매일 반복적으로 소모되는 시간들 속에서 어느 날 문득, 내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녹음(綠陰)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식물 하나, 색 하나, 냄새 하나가 마치 내 감각을 다시 켜주는 신호 같았다. 작고 사소하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것들. 그 안에서 나는 나를 다시 찾아간다.
채집(collecting)은 결국, 알아차림(awareness)의 기술이다.
매일 걷는 익숙한 길 위에서 나는 다시 ‘낯섦’을 발견한다. 어제와 같은 길인데, 오늘은 조금 다르다. 그 작은 다름을 알아차리는 순간, 나는 비로소 ‘지금’을 살아내고 있다는 감각을 얻는다.
내가 딛고 있는 땅과 계절,
그리고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일.
이 모든 것은 녹음이 시작되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녹음(綠陰)집 | Nokeumjip
A Life of Green Mo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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