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상, 후회, 미안함
신발 욕심이 많지 않다.
어릴 적부터 신발은 신고 다니는 거 한 켤레, 그 신발이 젖거나 더러워졌을 때 예비용 한 켤레만 있으면 된다고 따로 더 신발을 사주시지 않았다. 신발이 해지기 전에 발이 먼저 크면 안 된다고 시장에서 신발을 사기 전 신어보면 엄지발가락이 신발 코에서 한참 떨어진 내 발 사이즈보다 한두 사이즈 큰 것으로 사곤 했다. 그렇게 헐렁거리는 신발을 신다가 어느샌가 발에 맞고 마지막은 구겨 신고 다니다 버리곤 했다. 지금이야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신고 걸어야 걷는 자세도 좋아지고 건강을 지키겠지만 그땐 그렇게 불편한 신발을 신고 다녔기에 발을 헛디뎌 발목을 접질리기 일쑤였다. 오히려 발목을 접질려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며 냈던 비용이 신발값을 능가했을 텐데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칠칠치 못하게 걷다 접질린 나를 탓했다. 한참 축구와 농구를 하던 중고등학교 사춘기 시절에도 메이커 신발은 꿈도 꾸지 못하고 동대문 시장에서 파는 짝퉁 나*키, 아*다스 신발을 신고 다녔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신발을 신고 다녔기에 크게 불만은 없었다. 시장에서 파는 거나 매장에서 파는 신발들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고 메이커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었기에 에어가 어쩌고 쿠션이 어쩌고 하는 친구들의 자랑은 그냥 한 귀로 흘려보냈다. 다만 메이커 신발의 디자인들은 시장표 신발이 따라오지 못하기에 동네 시장에는 없고 동대문 시장에 있던 짝퉁 시장에서 매장의 오분의 일 정도의 가격으로 사서 신고 다녔다. 그렇게 대학생이 될 때까지 신고 다녔는데 사춘기의 동생은 그렇지 못했다. 집에서 사주지 못하면 자기가 사겠다며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정품 신발을 사 신고 다녔다. 나중에 스무 살이 되었을 때에는 아*다스 매장에 취업까지 해서 신발을 사곤 했다. 직원 할인을 해줄 테니 자기 일하는 매장에 와서 사라는 동생이 기특하기도 하지만, 이 신발은 한정판이네 디자인이 누가 했네 설명하며 한 달에 한 켤레씩은 신발을 사는 동생이 다른 한편으로는 짠하기도 했다. 동생이 부모님 생신이나 기념일이면 선물로 자꾸 신발을 사드려서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그럴까 라며 부모님이 미안해하신다.
이사일을 하다 보면 신발 때문에 곤란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가면 이삿짐을 넣을 때 훨씬 수월하다. 이사하는 고객도 표정이 밝고 가구 배치도 고객 의견에 딱딱 맞게 들어가 짐이 좀 많아도 생각보다 빠르게 일이 끝나곤 한다. 반면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가면 고객 표정도 어둡고 가구가 계획과 다르게 방에 들어가지 못하기도 하면 짜증을 내기도 하며 결국 시간은 시간대로 늘어지다가 짐을 다 풀지도 못하고 한쪽에 잔뜩 쌓아놓고 마무리하곤 한다. 보통 나는 신발장을 포장하고 풀고 하는데 평생을 신발 두 켤레로 맞춰놓고 사는 나로서 참 이해하기 어려운 집이 많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 보면 엄청난 신발량을 자랑하는 집이 있다. 고객 가족은 세 명인데 신발은 몇십 켤레를 넘어 백 켤레가 넘는 집도 봤다. 운동화, 구두, 부츠가 몇십 개씩 있는 집을 보면 현타가 잠깐 오기도 한다. 샤*, 구*, 발*시아가 같은 명품 구두와 각종 브랜드 운동화들이 가득한 신발장을 보면 갑자기 쏭과 호은에게 미안한 감정이 불쑥 들곤 한다.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호은도 한 켤레만 주야장천 닳을 때까지 신고 다 해져야 새로 사줬다. 쏭도 운동화 두 켤레, 구두 두 켤레 정도만 있어서 신발장이 텅텅 비었다. 이사일을 하다가 신발장에 자리가 없어서 현관 한쪽에 신발을 산처럼 쌓아 놓을 때면 우리 집 신발장을 생각하며 씁쓸한 마음이 들곤 했다.
오랜만에 아침 일찍 호은과 숲길을 걸었다. 날이 맑아 햇살이 좋았지만 전날 쏟아진 비에 숲길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두 시간여를 걷고 집에 왔을 때 호은이 신발이 다 젖은 것 같다고 말을 하길래 작년에 샀던 다른 신발을 신으라고 했다. 그런데 그 신발이 맞지 않는 단다. 교회에서 선물로 받아와서 따로 모셔뒀던 신발도 맞지 않아서 결국 슬리퍼를 신고 교회에 갔다. 쏭과 호은이 나가고 물끄러미 현관에 남아있던 호은의 신발을 보았다. 얼마 신지 않은 신발인데 아끼다가 못 신게 된 것이 왠지 내 탓같은 미안함이 컸다. 늦은 오후에 바로 호은의 신발을 사러 시내로 나갔다. 제일 편한 신발을 사주겠다고 갔지만 가격표에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기에 비교적 싼 신발을 신어보던 호은이 발 볼이 안 맞고 하다가 결국 생각보다 비싼 신발을 편해하길래 눈 딱 감고 샀다. 매장에서 바로 신고 나간다는 말에 직원이 탭을 떼면 교환 환불이 안된다고 했지만 새 신발을 신고 좋아하는 호은의 표정에 탭을 바로 잘라 버렸다.
적어도 나 어릴 적처럼 궁상을 당연히 떨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