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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Sep 02. 2024

Last Week in Morgantown

연수가 막바지에 이르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연(試演) 수업과 개별 평가가 잇따랐다. 심신이 지친 상태로 기숙사로 돌아와 침대 위 몸을 뉘면 까무룩 졸음이 쏟아졌다. 저녁때가 되어 힘겹게 눈을 뜨면, 날이 언제 저물었는지  하늘부터 서서히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그런데, Summit Hall에서의 생활은 오히려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익숙해졌다. 무엇보다도, 요일마다 메뉴를 달리하는 Cafeteria의 뷔페가 입맛에 맞기 시작했고, 이름이 뭔지는 모르지만 요리되어 나오는 음식을 보면 먼저 그 맛이 기억났다. 연수 일자가 하루하루 지워지면서, 덩달아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나 가짓수도 하나하나 줄어들고 있었다. 아마, 앞으로 다시는 맛보지 못할 음식이 개중에 섞여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시 말해, 얼른 연수가 끝났으면 하는 마음의 이면(裏面)으로는, 지난 일들에 대한 그리움의 싹 이미 돋아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연수를 하면서 가장 의미 있었던 일 중 하나가 Morgantown의 현지 고등학교를 방문한 것이다. 학교를 견학(見學)하는 일정이 처음 알려졌을 때는 그저 학교시설이나 둘러본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운동장 주변의 아름드리나무 아래서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브라스 밴드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 키보다 콘트라베이스 튜바를 비롯하여 여러 악기에서 반사된 아침햇살에 눈이 부셨다. 호흡을 툭툭 불어넣어 소리를 내관악기(管樂器) 특유의 진동음이 교정(校庭) 구석구석을 어루만지고 있는 듯했다.


나무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고 있던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우릴 지켜보았다.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지휘봉을 들고 있는 선생님이 다가와서는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그런데, 밴드부 사이사이의 몇몇 학생들은 눈에 띌 만큼 옷차림이 유별났다. 밴드연주에 맞춰 응원 수술을 위아래로 흔들며 연습 중이던 치어 리더들이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부러운 것은 인조잔디가 푸릇푸릇하게 깔려있는 운동장이었다. 한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따란 운동장의 양쪽 끝에는 골대가 아닌 폴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바로 럭비 전용구장이었다. 지금 운동장 위에서는, 코치의 구령(口令)과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몇몇 선수들이 맨몸으로 구간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발랄한 구호(口號)와 함께 응원에 힘을 쏟고 있는 치어리더와, 이에 화답(和答)이라도 하듯 악기를 위아래로 흔들며 연주하고 있 밴드를 보고 있자니 마치 한 편의 영화 속 장면 같았다.


교감 선생님의 안내를 따라 교무실 안으들어다.  방학중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출근한 선생님이 드물다. 보충수업과 자율학습 지도를 위해 방학이라도 근무를 해야 하는 우리나라와 사정이 달랐다. 학교의 제반 시설과 현황에 대한 브리핑이 있고 나서 질문시간이 주어졌는데, 대부분 자율학습과 방학 중 보충수업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질문이 교감 선생님에게 생뚱맞게 들린 것처럼 그의 답변 역시 우리로서는 전혀 밖이었다. 말하자면, 학생의 대학진학을 왜 학교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책임지려고 하는가였다. 그러면서, 교감 선생님은 우리의 이해를 돕기라도 하려는 듯 교무실 옆 도서관으로 안내했다.

 

그 시간, 도서관에서는 몇몇 학생들 책을 펼치 공부를 던 중이었다. 대학진학을 위해 SAT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이었는데, 잠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주어졌다. 그런데, 대화 막바지에 이르러 얼굴 표정을 보니, 이들 역시 우리가 던진 질문에 대해 답을 하기가 아주 곤혹스러운 듯했다. 대학진학을 위한 과정결과에 대한 책임을 당연히 학생 본인이 져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교 본연의 역할은 학업 성취도에 따른 내신관리를 엄정히 하면서,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자율활동과 동아리활동, 봉사활동과 진로활동 등 교과 외 활동을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겨주 일이라 스스로 선을 긋고 있다. 이후, 우리나라 입시 시스템 이와 비슷하게 변화해 모습을 보며 내심 반갑기까지 했지만, 미국과는 달리 책임소재 여전히 학교나 교사에게 치우쳐 있어서, 이를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씁쓸했다.


