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해파랑길, 옛것은 가고 새것이 온다

3코스 : 대변항 - 임랑 해변. 16.5km

by 물냉이

해파랑길 3코스는 대변항에서 임랑해변 까지 16.5km 구간이다. 기장미역으로 유명한 대변항을 출발해 봉대산을 넘는다. 코스의 일부가 바뀌어 기장 죽성리 왜성이 코스에서 제외되었다. 기장군청에서 일광해수욕장에 이르는 길은 도로변을 따라걷는 구간이다. 일광해수욕장을 지나며 소설가 오영수의 자취를 읽는다.(구)한국유리 공장 의 담장을 따라 걸으며 세월을따라 부침하는 지역경제의 단편을 읽는다. 온정마을, 칠암마을을 지나 임랑해변에 도착할 때까지 한적한 바닷가의 마을을 하나씩 마주한다.


이길 왜 바꿨을까( 봉대산-기장군청-일광해수욕장)

점심으로 먹은 짬뽕국물 덕분인지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길 위에서도 일차적 욕구가 해소되면 몸과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항구에는 새벽에 따온 생미역을 사고파는 손길들이 분주하다. 대변항을 빠져나와 봉대산으로 향하는 산길을 걷는다. 산의 입구에 말리기 위해 널어놓은 그물들에서는 특유의 비린내가 난다. 길이 항상 아름답거나 향기롭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좋은 기억들이 길의 단점을 가려주기 때문이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나자 사람도 없고 한적한 산길이다. 야트막한 언덕의 갈림길에서 이전에는 월전마을로 갔었는데 조정된 해파랑길 안내판은 봉대산 정상으로 향해있다. 월전마을을 지나 죽성리 해변을 걸으면 해변에 만들어진 교회 세트장이 보일 때쯤 "휫-,휫-"하는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을 뒤편의 야트막한 능선엔 다섯 그루의 곰솔들이 품어 지키는 서낭당이 있고, 그 옆에 '기장 죽성리 왜성'이 있다. 이 왜성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쌓은 것으로 사적 제52호였다. 그러나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들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사적 지정이 해제되었고 대신 부산광역시 기념물이 되었다. 최근에 항공지도를 보니 죽성리 왜성 안과 주변에 비닐하우스가 설치되고 길을 내느라 깎아낸 흔적이 보인다. 왜성 주변엔 신라 토성도 있는데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죽성리의 해변과 왜성을 볼 수 있는 코스가 바뀐 이유는 학리 방파제 쪽으로 가는 길이 사유지라는 이유로 막혀버렸고, 죽성리에서 신천리로 넘어가는 길 역시 인도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변항에서 생미역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모습이 물고기가 파드득 거리며 뛰는 것처럼 살아 있다


죽성리 서낭당의 곰솔(좌)과 그곳에서 바라본 해안 풍경(중), 죽성리 왜성의 입구에서 바라본 성의 모습(우)


봉대산은 229m의 낮은 산이지만 해발고도가 0m 가까운 곳에서부터 급하게 올라가는 길이라 쉽지 않다. 숨이 차서 잠시 쉬는데 한 남자가 잰걸음으로 따라 올라온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직장을 조기 명퇴하고 별러왔던 해파랑길 걷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면서 다니니 비용도 별로 들지 않고 걷는 일이 재미있다고 한다. 산길이 음침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별로였는데 같이 걸을 수 있는 동료가 생겨 좋았다. 하지만 그는 나의 발걸음이 느린지 정상에 가까워 올 무렵 먼저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훌쩍 가버린다. 봉대산 정상 부근엔 남산 봉수대터가 있어서 그곳에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경관이 시원하지만 그곳까지 다녀올 마음은 안 생겨 산길을 계속 간다. 이곳에는 소나무숲의 아래에 제주조릿대가 자라고 있다. 기장군청 입구에 있는 대나무숲에서 잠시 쉬어가겠다고 꾸역꾸역 내려와 길을 걷는데 이 추위 속에 번데기를 깨고 나온 노랑나비 한 마리가 채 날개를 다 펴지도 못하고 죽은 채로 풀에 달려 있다. 세상에 나와 꽃도 피어보지 못하고 가는 생명들이 얼마나 될까. 보도블록의 턱에 쭈그려 앉아 산다는 게 뭔지 한 숨을 쉬는데 하늘은 파랗기만 하다. 기장군청에서 일광해수욕장까지는 차들이 생생 달리는 찻길이어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무심히 걸어야 한다.

