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진 Sep 08. 2024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한 달간의 연수를 모두 끝내고 나니, 마치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몸과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리고, 내일 아침이면 버펄로를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이동을 해서 본격적으로 미국 서부지역을 일주일 간 여행하게 된다. 시카고에 처음 발을 딛고 나서 피츠버그와 필라델피아, 워싱턴 D.C. 그리고 뉴욕과 버펄로까지 미국 중동부지역의 주요 대도시들은 얼추 둘러보았는데, 연수 중 금요일 오후부터 주말까지 어지는 2박 3일의 휴식일이 가까운 도시로 여행하기에는 정말 안성맞춤이었다.


호텔로 돌아와서 바로 잠자리에 들기에 아직은 여름밤이 길었다. 정말이지, 낮에 본 나이아가라 폭포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시 더위도 식힐 겸, 의기가 투합된 선생님들과 함께 생맥주를 마시러 갔다. 해 질 녘이면 금세 인적이 끊기는 대도시와는 달리 버펄로는 밤이 이슥할 때까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대학가에서 2달러 안팎이던 생맥주가 이곳에선 최저 가격만 하더라도 5달러였는데, 생맥주가 브랜드별로 가격이 천차만별(千差萬別)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우리가 앉은 노천(露天) 카페 앞으로는, 오늘 같은 무더위에도 아랑곳없이 가죽옷을 입고 있거나 각양각색의 요란한 옷차림을 한 젊은이들로 북새통이었다. 길게 이어진 줄이 막다른 곳에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덩치 큰 사내가 출입문을 떡하니 막고  있었다. 총기 소지가 합법적인 나라이니, 혹시 모를 사고를 미연(未然) 방지하려고 입장하는 사람을 상대로 몸수색하고 있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하드락 카페 앞 풍경(珍風景)이었다. 사실,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주위 사람 행색(行色) 지레 겁을 먹고 돌아선 길이었다.


늦은 밤까지 짐정리를 했다. 내일부터는 서부지역의 여러 도시로 돌아다녀야 했기에 갈아입을 옷을 중심으로 캐리어를 재차 정리했다. 선물로 산 청바지와 손톱깎기, 영양제, 다시는 꺼낼 필요가 없는 물건들을 아래에 고 차곡차곡 옷을 는데, 출발할 때 면세점에서 산 담배가 몹시 눈에 거슬렸다. 돌아가서 가까운 선생님에게 나눠주려고 두 보루를 샀지만 한 보루는 연수 중에 이미 피워버렸고, 남겨놓은 한 보루도 박스의 귀퉁이가 사방으로 눌려 볼품이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사도 되는데 지나친 욕심이 화를 부른 경우였다. 결국, 박스를 헐어서 내가 피울 양만 남기고 나머지는 동행한 선생님들에게 인심을 쓰고 말았다.


미국 동부와 서부는 3시간의 시차(時差)가 난다. 버펄로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비행기로 여섯 시간이 걸릴 만큼 미대륙을 횡단하는 장거리 여행인데, 세 시간이나 시간을 거슬러 가게 된다. 아침 7시에 버펄로 공항을 출발하면 오전 열 시경에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게  것이다. 연수단 중 절반은 뉴욕으로 가서 그곳에서 귀국하게 되니, 서부지역으로 함께 여행할 사람이 이제 10명으로 줄어들었다.


금문교(金門橋)는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의 하나로, 철심으로 속을 가득 채운 케이블로 다리의 양쪽 끝에 있는 두 개의 주탑(主塔)을 연결한 현수교(懸垂橋)이다. 당시 건축기술로는 시공(施工)의 어려움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샌프란시스코 (灣)의 아름다운 경관과 조화를 이루도록 미학적(美學的)으로 설계가 되어 있어, 세계적인 관광지로도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케이블을 절삭(切削)한 단면(斷面)과, 두 개의 주탑이 배경으로 나오도록 사진을 찍어 기념으로 남겼는데, 이 사진은 20여 년 뒤 개정(改正) 영어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는 금문교를 설명할 때 요긴한 자료로 사용되었다.


