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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Sep 05. 2024

아, 나이아가라!

연수에 참여한 선생님 대다수가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한 달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을 오로지 한 지역에만 머물러야 했기에 입맛에 맞지 않은 현지(現地)의 식단처음부터 고역(苦役)이었다. 첫 주말을 이용해서 필라델피아를 다녀온 후, 한때 항공사의 스튜어드(steward, 남자 승무원) 근무했던 선생님 한 분이 귀에 솔깃한 제안을 해 왔다. Morgantown에 있는 중국 식료품 가게에 가서 우리나라 식재료와 비슷한 야채나 간장 소스를 구입하면 갈비찜을 손수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Morgantown의 Kmart 가전 매장에는 찜기로도 사용할 수 있는 6인용 밥솥이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 Morgantown에고기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정육점이 눈에 띄지 않았다. 미국에선 소비자가 마트를 통해 직접 구입하는 고기가 최고등급이라고 하니, 선생님들이 야식으로 먹어도 넉넉할 만큼 고기를 샀다. 세계 어디를 가든 사람 사는 곳이면 차이나타운이 있다더니만, Morgantown에도 붉은색 간판에 황금색 글씨로 도배하다시피 한 중국인 거리가 있었다. 마침 한국사람도 즐겨 찾는 식료품 가게가 있어서, 쌀을 비롯해 신선한 채소와 함께 갈비찜을 만드는데 필요한 갖은양념을 구입했다. 죽엽청주나 오량액 같은 중국술도 몇 병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아오지 못할 곳임을 뻔히 알면서 어떤 장소를 떠나야 할 때는, 가던 길 멈추고 몇 번씩 뒤돌아 보게 마련이다. 연수를 마치고 한 달간 생활했던 Summit Hall을 떠날 때가 꼭 그러했다. 생뚱맞게, Cafeteria에서 처음 저녁을 먹던 날이 생각났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후각(嗅覺)을 자극하는 낯선 향신료(香辛料) 냄새 때문에 속이 뒤틀렸다. 빵 몇 조각과 수프, 미리 준비해 온 고추장과 건멸치로 첫날 식사를 간신히 때우긴 했지만, 이후부턴 입맛에 맞는 음식 몇 가지를 골라 편식(偏食)을 해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갈비찜이나 에 맞는 한식을 직접 조리해 먹을 기회 틈틈이 갖지 않았었던가! 여러 특별했던 경험들이, 지금 Summit Hall을 떠나려는 순간 주마등(走馬燈)처럼 막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George와 연수 담당 교수들, 그리고 진작부터 눈가가 촉촉해진 백인숙 양의 배웅을 뒤로하고 피츠버그 국제공항으로 가는 승합차에 올랐다.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나 있는 듯, 버스는 천천히 대학 구내를 크게 한 바퀴 돌고는 Morgantown 도심을 지나쳐 고속도로 램프로 들어섰다. 30여분 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이동거리였지만, 한 달 전 이곳에 도착떠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 겪었던 수많은 일 눈에 익숙해진 장소들이 마치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속속들이 눈앞으로 펼쳐졌다.


