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해파랑길, 강을 거슬러 오르는 법

5코스 : 진하해변 - 덕하역. 17.7 km

by 물냉이

해파랑길 5코스는 진하해변에서 덕하역까지의 17.7km구간이다. 진하해변을 출발해 회야강을 따라 강을 오른다. 길은 온산읍에 도착할때까지 큰 변화없이 강의 흐름을 쫓아 간다. 온산읍에서 회야강을 따라 좀더 상류로 올라가다 중간에 마을로 빠져 망양리와 동천리를 지나면 덕하역이다.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 꾸준함을 가지고 걷다보면 어느새 덕하역에 이르게 되는 구간이다.


물의 떨림(진하해변-회야강-남창천 합류지점)

해파랑길 5코스는 회야강을 따라 강의 하구를 지나 회야호 아래까지 걸어 덕하역으로 가는 여정이다. 명선도를 뒤로하고 명선교를 앞에 둔 해파랑길 안내판에서 오늘의 여정을 다시 확인한다. 명선교는 진하해수욕장과 강양항을 이어주는 보행교이지만 규모가 커서 조금 떨어져서 보면 차량이 다니는 도로처럼 보일 정도이다. 명선교 옆 편의점에 물을 사러 들어갔다가 뜨거운 커피를 한잔 사 다리가 보이는 곳에서 마신다. 경상남도 양산의 천성산에서 시작하는 회야강은 37.7km의 길이를 갖는 하천이다. 원래는 돌배미강이라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표시하다 보니 회야가 된 것이라고 한다. 남창천과 합류하고 난 다음부터 북에서 남으로 흐르던 강이 북서쪽으로 비스듬히 누어 바다로 들어간다. 강한 북서풍이 부는 겨울에는 찬바람이 끊이지 않아 걷기 어려운 길이다.

작은 배들이 묶여 있는 항을 지나면 물억새가 우거진 강변이 나온다. 이때부터 길가에 사철나무와 피라칸사스를 울타리로 심어 놓았기 때문에 강을 보는 것도 띄엄띄엄 보게 된다. 조금 더 걷자 갈대군락이 있는 강변에서 민물가마우지 한 마리가 물 밖으로 나와 날개를 말리는 모습이 보인다. '먹고살려고 애쓰는구나. 그런데 왜 너 혼자 거기에 있는 거니? 왕따인가?" 주위에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이 없으니 물을 자주 보게 된다. 오늘은 바람이 적은 편인데도 물결이 끝없이 흔들린다. 사람도 살다 보면 역경을 헤치고 나갈 때보다는 평안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에 흔들려 어려움에 처하곤 한다. 작은 문제라 해도 가라앉은 주변에 비해 두드러지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밭에는 포기를 묶어 놓은 배추들이 드문드문 미어캣처럼 서서 바라본다. "겨울인데 춥지는 않니? 난 갈길이 먼데..."

명선교가 보이는 회야강의 하구에서 캔커피를 한잔 마신다.
물억새 군락 사이로 버려진 폐선이 누워 있다
광나무와 피라칸사스, 사철나무 울타리가 바람을 줄여 주지만 지나가는 차들의 속도를 줄이는 데는 효과가 없다
하구에 민물가마우지 한 마리가 물에 젖은 날개를 말리고 있다.

걷기 싫을 때(남창천 합류지점-온산읍)

남창천 합류지점에는 철교가 가로 지난다. 회야강 하구의 상류지점인 이곳엔 여러 개의 모래톱이 있고 겨울철새도 많이 있다. 남창천을 가운데 두고 하서들과 발리들이 있어 먹을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후 네시 반 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서들의 미나리밭에 노을 같은 해가 빛을 잃고 늘어진다. 상회2교를 건너 걸어가니 그나마 남아 있는 잔광이 강물에 비치며 물속의 숲을 만들어 놓았다. '천천히 가자. 가다 지치면 아무 데고 쉬었다 가면 된다.' 생각이 그렇지 그게 잘 안되기는 한다. 특히 장거리 여행길에서는 어디에서 잘지, 언제 먹을지 등을 어느 정도는 정해 놓고 걷기 때문에 대부분은 시간에 맞추느라 서두를 때가 많다. 길이 많이 익숙해진 이번 걷기 여행은 다른 때 보다도 훨씬 빠를 것이다. 평소 같으면 들렀다 갈 곳도 지나치고 새로운 것을 만나면 한참 동안 시간을 뺏기는 과정이 거의 없는 것도 시간이 빨라지는 요인이다.