이날, 현지 고등학교의 시설을 둘러보면서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과도 마주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각자 수강신청한 과목에 따라 매 교시 교과교실로 이동해서 수업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교실에는 학반이 아닌 사회교과실, 과학교과실, 수학교과실, 어학실 등 교과별 팻말이 출입문에 붙어 있었다. 방학이라서 교실은 하나같이 출입문이 잠겨 있었는데, 창문이 달린 교실문은 철망까지 쳐져 있어 외부로부터의 침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아마도 교과교실에 설치되어 있는 다양한 시설물 때문인 듯했는데, 각 교실마다 당시로는 고가(高價)의 펜티엄 컴퓨터가 책상 당 한 대씩 비치(備置)되어 있었다.


때마침, 사회교과실 창문활짝 열려있었는데 학생들  어울려 각자 뭔가를 정성 들여 매만지고 있었다. 교실 안을 가만 들여다보니, 알코올을 적신 면봉으로 키보드 자판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찌든 때를 닦아내있었다. 방학을 이용해서 학내 봉사활동에 나선 학생들이었다.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벽면 가득히 휘갈긴 낙서가 인상적이었던 소강당에서는,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연극 연습에 몰두하던 학생들도 있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들은 동아리 활동을 위해 등교한 학생들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WVU(웨스트 버지니아 대학)의 기념품 상점에서 캐셔로 일하고 있 여학생이나, 의과대학에 진학하려고 죽은 사람 염(殮)봉사활동에 나선 수학과 교수님 딸, 건축학과로 진학하기 위해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 알바를 하고 있 학생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대학의 스펙을 쌓기 위해 방학중에도 열심히  있었다. 아마도 자기소개서를 쓸 때, 이러한 경험들은 전체 줄거리의 골격(骨格)잡아가는데 유용한 자료로 쓰일 것이다.


견학을 끝마치고 나서 기숙사로 돌아오고 난 후에도 교감 선생님이 우리에게 되물었던 말이 계속 목덜미를 조였다.

 

"아니, 학교에서 학생들을 자율이란 명목으로 밤 10시까지 공부시키고, 방학중에도 학생들을 학교로 불러낸다면, 선생님이 100% 대학진학을 책임준단 말입니까? 미국에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에요. 학생이나 학부형들의 항의를 감당이나 할 수 있겠어요? "


마지막 주 화요일 저녁에는 WVU의 교수진을 위해 우리 연수단이 마련한 Korean Dinner PartySummit Hall Cafeteria에서 열렸고, 그다음 날인 수요일에는 과목별 수업이 모두 났다. 목요일에는 강좌별 평가와 당당 교수와의 대담이 이어졌. 특히 디너파티에서는 교수님이 커플로 한복을 입고 자리를 함께 해서, 우리 연수단을 감동시켰다. 강좌별 평가를 할 때 연수단은 감사의 말로, 대학 교수진은 당부의 말로써 서로 덕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연수 마지막 날인 금요일에는 우리가 Orientation을 받았던 장소에서 Graduation Ceremony가 있었다. 돌이켜 보니, 한 달간의 연수가 마치 꿈만 같아서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 오늘밤이 지나면 피츠버그 국제공항으로 가서, 마지막 주말 행사로 예정된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을 위해 버펄로로 떠나게 될 것이다.


지난 한 달간 머물렀던 Summit Hall의 이모저모를 마음속에다 담았다. 처음 방을 배정받아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 건물 전체가 시스템 에어컨디셔너로 냉방되는 사실을 알고는 정말이지 어안이 벙벙했다. 창 아래로 유유히 흐르던 해 질 녘 Monongahela 강의 검붉은 물결도 쉽사리 잊히지 않을 풍경이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좀처럼 잠들지  Summit Hall의 마지막 날 밤은, 이런저런 생각이 쌓였다가 허물어지기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연습중인 브라스 밴드와 단원들
치어리더들과 함께
운동장 / 도서관 / 낙서로 가득한 소강당 벽면
소강당 안
과목별 교과교실
개인 사물함
Korean  Dinner Party에서 인사하는 한복 입은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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