활주로를 힘차게 벗어난 American  Airlines 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 금세 구름 위로 솟구쳤다. 연수를 마친 마지막 주말을 이용해서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Falls)를 관광하기 위해 버펄로로 가는 여행길이었다. 공항에 도착하면 우리를 안내할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나이아가라 폭포와 서부지역 일대를 관광할 때 가이드해 주기로 여행사와 사전계약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날이 쾌청해서인지 스쳐가는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내려다 보이는 창 아래 경치가 아주 선명했다. 특히 이리호(Lake Erie)의 호반(湖畔)을 따라, 왼쪽으론 호수의 푸른 물결과 오른쪽으로는 성하(盛夏)의 녹음(綠陰)이 끝없이 우거 있어, 과연 오대호(五大湖, the Great Lakes)의 하나로 그 지닌 명성에 어긋남이 없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염소 섬(Goat Island)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큰 폭포인 말발굽 폭포(Horseshoe Falls, 캐나다 폭포)와 미국 폭포(American Falls), 그리고 미국 쪽의 이 보다 작은 브라이들 베일 폭포(Bridal Veil Falls)로 이루어져 있다. 이리호와 온타리오호(Lake Ontario) 사이의 나이아가라 계곡에 위치한 폭포인데, 이정표(里程標)가 가리키는 거리로는 폭포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도로 왼쪽으로 흘러가는 강물의 형태는 그저 물살 빠른 계류(溪流)에 지나지 않았다. 손위동서가 미리 내게 귀띔해 준 말이 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더 높은 산에서 계곡 아래로 떨어지는 일반적인 폭포를 상상하며 물길을 쫒다가, 느닷없이 발아래가  꺼지듯 쏟아져 내리 물줄기에 압도되는데 비해, 그랜드캐년은 황량한 구릉(丘陵) 위로 올라서서 계곡을 한눈에  순간 그만  막히더란 것이다.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는, 이전부터 꿈에서조차 본 적 없는 경관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쪽에서 폭포를 바라볼 수 있는 데크 위에는 세계 곳곳에서 몰려온 관광객들로 북새통이었다. 우리말 소리가 들려 주위를 살피니, 머리가 희끗한 노부부가 반갑게 우리를 반기며 다가왔다. 우리끼리 웃고 떠드는 말소리 속에서 고향말이 들렸다고 한다. 그런데, 오래전에 이민 온 이분들 고향이 포항이라기에 몇 마디 서로 말을 나누다 보니 공교롭게도 교장 선생님의 친사촌 이었다. 세상 좁다는 말을 여기에까지 와서 되뇌게 될 줄 정말 몰랐던 순간이기도 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사이에 두고 미국과 캐나다를 이어주는 다리가 바로 무지개다리(Rainbow Bridge)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보라가 햇빛에 반사되어 곳곳에서 아름다운 무지개를 빚어내는데, 이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무지개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정말로 이름에 걸맞아 보였다. 마침, 오늘은 날도 활짝 개어 물안개 사이로 보이는 무지개가 마치 푸른 하늘로 쏘아 올린 일곱 색깔의 불꽃처럼 보였다. 아울러, 이 다리가 미국과 캐나다 양 국가 사이를 이어주고 있어서, 경치가 더 좋은 캐나다 쪽 폭포를 보러 가기 위해선 무비자이긴 하여도 입국심사를 받아야 했다. 마침 면세점(duty-free shop)이 근처에 있어서 들렀더니, 메이플 시럽(단풍나무 수액을 졸여서 만든 시럽)과 로열젤리, 캐나다산 녹용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내심, 부모님에게 드릴 선물로 녹용을 사고 싶었으나 이동 중에 보관이 힘들고 귀국할 때도 문제가 될 것 같아 메이플 시럽과 로열젤리만 두어 병씩 구입하고 말았다.


그런데,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의 백미(白眉)는 보트 투어(boat tour)였다. 미리 비닐 우의(雨衣)를 입고, 폭포와 아주 근접한 거리까지 배를 타고 다가가는데, 엄청난 굉음(轟音)과 함께 아래로 쏟아지는 물줄기와 물보라 세례(洗禮)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마치, 평면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살다가 끝 모를 나락(奈落)으로 추락한 사람의 심정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찔한 현기증과 아득한 절망감을 느끼며 바라본 물안개 사이로 영롱한 무지개가 여기저기 피어났다. 그래, 이런 극한(極限)의 환경 속이라도 언제든 희망이란 싹이 돋 법이야. 스스로 위무(慰撫)하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폭포의 가장자리로 벗어났을  이미 온몸이 땀과 물보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을 끝내가이드 안내를 따라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폭포 인근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를 찾았다. 'Living Water Wayside Chapel'이란 이름으로, 호수 가까이의 넓은 잔디밭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이 교회는 정말 대여섯 사람만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내부 공간이 협소(狹小)했다. 이 교회는 주로 예식장으로 용된다고 하는데, 마침 우리가 갔을 때도 한쌍의 부부가 결혼식올리있었다. 이들 부부는 자녀로 보이는 화동(花童)과 함께 있었는데, 우리 일행도  결혼을 서약(誓約)하는 순간부터 식을 마치고 교회 밖으로 다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주위에 화사한 드레스를 입은 신부들이 더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아마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는 스몰웨딩을 미리 경험해 본 느낌었다.