참나무를 자른 통나무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철판 삼겹살집을 지나며 걸음을 빨리한다. 두툼한 줄기의 왕벚나무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는 온산읍에 도착했다. 아직 다섯 시이다. 평소 같으면 덕하역까지 가면 딱 좋을 시간이다. '덕하역에서 태화강까지 가야 하는데 그걸 생각해서 좀 더 갈까?' 싶다가 오늘은 여기까지만 걷기로 했다. 걷기 싫을 때 걸으면 어딘가 탈이 난다. 오늘이 연속해 3일째 걷는 날이라 다리에도 무리가 갔을 것이다. 숙소는 저녁을 먹고 찾아가기로 하고 눈에 띄는 음식점으로 들어가 동태탕을 시켰다. 온산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이 끝나면 숙소가 가까운 이곳으로 몰려와 탁해진 목을 소주로 씻어내겠지. '음 그런데 오늘은 직장인이라기보다는 동네 아저씨 둘이 술이 얼큰하다.' 고춧가루가 들어가 보기에도 매콤할 것 같은 동태탕이 나올 때 막걸리도 한병 시켰다. 막걸리 이름이 '태화루'이다. 여기가 울산인 게 확실하다.

하서들에 겨울의 이른 저녁이 찾아오고 있다. 벌써 해질 시각은 아닌데
기웃한 해가 회야강의 강물에 숲을 하나 더 만들어 놓았다. 쉬지 않고 걸으며 풍경을 감상한다
걸을 때 막걸리 한통은 술이라기보다는 밥에 가깝다. 밥 먹으며 막걸리 한통을 마시면 그날은 곱빼기를 먹은 날이다

떼까마귀의 군무(온산읍-회야강 중류-망양리-동천리-덕하역)

어제 코스의 중간에서 일찍 쉬었더니 몸이 한결 가볍다. 어두컴컴할 때 깨어 뒤척거리다 짐을 꾸렸다. 아침을 먹으려면 8시는 되어야 할 것 같아 덕하역에 가서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하고 가로등이 환한 거리로 나섰다. 숙소에서 가느라 그전에 회야강을 건넜어야 하는데 덕신교에서 건너니 바로 아래로 보이는 제방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한참을 돌아간다. "아, 이거 내 스타일 아닌데." 어두운 논길을 지나 강변으로 다시 나가니 해가 뜨느라 사방이 붉은빛을 띤다. 세상이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을 눈으로 보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순간이다. 아침의 새들은 지난밤의 경계를 풀고 높이 나르며 노래한다. 회야강을 따라 걷는데 맞은편 산 위로 떼까마귀들이 무리 지어 아침비행을 한다. 30분 정도를 떼까마귀들의 군무를 보느라 길을 걷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회야강의 하중도 안에는 곰솔과 굴참나무 고목이 서있다. 200년 이상 된 것이라는데 이 나무들이 이렇게 하중도에 서 있으려면 경사면에 자갈층이 보이는 이 하중도의 생성 연대도 꽤 오래되었을 것이다.

망양 공단의 굴뚝에서 오르는 연기를 보며 시내로 들어간다. 이곳의 가로수는 아래쪽에 맥문동을 심어 놓았다. 맥문동이 빽빽하게 자라나지 못한 곳은 쑥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동천리를 지나 폐철로를 뜯어낸 고개를 넘으면 덕하리이다. 덕하리에 들어서니 복선으로 새 선로를 깔고 있다.

청량 초등학교가 보일 즈음 마주오는 세 사람의 남자와 마주쳤다. 신이 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다가오는데 내가 인사를 건네니 묻지도 않은 자신들의 자랑을 한다. 세 사람은 친구들인데 명퇴를 한 후 해파랑길을 강원도에서부터 걸어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진심 부러웠다' 축하의 말을 건네자 힘내라며 다시 길을 떠난다. 길에서 만나는 해파랑꾼들은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된다. 부러운 마음에 그들이 한참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덕하리는 오늘이 장날이 아닌가 보다. 덕하역 근처 해동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백반에 미역국, 구운 김, 구운 생선, 달걀프라이, 시금치나물, 김치, 깍두기, 오징어포, 파래무침, 우무무침이 나온 식탁은 만족스럽다. 해동식당과 제주식당 두 곳이 있는데 어느 곳을 들어가도 같은 수준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아침 여명이 밝아 온다. 길에서 만나는 아침 해는 부지런한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어지게 한다
떼까마귀들이 식전 비행을 한다. 세상은 한없이 고요하다
아침해가 뜨는 강은 흔들림도 없다. 하늘을 그대로 받아 되비치는 회야강변에서 좋은 하루를 빈다
회야강 안에 서 있는 소나무와 곰솔 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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