금문교를 둘러보고 나서 이동한 곳은 알카트라즈 섬이 한눈에 보이는 샌프란시스코 항이었다. 그런데, 부두의 공터에서 아주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바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야바위였다. 플라스틱 맥주 박스를 여러 으로 포개 테이블을 만들고, 그 위에 간장 종지 세 개를 엎어 놓았다. 야바위꾼이 콩알이 들어간 간장 종지와 비어 있는 다른 간장 종지를 잽싼 손놀림으로 이리저리 바꿔치기해서, 콩알이 들어 있는 간장 종지를 찾아내면 판돈의 다섯 배를 손님에게 부풀려주는 야바위였다. 관광객이 몰려들도록, 돈뭉치를 높이 쳐들고는 자랑하 고함을 질러대는 흑인 청년들이 야바위꾼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교사 초임(初任) 시절 여름방학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에, 대구의 동부정류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야바위가 벌어졌다. 다만, 간장종지가 컵으로, 콩알이 주사위로 바뀐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다. 호객꾼들이 돈을 잃고 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스무 살 안팎의 청년이 판돈을 걸더니 두어 판을 땄다. 서너 판이 더 돌면서 본전에서 돈이 축나기 시작하 청년은 판돈을 더욱 키웠고, 이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도 덩달아 늘어났다. 결국, 안주머니 속 뭉치돈까지 꺼낸 끝에 빈털터리가 된 청년은 얼굴흙빛으로 변했다. 무릎을 꿇으며 다문 얼마라도 돌려 달라 호소하는데, 어림 반푼어치도 었다. 주변에 서청년 서너 명이 마구 발길질을 해대자 청년의 얼굴이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고 나서 야바위꾼들이 판을 거두더니, 인파(人波) 속을 헤집고 잽싸게 달아나 버렸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에게 청년이 밝힌 바로는, 대학 등록금을 내려고 시골에서 막 올라오참이었다고 했다.