추운 겨울 짧은 생을 마감한 노랑나비의 모습이 발을 멈추게 한다. 숲 속에서 만난 제주조릿대는 '이게 왜 여기에 있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옛것은 가는구나(일광해수욕장-한국유리-이동항- 온정마을)

몇 명의 사람만이 일광해수욕장 바닷가를 걷고 있다. '날이 추운 탓일까?' 지난해 여름 이 곳에 왔을 때 바글거리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일광해수욕장 끄트머리에 별님 공원이라는 공원이 있는데 소설가 오영수의 문학비가 서있다. 그는 195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인데 '갯마을'이라는 소설로 유명하고 일광은 그 배경이었다. 갯마을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나지막한 지붕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회센터의 대야 안에는 바다에서 잡아온 물고기들이 펄떡거린다. 3년 전 이곳에서 회를 샀는데 일회용 도시락 2개에 가득 차는 양이었다. 저녁을 먹은 상태라 회를 다 먹지 못하고 걸으며 먹으려 등에 싸들고 다니다 그만 상해버려 일부는 버려야 했던 기억이 난다. 회센터 뒤편으로 느티나무, 팽나무 고목 사이에 서낭당이 있는데 여름에 나무 그늘에 쉬어가기 좋게 데크를 해 놓았다. 바다 쪽에는 두 가지를 팔 벌리듯 활짝 펼친 느릅나무 아래에 할매당이 있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항의 끝에 작은 샛길이 있다. 이 길의 뒤편은 옛 한국유리 부산공장의 울타리로 아래쪽에 있는 집과 울타리 사이로 폭이 좁은 뒷길이 나있다. 길이 집보다 높아 지붕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길과 붙어 있는 파란색 지붕에는 누군가 솔가지를 얹어 놓았다. 솔가지는 우리 민족이 상징적으로 사용해 오는 식물로 솔가지를 걸어두거나, 가지에 물을 적셔 뿌려 주변을 정화하는 의식을 행하였다. 솔가지를 던지거나 태우는 행위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집주인은 주로 지역주민들만 이용하던 길에 낯선 사람들이 자주 다니게 되자 행여 부정이라도 탈까 걱정이 됐을 것이다. 나 좋자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게 아닌가 싶어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한국유리 공장은 모 건설사에 팔려 지금은 부지정리가 한창이다. 이 넓은 땅에 무엇이 들어올까? 그때에도 이 좁은 길은 살아남을까? 세상이 변하면서 낡은 것들은 보존되기보다는 사라진다. 그게 세상의 이치이긴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것이 두려운 게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의 내용을 새겨놓은 문학비와 당집. 느릅나무 아래의 이 당집은 할매당이고 안쪽으로 할배당이 있다
한국유리 담장 아래쪽의 좁은 통행로. 이런 좁은 길들은 바다의 영향을 덜 받고 마을 주민들이 다닐 수 있는 뒷길이다.

이동항을 지나 온정마을로 넘어가는 산모롱이 길은 바다 쪽으로 양식장들이 줄지어 서있다. 양식장들은 길 옆의 수로로 바닷물을 내 보내는데 그 안에 말미잘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저 작은 생명이 이런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해 보인다. 도로를 따라 조금 더 오르면 길가에 오석으로 만든 표석이 있다. 이 표석은 작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지나쳐 버리기 쉽다. "오랜 옛날부터(신석기 이전) 이 고장에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인 조개무덤이 있었다. 기장군 내에서는 유일한 곳이다. 도로 확장공사로 학술조사도 하지 못한 채 패총이 도로에 깔렸다. 학술적 연구조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여기에 표석을 세운다. 2012. 7. 17" 우리는 당장 급하다는 이유로 한번 사라지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수천 년 동안 버텨온 역사를 미련 없이 지우곤 한다. 옛것은 다 낡은 것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바로 옆 자전거도로에는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비싼 안내판을 세워 놓은 것을 보고 있자니 아쉬움이 더하다.

