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금세 씻겨 나간다.
서울로 올라와 서울 생활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1년을 놀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니고 싶지 않은 대학교를 자퇴를 위해 부산에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문득 전화로 부산에 내려갈 것이다. 첫 기차를 타고 가겠다는 말만 하고 끊은 저는 한숨도 자지 않고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날은 처음으로 엄마가 날 이해해준 날이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렇게 착각하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자퇴하겠다는 의논이 아닌 통보를 하러 갔고 그날도 저는 울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내 말을 이해해주고 날 응원해준다는 말로 우리는 그간의 다툼의 연결고리를 끊어냈습니다. 부모님의 사과를 정확히 듣지는 않았으나 몇 년간의 다툼은 나도 힘들었기에 그저 나도 이해한다는 말로 다툼을 끝내고 자퇴를 하였습니다.
그 이후 부모님과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연락을 하고 지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다정했습니다. 미래가 불확실한 딸에게 조언과 잔소리를 하는 아빠, 나를 지지해주는 엄마, 나름 나를 신경 써주는 남동생까지 우리는 이렇게 떨어져 지내고 나서야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술을 마시면 늘 전화로 나에게 잔소리를 가장한 통제를 하지만 참을만했습니다. 매일 이 얘기를 듣던 것보다 월에 몇 번을 듣는 것은 그저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기에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평화는 내게 남자 친구가 생기고 깨졌습니다. 서울로 올라가며 사귀게 된 남자 친구의 바람이 계기가 된 것처럼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으며 인간관계가 무너졌기에 그간 연애는커녕 친구를 만들기도 어려웠지만 일을 하고 점차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되니 미세한 증상들은 남았지만 점점 괜찮아졌고 저는 연상의 남자 친구를 만나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축하를 바란 건 아닙니다. 그저 남자 친구가 생겼고 연상이며 나이 차가 좀 있다는 것을 알려주자 엄마의 간섭은 점점 참을 수 없게끔 만들었습니다. 직접 보지도 않은 남자 친구가 계속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고 결혼 얘기를 하며 마치 남자 친구와 제가 헤어지길 바라는 거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내게 남자 친구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나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는 거 아니냐며, 남자 친구를 생각해서라도 나중에 결혼할 사람이 생긴다면 놓아주라는 말까지 듣자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간 결혼은 절대 안 된다는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저 긍정과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한 제가 부모님께 다시 말대꾸를 하며 잠시 휴전 상태였던 전쟁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결혼도 연애도 내 의지이며 그것을 엄마가 간섭할 권리가 없다는 점, 아직은 너무 먼 얘기이며 알아서 할 거라는 딸의 대답에 엄마는 참지 않고 제게 아픈 말들을 내뱉었습니다. 욕설은 없었으나 욕설과 마찬가지인 말들을 들으며 저는 더는 엄마를 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거기다 남자 친구 생긴 이래로 친척의 장례식장에서 살이 엄청 찐 딸에게 임신이냐고 화장실에 다그치며 임신 테스트를 해보자고 계속해서 강요하는 엄마에게 이미 있던 정도 다 사라진 저는 절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게 계속해서 회피와 도망만 치는 비겁한 딸이라고 얘기하셨지만 그런 상황을 만든 것에 엄마도 지분이 있으며 나는 이제 그러한 얘기를 듣고 싶지 않다. 나에겐 그 거짓말들이 생존의 목적이었고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절연이라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그다음 날 아빠는 내게 엄마한테 전화를 해보라고 계속해서 설득했고 저 역시도 마음이 약해져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고 엄마에게 나도 더는 연락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절연을 선언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빠와도 절연을 하려고 했습니다. 나와 엄마 사이에 끼어 있어 누구보다 고생한 것은 알지만 내게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남겨준 장본인 중에 한 명이기에 나를 위해서라도 모두와 절연을 하고자 했으나 아빠의 눈물과 저의 죄책감을 결국 엄마만 절연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결국 가족이 우선이 될 거라는 말들 저는 당당히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결국 물에 옅어지기 것처럼 내가 절연을 한 것이 적절한 선택이었냐 생각하면 저는 다시 돌아가도 그것을 선택할 것이고 절연을 한 덕분에 저는 이제야 사람이 된 기분입니다. 돌아보니 저는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이고, 내 버릇은 무엇이며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통제된 세상에서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나오니 세상은 험하고 내가 생각한 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스스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을 간다는 것은 그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어린 시절의 제가 앞에 있다면 부모님의 말에 휘둘리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돈으로 휘두른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가져야 할 죄책감은 아니며, 통제한다고 해서 무서워서 발버둥 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를 좀먹게 하는 것이라는 걸. 그 트라우마들과 감정들을 안고 백지상태인 저는 힘든 점이 더 많겠지만 내가 원하는 색으로 색칠할 수 있다는 즐거움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그러니 만약 이 글을 보고 있는 학대 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살아갔던 모든 이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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