아무런 제약(制約)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행운이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이제 연수란 무거운 짐을 모두 벗어던지고, 내일부턴 가벼운 마음으로 서부지역 관광길에 나설 것이다. 귀국할 때까지 일주일 간의 서부여행은 희망하는 사람만이 자비(自費)로 참가하도록 되어 있었다.  미리 귀국하는 선생님들은 아침 일찍 뉴욕으로 떠나야 하지만, 나머지 선생님들은 이곳 버펄로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어느 쪽이든 한 달간의 여정은  결코 시간이 아니어서, 막상 내일 헤어진다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섭섭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학생 아닌 신분으로 단 며칠이라도 같은 공간에서 숙식을 함께하며 공부로 인연을 맺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이별의 아쉬움으로 잠들지 못한 밤이 그만 새벽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며칠 전 백화점 전자제품 매장을 둘러보다가, 부부 둘로 단출해진 살림살이에 걸맞을 밥솥이 있을까 궁금했다. 제품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손길을 쫓아가다가 6인용 압력밥솥에 눈길이 머물렀다. 지능형 첨단 장치로 제어할 수 있는 디지털 밥솥은 갖가지 밥뿐 만 아니라 영양죽이나 삼계탕, 빵 발효, 빵 굽기에다 만능 찜기로서의 역할에 더해 자동 세척까지 가능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연수와 관련된 글을 쓰다 보니, 밥솥을 보는 순간 뚜껑밖으로 당장이라도 스며 나올 것 같은 갈비찜 냄새로 코끝이 아련했다. 맞아! 연수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에도 갈비찜으로 회포를 미리 풀곤 했었지.


그리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둘러보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여배우가 있었다. 마릴린 몬로! 사실, 그녀만큼 우리 나이의 남자를 설레게 한 영화배우는 없었다. 1970년대 들어, 흑백 TV를 통해 방영된 마릴린 몬로 주연의 영화는 제목만으로도 호기심 충만한 10대 청소년의 마음을 들끓게 했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7년 만의 외출', '뜨거운 것이 좋아', '버스 정류장''나이아가라'가 명화극장이나 주말의 명화를 통해 재탕, 삼탕으로 재방송되곤 했다. 특히,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지하철 송풍구 바람에 마릴린 몬로의 치마가 위로 날리는 장면은 그녀의 영화 속 시그니쳐 신(signature scene)이자, 섹스 심벌로서의 상징적 장면 가운데 하나이다. 이에 못지않게 마릴린 몬로의 섹시하면서도 치명적인 팜므파탈(femme fatale)의 매력을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나이아가라'인데, 인간의 욕망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나이아가라의 아름다운 풍광(風光) 속에 잘 담아내고 있다.


그날, 나이아가라 폭포를 관광하러 온 수많은 사람들 틈에는 가슴 설렐 만큼 아름다운 금발의 미녀들이 많았다. 굳이 주위에 내걸린 입간판(立看板)이 아니더라도, 마릴린 몬로가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사실, 오늘 글을 쓰면서도 시종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요기(妖氣) 어린 그녀의 눈웃음이다. 그런데, 물보라 속에서 현란한 모습으로 시종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쌍무지개가 그녀의 게슴츠레 뜬 두 눈과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그저 뜬금없는 상상에 지나지 않은 것이을까?


지금은 색이 아주 바래지고 말았지만, 그날 정말 많은 풍경을 카메라 속에 담았다. 그리고, 이젠 머리로 기억하는 영화 속 장면들도 하나같이 흐릿해지고 있다. 결국, 세월은 흐르고 추억만이 희미한 그림자로 남게 될 것이다.


나이애가라 폭포 전경
무지개가 뜬 나이아가라 폭포 풍경
강의 거센 물살, 왼쪽이 나이아가라 폭포
나이아가라 폭포 입구 / 세계에서 제일 작은 교회
연수단 일행과 나이아가라 폭포 인근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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