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해파랑길, 태화강.대나무의 꿈

7코스 : 태화강 전망대-염포삼거리. 17.5km

by 물냉이

해파랑길 7코스는 태화강전망대에서 염포삼거리까지의 17.5km 구간이다. 삼호대숲과 십리대숲이 포함 된 태화강 국가정원을 즐기며 걸을 수 있다. 계절별로 다양한 꽃을 피우고 향을 내는 식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대나무숲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반짝이는 강물이 아름답고, 밤이면 은은한 불빛에 운동을 하러 나온 시민들의 발그림자가 보기 좋다. 태화강의 명물인 태화루를 지나면 태화강 복원의 상징인 물억새군락이 우거진 둔치에서 계절이 바람에 따라 하늘거리는 풍경을 본다. 곰솔가로수가 태화강 하구를 나란히 뻗어 있는 태화강의 하류에서는 산업의 역군으로 불려지던 새로만들어진 현대자동차들의 긴 대기행렬을 만날 수 있다.


십리에 십리를 더한 대숲길(태화강 전망대-태화루)

3박 4일의 걷기를 마친 지 일주일 만에 태화강 국가정원 삼호지구에 도착했다. 길을 쭉 이어 걸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려울 경우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걷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 간격이 길어지는 만큼 길에 대한 느낌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침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간간히 눈에 띄는 태화강엔 대나무 덕분에 겨울에도 푸른 숲을 볼 수 있다. 삼호교 위쪽의 보행교를 건너 '할머니의 손두부' 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따스한 콩국물이 인상적인 집이었다. 7코스는 대나무숲과 물억새, 곰솔 가로수가 이어지는 태화강변을 따라 염포까지 걸어간다. 기상이 안 좋거나 추우면 걷기 힘든 길인데 오늘은 해가 좋다. 삼호대숲 앞으로 카약이 지나간다. "훈련을 하는 건가?" 다운동의 팽나무 아래에 잠시 서서 풍경 속으로 사라지는 카약을 감상한다. 이 팽나무 아래에는 크기가 3.5m 되는 큰 물레방아가 있었는데 물레방아를 설치한 보 아래까지 황어와 연어가 올라와서 알을 낳았다고 한다. 이 물레방아는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사라졌다고 한다. 태화강이 오염되면서 이곳까지 올라오던 연어와 황어도 사라졌었는데 강이 회복된 지금은 다시 연어가 찾아온다. 국가정원교 아래 만회정에 이르러 잠깐 쉰다. 오산못에서 시작한 실개천에는 애기부들, 줄 같은 수생식물들이 가득 차 있다. 이 실개천 양옆으로 나비생태원, 향기정원, 우리꽃정원, 봄꽃정원, 느티나무공연장, 작약원 등이 펼쳐진다. 지금은 겨울이라 다 정리되어 있지만 봄이 되면 꽃들의 향연이 이루어진다.

태화강길은 하늘을 덮는 대나무숲길이 좋지만 야경을 걸으면서 보는 것도 좋다. 대나무숲길과 다리들, 강 주변 건물들이 조명에 빛나며 아름다운 밤 풍경을 만들어 낸다. 십리대숲 옆 쉼터는 대나무를 이용해 그늘을 만들었다. 대나무로 유명한 곳에서 대나무 소재를 사용하니 보기도 좋은 것 같다. 십리대숲을 벗어나니 태화강변의 절벽에 있는 태화루가 들어온다. 태화루의 절벽 아래에는 소(沼)가 있는데 이름이 용금소로 황룡연이라고도 한다. 용금소는 태화사에 있는 용들의 안식처였다고 한다. 용금소 안내판에는 1965년 경에 찍은 사진과 2012년의 사진을 비교해 놓았는데 65년의 사진에는 절벽 위에 소나무가 있고, 2012년의 사진에는 소나무는 눈에 띄지 않고 다른 식물들이 절벽을 덮고 있다. 태화루에 올라가 보니 절벽에는 이대와 함께 모감주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모감주나무는 낙동강이나 남부지역의 강변 절벽에 군락을 이루는 나무로 낙동강이 흐르는 대구의 달서습지에서는 대규모의 군락을 볼 수 있다. 태화루는 임진왜란 이후 사라진 것을 2014년 다시 준공한 것이다. 모감주나무의 열매로 염주를 만드는데 모감주나무 열매들의 정성이 모아져 태화루를 재건하는 싹이 된 건 아닐까. 모감주나무의 꽃은 염료로도 사용하는데 초여름인 6월이면 태화루의 절벽을 노랗게 물들일 것이다.

오늘은 태화강이 한없이 맑은 날(좌), 콩물이 무척 정감가는 아침이었다.
태화강을 오가며 운동하는 카약과 물레방아터에 서있는 300년된 팽나무


십리대숲 옆의 대나무로 만든 쉼터(좌)와 태화강 국가정원의 수로


가을이면 국화꽃이 가득 정원을 메우고(좌), 허브가 식재된 모습
멀리 태화루와 용금소의 모습이 보인다(좌). 태화루 앞에서 군락을 이룬 모감주나무를 만났다(우).


