냠냠 끄적-06. 김밥
잘 말아줘~~ 잘 눌러줘~~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 소풍날이면 새벽에 일어나신 어머니가 김밥을 싸곤 했다. 초등학생이 많이 먹어봐야 두 줄 간신히 먹을 텐데 준비하는 재료는 열 줄 넘게 쌀 수 있는 양이어서 아침에 잠에서 깨면 이미 부엌에 산처럼 쌓여있는 김밥을 보며 깜짝 놀라곤 했다. 작은 도시락에 두 줄을 꾹꾹 눌러 담고도 열 줄 넘게 남은 김밥으로 소풍날 아침을 먹고, 소풍 가서 점심으로 먹고, 갔다 와서 저녁으로 먹고도 남으면 다음날 아침까지 김밥을 먹었다. 아버지가 투덜대기는 하지만 재료가 그렇게 남으니 어쩔 것이냐는 어머니 한마디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에 김밥을 털어 넣곤 했다. 매 학기 소풍 때가 되면 그렇게 온 가족이 김밥으로 혼나는 하루이지만 새벽부터 준비하시는 어머니에게 감히 뭐라고 할 수 있는 용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가던 소풍장소는 지금은 북서울 꿈의 숲으로 변했지만 강북구 최고의 테마파크였던 드림랜드였다.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도 따라와서 소풍 내내 같이 놀아주고 점심시간에는 잔디밭에 옹기종기 돗자리를 깔고 앉아 가족끼리 하하호호 웃으며 먹는데 나는 혼자였다. 부모님이 돈 버느라 바쁜 건 알지만 그 어린 녀석이 마음 속으로 삭히려 애쓰던 섭섭함은 어쩔 수 없었다. 이리 와서 같이 먹자는 친구 부모님의 권유에도 혼자 구석에 보자기를 펴고 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었는데 갑자기 하루살이 떼들이 몰려와서 김밥에 달라붙었다. 무섭다기보다 갑자기 밀려온 서러움에 울음을 참고 뚜껑을 닫았다. 점심시간이 반쯤 지났을 무렵 동생을 데리고 뒤늦게 온 어머니를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 펑펑 울었다. 어머니와 동생, 나 셋이서 하루살이가 붙은 김밥을 덜어내면서 먹었던 먹먹한 기억이다.
김밥 전문점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힘들게 김밥을 쌀 이유가 없어졌다. 집에서 만 원어치 재료를 사서 힘들게 김밥을 싸놓아도 잘 먹지 않는데 전문점에서 한 줄에 천 원에 팔고 있으니 소풍날 아침이면 이천 원을 들고 김밥집에서 사 와 도시락으로 챙겨가서 먹었다. 동네에 김밥집이 다섯 집인가가 있었는데 똑같은 천 원이지만 한집이 밥도 맛있고 속도 알차서 그 집에만 줄이 길게 서 있어 한참을 기다려 사려다 등교시간에 늦을 뻔하곤 했다. 어머니도 더 이상 힘들게 김밥을 쌀 필요가 없다고 아쉬움 없이 소풍도시락과 안녕을 고하셨다.
음식을 할 줄 모르는 쏭이지만 대학생 시절 김밥집에서 알바를 했었고 너무 잘해서 직원제의까지 받았다며 김밥에 있어서는 자신감을 드러내곤 했다. 호은이 첫 소풍을 가는 날 본인이 김밥을 싸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막상 소풍 전날 김밥 재료 준비를 나에게 해달라는 말에 기가 막혀 할말을 잃었다. 알바를 했을 때 재료들은 직원이모님들이 다 해주고 본인은 김밥을 싸기만 했었다고 실토하며 사과했다. 우당탕탕 소동 끝에 김밥을 만들어 보냈고 잘 먹었다는 말에 쏭 본인이 더 뿌듯해하기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제주에는 김밥집이 참 많다. 바닷가나 숲으로 가면서 포장해 가면 가볍게 먹기 딱 좋은 메뉴이기에 그런 듯하다. 김밥집이 많은 대신 그 맛은 복불복이라 맛없는 집은 한없이 맛이 없고 유명한 김밥집은 예약을 하고 줄을 서야 먹을 수 있기도 하다. 가끔 아침 일찍 나가 김밥을 사와서 아침으로 먹는다. 호은도 김밥을 좋아해서 한 줄을 뚝딱 곧잘 먹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김밥 꼬다리만 남겨 왜 남기냐고 물었더니 꼬다리는 깨끗하게 잘려있지 않아서 안 먹는단다. 어릴 때 우리 형제는 재료가 제일 많이 달린 김밥 꼬다리를 서로 먹겠다고 싸우면서 컸는데 이 아들 녀석은 그 맛있는 꼬다리를 안 먹으니 왠지 모르게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다.
참치며 치즈, 소고기는 기본이고 전복이나 유부도 들어가고 계란지단이 듬뿍 들어가는 김밥 등 김밥 종류들이 많기도 하지만 나는 단무지와 당근, 얇은 지단과 어묵만 들어가 있는 기본 김밥에 제일로 좋다. 이건 호은도 마찬가지라서 아빠 입맛을 따라가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내일 아침에도 김밥 좀 사러 갔다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