우리 일행을 향하던 야바위꾼의 눈초리가, 손을 주머니넣고 움찔거리고 있는 중국인에게로 옮겨갔다. 그럴 때마다 흑인 삐끼가 판돈을 걸어 돈을 따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그럼에도, 야바위꾼 앞에는 여전히 100달러짜리 지폐가 수북이 쌓여 있었, 이를 곁눈질로 바라보는 중국인의 눈에는 탐욕이 가득했다. 뻔히 보이는 속임수를 두고 우리끼리 뭔가 이야기를 나누자 주변에 있던 청년들의 인상이 갑자기 험악해졌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중국인이 잽싸게 주머니 속에서 돈을 끄집어내더니 흑인 삐끼가 돈을 태운 곳에다 바로 몰빵을 했다. 얼핏 봐서도 100달러짜리 수십 장은 넘어 보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희희낙락(喜喜樂樂)하며 이를 구경하던 우리도 어안이 벙벙했다. 정말 기막힌 타이밍이어서, 도박이라면 죽고 못 산다는 중국인에 걸맞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엎었던 간장 종지를 뒤집자 그 속에 있어야 할 콩알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간장 종지를 이리저리 옮기는 과정에서 바뀌었는지 아니면 간장 종지를 들추는 찰나 감쪽같이 콩알을 빼돌렸는지 알  없지만, 야바위꾼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라 그저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덧붙이자면, 넋이라도 잃은 중국인양손이 사시나무 연신 떨리고 있었다. 관광객들 뒤편에서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야바위꾼과 흑인 청년들은 순식간에 맥주박스를 거두더니 인파 속으로 득달같이 달아나 버렸다. 정말이지,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매 한 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알카트라즈는 샌프란시스코 해안에서 약 2.4km 떨어진 곳에 있는 작지만 아름다운 섬으로, 한때 전설적인 갱 알 카포네와 흉악범 조지 켈리를 수감(收監)했던 감옥으로도 유명하다. 부두에서의 작은 소동을 뒤로하고, 바다 너머로 바라다본 알카트라즈는 얼핏 보기에는 평온했다. 알카트라즈를 감옥으로 사용한 이유는 거친 해류가 섬 주위를 감싸고 고, 해수의 수온이 낮은 데다 수형(受刑) 시설까지 엄중하게 관리되어 죄수들의 탈출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감자들에 대한 지나친 가혹 (苛酷) 행위가 문제가 되어 1963년에 결국 감옥이 폐쇄되고 말았다. 1973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이 되어 섬을 찾는 사람들로 넘쳐나면서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특히 1996년 7월 중순, 알카트라즈를 배경으로 숀 코넬리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영화 '더 록(The Rock)'이 개봉되었는데 우리 연수단이 미국으로 온 지 일주일만의 일이었고, Morgantown의 영화관에서도 개봉이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흐르고 난 후였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둘러본 롬바드 스트리트(Lombard Street)도 인상적이었다. 가이드 말에 따르자면, 가파른 언덕을 따라 이어지는 급커브는 영화와 드라마의 추격씬이나 로맨틱한 장면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주변 풍경이 몹시 낯익어 보였다. 게다가, 건물 곳곳에 내걸린 무지개 깃발('LGBTQ플러스'를 상징)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이렇게 깃발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리라곤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성적 소수자(少數者)인 L(lesbian, 여성 동성애자) G(gay, 남성 동성애자) B(bisexual, 양성애자) T(transgender, 성전환자) Q플러스(queer or questioning, 다양한 지향주의자 혹은 성정체성 탐구 중인 자)가 거주하는 곳임을 나타내기 위해 문밖에 내건다는 무지개 깃발을,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어딜 가나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명물(名物) 가운데 하나인 차이나타운도 둘러보았는데, 뉴욕이나 Morgantown에서도 이와 비슷한 곳을 방문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그다지 별 감흥(感興)은 없었다. 그보다는 오가는 길을 따라 조성되어 있는 공원이나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린 골든 게이트 파크 박물관이 오히려 더 인상 깊었고 둘러볼 시간이 충분치 않았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여행이 시작되면서 아쉬웠던 점이 하나 더 있었다. 가이드가 안내하는 식당에서는 오로지 한식만 제공했는데, 버펄로에서부터 몇 끼니 째 줄곧 한식만 먹자니 입맛이 금세 바닥이 나버렸다. 다시 말해, 입에 익숙한 맛으로 되돌아가버려 밥맛이 완연하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Summit Hall Cafeteria(기숙사 식당 이름)에 수북이 쌓여 있던 멕시칸윙이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자 입에 금방 침이 고였고, 요일을 바꿔가며 써빙되던 갖가지 파스타와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양갈비나 양고기 꼬지, 안남미(베트남산 쌀)를 버터와 간장으로 볶아놓은 베트남식 볶음밥이나 팟타이(태국 볶음면, 그땐 이름조차 몰랐음)가 새삼 생각이그저 입맛을 다셨다.


요즘 나는, 어디를 가나 현지에서 가장 이름 높은 음식부터 망설이지 않고 주문한다. 다른 나라에 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지난날의 경험에서 배운 것이긴 하지만 이젠 포항 같은 중소도시에서도 다른 나라의 이름 있는 음식을 모두 맛볼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다양한 해물요리와 맛있는 빵으로 이름이 높다지만, 전혀 기억에 남은 게 없다. 문화의 큰 갈래에 속하는 음식 문화를 그 당시 제대로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동부 지역에서는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그다지 계획적이진 않았지만 일단 방문을 하게 되면 그곳 현지인들과 소통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힘은 들었지만, 영어로 말하고 들으면서 의사를 전달하고자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뭔가 뿌듯한 성취감을 느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서부지역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부터 듣는 귀와 말하는 입을 오로지 한국인 가이드에게 의존하게 되면서 영어 자체가 귀찮버거워졌다. 의무적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의 차이가 가져온 무서운 결과였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에 머물 동안, 스콧 맥킨지(Scott Mckenzie)의 노래 'San Francisco'가 한 번도 머릿속에서 지워진 적은 없었다. 비록, 노래가사에서 처럼 머리에 꽃을 아보지는 않았지만.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만약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면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꼭 몇 송이 꽃을 머리에 꽂아보세요

하드락 카페 앞에서
금문교의 케이블 단면
알카트라즈 / 샌프란시스코 거리 풍경 / 차이나타운 타운
골든게이트 파크
골든 게이트 파크 박물관

 'San Francisco' by Scott Mckenzie

https://youtu.be/7I0vkKy504U?si=IqKXYj_JQR7q7wU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