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되니 친구들이 단풍놀이 간다고 야단이었다. 정확히 언제 어디쯤에를 가야 절정인 단풍을 볼 수 있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단풍놀이를 이 나이가 먹도록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벚꽃 구경하러 간 적은 있어도 단풍 구경하러는 왜 한 번도 갈 생각을 못했을까? 이제 조금 있으면 단풍 다 떨어져서 지금이라도 보려면 부지런 떨어야 한다며 관심이 있다면 어디 어디를 언제쯤 가면 된다고 일러주는 친구들. 친구들과 얘기하다 생각했다. 내가 정말로 여유 없이 살고 있었구나라고. 몸이 좋지 못하신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보고 싶어 하셔서 격주로 양가를 들여다보느라 주말을 보내고 그게 아니면 큰애 주말 야구반 훈련에 픽업을 한다. 그것도 아닐 땐 아이들이 번갈아 아프고, 상황이 괜찮았어도 어린 둘째를 데리고 나들이를 하는 것이 극기 훈련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힘들었던지라 여행, 나들이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10년도 더 전에는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허무함에 시달렸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거라며 남편이 시간만 나면 주말을 껴서 휴가를 내고 카드를 긋더라도 여행을 다녔다. 다녀와서 두어 달 허리띠 좀 졸라매더라도 그게 좋았다. 이런 시간을 보내려고 살아간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다 부동산 투자에 눈을 뜨면서 무리를 했고 둘째도 태어나면서 가벼운 여행조차 부담이 되었다. 사람은 안 바뀐다고 누가 그랬던가. 경험으로 인해서 사람은 전과는 같은 존재일 수가 없다. 그러니 후회도 하고 바라기도 하면서 이렇게 어수룩하게 우왕좌왕 살아가는 것이겠지. 돈돈하면서 늦은 나이까지 육아에 찌들어 살아온 지 어언 4,5년이 되다 보니 점차 새로움도 없어지고 찌들어가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기력도 없고 뭘 해도 즐겁지가 않았다.
친구가 말했다. ‘애 크면 더 이상 같이 외출하려고 안 할 거야. 큰애 10살이니 고작해야 1,2년이라고. 아이들과의 추억이 너의 추억이 될 텐데, 부모님 찾아뵙는 것도 중요한데, 더욱더 기운내기 위해서라도 아이들하고 근교라도 가서 바람 쐬는 게 좋을 것 같다. 부모님 삶도 삶이지만 니 삶도 중요하잖아.’ 친구들 말에 고무되어 그 주 주말에 단풍을 보러 가기로 했다. 주말에 본가만 다녀와도 피곤해하는 남편에게 외출하자고 하기도 미안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 곧 5살이 될 둘째가 많이 큰 덕분에 마음먹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단풍 구경 가기로!
1시간이 걸려 도착한 곳은 조선, 정조 때 산속에 만들어진 서원. 3백 년도 넘은 보호수 고목의 은행잎으로 인해 온통 노란 세상이었다. 나무 한 그루가 사람을 압도할 수 있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나무의 윗부분은 이미 좀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큰 나무의 반은 노란빛을 띠고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란 비가 내렸다. 은행잎 비가 내릴 때마다 사람들이 내뱉는 환호성, 집에서 접어온 종이비행기를 날리느라 정신없는 아이들, 온통 노란 빛깔 세상을 마주하고 보니 친구들이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는지 알 것 같았다.
3백 년을 살았다는 은행나무 한그루가 내 마음속에 가득 담겼다. 그 단풍이 그 단풍이지 무어 그리 호들갑이냐고 생각했던 나. 내년의 단풍은 올해와 절대 같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올해의 나와 내년의 나는 다를 것이고, 우리 아이들도 내년엔 올해의 아이들이 아닐 것이다. 내년엔 첫째가 같이 오기 싫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렇게 하늘을 향해 뻗어가고 있는 엄청난 가지만큼이나 땅 밑으로 밑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엄청난 뿌리를 내리고 여기 이렇게 3백 년 동안이나 그 자리에 서서 매년 오가는 사람들을 이렇게 지켜보고 있었겠지. 그 시간 속에서 단 한 점에 불과한 2022년 가을의 우리였겠지만 나는 내 가슴속에 그 나무를 담으면서 지금 이 순간 세상은 아름답고 나는 살아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나무 아래서 환호성을 지르고 함박웃음을 띠며 그 순간을 어떻게든 잡아보려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우리 가족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던 사람들. 서로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행복해하는 사람들. 고목에게서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받은 것만 같았다. 살면서 나무 한그루를 이렇게 오래 감상하며 즐긴 적이 있었을까?
이런 기분이었지. 새로워지는 기분. 마음이 꽉 차는 이 느낌. 자연 앞에서는 내가 하던 고민과 걱정은 작은 한 점 모래알에 불과할 뿐. 올 때까지만 해도 전날의 말다툼으로 기분이 썩 개운하진 않았지만 이 시간 이 장소에서 같은 마음이 되어 함께 했던 남편, 해가 가기 무섭게 자꾸자꾸 크기만 하는 아까운 우리 아들들과 이 시간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다. 내년 가을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단풍을 보고 있게 될까. 아마 이번 가을과 또 다르겠지. 나이 들어간다며 아쉬워도 이렇게 즐거운 일이 있기도 한다는 걸 기억하자. 너무 착실하게 애쓰며 스스로를 옥죄지 말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수록 숨통 트일 여지도 주면서 살아가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