강의 새살 물억새(태화루-태화강 물억새군락)

태화루가 보일 때부터 하늘에 뜬 구름이 심상치가 않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짙게 떠 있는 것도 그렇고, 처음엔 고래 모양이더니 지금은 하나가 떨어져 나와 해를 가리며 무지개색으로 멋을 피운다. 운수납자(雲水衲子)라는 말이 떠오른다. 구름처럼 물처럼 어디에도 연연해하지 않으며 떠도는 삶을 말하는 사자성어이다. 내가 길을 걷는 건 운수납자의 삶을 조금이라도 흉내 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 특이한 모습의 구름이 조금씩 움직인다. 좋다고 뿌리를 내리는 것도 아니고 나쁘다고 훌쩍 떠나버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둥둥 바람 부는대로 흘러갈 뿐이다. 농구장, 족구장이 있는 체육공원과 주차장 사이에 용의 머리를 새긴 장승들이 서있다. 그런데 장승치고는 모양이 좀 특이하다. 말뚝을 박아 놓은 것 같기도 한데 안내판을 보니 '마두희(馬頭戲)'를 할 때 사용하는 곳나무라고 한다. 마두희는 '큰줄당기기'라고도 하는데 새끼줄을 꼬아 암줄과 수줄을 만들고 둘을 서로 연결할 때 사용하는 나무가 곳나무이다. 울산의 지방지인 학성지에는 단오에 칡으로 줄을 만들고 이것으로 줄다리기를 해 승부를 가렸다고 한다. 지금은 칡이 아닌 짚으로 새끼를 꼬아 줄을 만들고 매년 축제를 개최하는데 2020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줄다리기가 취소되었다. 마두희는 동대산 산줄기가 동쪽으로 삐져나와 바다로 향하는 것을 끌어당기기 위해 한 것으로 풍수지리의 비보압승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줄과 곳나무는 줄다리기가 끝난 후 태화나루로 옮겨 배를 매는 줄과 말뚝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장승과는 다른 곳나무의 모습이 새롭게 다가온다.

20200112_104621.jpg 태화강을 바라보고 있는 태화루
모자처럼 아파트 위에 걸린 구름(좌)과 마두희 때 사용하는 곳나무(우)

주차장을 지나고 나무들을 심어 놓은 둔치를 지나자 물억새밭이 많아진다. 태화강의 복원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가 태화강 둔치의 물억새이다. 넓은 억새밭들이 스스로 자란 것이 아니라 강의 둔치에 있는 쓰레기며 불법시설물들을 정리하고 심은 것들이다. 태화강의 바닥에 쌓인 오염된 뻘들을 걷어내고, 울산시를 찾아오는 떼까마귀와 백로의 서식공간을 마련해 주는 등의 활동들이 공단의 오염으로 유명했던 울산의 이미지를 바꾸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물억새군락 사이에 있는 의자에 앉아 신발을 벗고 바람을 쐰다.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쉬는 것이다.


태화강 하구 둔치에 가득한 물억새군락
바람이 가득한 물억새밭에서 잠시 쉬어 간다


우직하게 곰솔처럼(태화강 물억새군락-염포삼거리)

물억새밭을 지나면 차도 옆으로 올라와야 한다. 이제부터는 강변에 둔치가 없고 차길 건너편으로는 현대자동차 공장과 시설들이 길과 함께 나란히 염포 입구까지 이어진다. 곰솔은 나무의 수피가 검은색을 띠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닷가에 자라는 소나무라고 해서 '해송'이라고도 부른다. 곰솔의 잎은 소나무의 잎보다 억세다. 강한 바닷바람을 견디며 살다 보니 잎이 억세졌을 것이다. 곰솔길을 따라 한참을 걸은 것 같은데 앞으로 남은 길이 한참이다. 비슷한 경관이 계속되면 금방 지루해지고 쉬 지치게 된다. 길을 걸으며 경관이 자주 바뀌는 것만 해도 걷는데는 큰 도움이 된다. 가끔가다 자전거 탄 사람들만 지나가고 나처럼 걷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걷기가 지쳐 잠시 강가로 내려가 본다. 사실 이 장소는 3년 전에 걸을 때도 제방을 내려온 곳인데 물이 찰랑찰랑 넘치는 강가에 살아 있는 바지락이 엄청 많았었다. 걷는 중이라 바지락을 잡거나 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서해의 뻘 속에서 자라는 바지락과 달리 물에 깨끗이 씻겨 깔끔한 모습으로 물 속에 있는 바지락이 예뻐 보였었다. 그런데 올해에는 조개가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고 빈 껍질들만 보인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자연의 변화가 무쌍한데 그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그때 보았던 조개들의 자손들이 이 자리를 떠났지만 다른 곳에서라도 잘들 살고 있기를 바란다. 부두에 늘어서 대기하고 있는 자동차들이 보인다. 이제 염포삼거리가 멀지 않다.

현대자동차 공장 앞의 곰솔이 함께 걸어주는 7코스(좌)와 강변에서 만난 바지락(우, 2017년)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부둣가의 차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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