양어장 뒤편의 수로에 말미잘들이 살고 있다.
산 모롱이에 동일회라는 단체에서 세워놓은 조개무덤 표석



일곱 개의 바위라도 봤으니(온정마을-동백 방파제- 신평 소공원-칠암항-문동 방파제-임랑 해변)

온정마을을 지나 터덜터덜 길을 걷는다. 바다는 잔잔하고 해는 조금씩 빛을 잃어가고 있다. 저녁이 다가오는 동백항 입구에 낡은 집 한 채가 방치되어 있다. 여기는 원래 2013년 11월부터 2014년 3월까지 방송한 MBC 드라마 '황금무지개' 촬영지이다. 관광자원으로 이용하려고 돈을 들여 꾸며 놓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버려진 빈집이 되어버렸다. 지속적인 관리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찾아오게 만들 이야기가 없는 관광 사업지의 단면이다. 그래도 땅이 있으니 다음엔 더 좋은 장소로 이용될 것이다.

동백항 옆에는 모래사장이 아닌 자갈밭이 있는데 몇 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바둑돌처럼 작고 둥근돌을 줍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돌이 다 사라진 건지 아니면 그런 바둑돌에 관심이 없는 건지 예전처럼 돌을 줍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어쩌다 간혹 바닷가를 서성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이래저래 오늘은 그만 걸어야겠다. 근처에 숙소를 찾아봤으나 맘에 드는 곳이 없다. 마을 슈퍼에서 소금 사탕 한 봉지를 사서 까먹으며 걷는데 오래된 것인지 아니면 보관을 잘못했는지, 녹은 사탕 물로 인해 껍질이 끈적거린다. '아. 버릴 수는 없고 참 끈끈한 하루다.' 어영부영 걷다 보니 곰솔 아래서 저녁을 맞이하고 있는 신평리 서낭당을 지나쳐 칠암마을 표지석이 있는 곳까지 와버렸다. 칠암마을은 마을 앞바다에 검은 옻칠을 한 듯한 바위가 있어 칠암(漆岩)이라고 부르다 이 칠자가 쓰기 어려워 ‘일곱 칠(七)’ 자로 바꿔 쓰기로 했다는 설과, 마을 앞바다에 7개의 검은 바위가 있어서 칠암이라 불렀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이 마을에서는 일곱 개의 바위 쪽에 마음이 갔는지 길가에 칠암을 뜻하는 7개의 작은 바위를 박아 두었다. 돌들은 각각 뽕곳돌, 거멍돌, 송곳돌, 청수돌, 뻘돌, 군수돌, 넓돌 등의 이름이 쓰여 있다. 인도의 폭이 좁은 어두운 길을 따라 걷다 버스가 와 예약한 숙소가 있는 정관읍으로 갔다.

어젯밤과 오늘 아침은 숙소와 해파랑길을 오가느라 시간을 지체했다. 그래도 어제저녁 편히 잤으니 됐다. 아쉬운 건 어제 버스 탄다고 밤길을 걸어온 덕분에 신평 소공원과 그 앞바다에 있는 윷판대를 못 본 것이다. 윷판대는 넓적 평평한 바위로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와 왜군의 장수가 윷판을 그려 대결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길을 되돌려 보고 갈 수도 있지만 지나온 길은 가능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기준을 무시할 수도 없는 것, "그냥 가자!"

문동리 지나 좌광천 하구를 건너니 임랑해수욕장이다. 임랑은 숲(林)이 울창하고 물결(浪)이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임랑(林浪)이라 이름 붙인 곳이다. 마을 뒤편의 산에는 소나무숲(松林)이 우거져 있겠지만 바닷가를 걷고 있는 지금 산으로 갈 수는 없다. 다만 좌광천 남쪽의 산에 곰솔이 우거져 임광 해수욕장에서 숲과 파도를 함께 볼 수 있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때는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추억의 장소였다가 이제는 그냥 빈집이 되어버렸다
칠암마을 입구에 세워 놓은 바닷속에 있다는 바위돌, 돌에 바위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임랑은 숲(林)이 울창하고 물결(浪)이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으로 마을 뒤편의 산에 소나무숲(松林)이 우거지고 파도의 은빛 물결(波浪)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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