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6코스는 덕하역에서 태화강전망대에 이르는 15.7km의 구간이다. 바다쪽으로는 멀리 장생포항과 울산항이 있지만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를 비롯한 공단들은 걷기에 적합한 길이 아니다. 함월산과 신선산 삼호산으로 이어지는 산의 능선을 따라 걸으며, 선암호수공원, 울산대공원, 울산공원묘원을 지나면 태화강의 푸른 대숲이 한눈에 보이는 고래전망대에서 쉬어갈 수 있다. 길은 태화강 입구의 태화강전망대에서 7코스와 만난다.
가끔 안내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덕하역-선암호수공원)
덕하역을 출발한다. 오늘은 태화강 전망대까지 간다. 거리상으로는 15.7km로 길지 않은 구간이지만 많은 구간이 산길을 걷는 것이어서 시간도 걸리고, 걷는 길이 쉽지만은 않다. 아담한 덕하역에 인사 한번 전하고 길을 간다. 이전에는 두왕천을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나있는 굴다리를 지나 건너편으로 갔는데 굴다리의 입구가 절반쯤 흙으로 메워져 있다. 사람이 다니지 못하도록 일부러 막아 놓은 것이다. 굴다리의 건너편엔 토목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돌아가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잘됐다." 두왕사거리까지 큰길을 따라 걷기로 한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발뒤꿈치가 심상치 않다. 올해는 벌써 한 번 발가락에 물집도 잡히고 발뒤꿈치도 까졌다. 아무래도 신발이 조금 작은 것 같다. 길가의 쌈지공원에 앉아 발뒤꿈치에 밴드를 붙였다. 물집이 잡히거나 까질 것 같을 때에는 방지용 테이프를 붙이면 효과를 볼 수 있다. 테이프가 없을 때에는 나처럼 약국에서 밴드를 사서 붙이면 된다. 저녁때 숙소에 도착해 떼어내고 발을 잘 씻어주면 문제가 없다.
두왕사거리에는 늘씬하게 자란 메타쉐콰이어 숲을 비롯해 여러 나무를 심어 조성한 공원이 있다. 공원에서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살펴본다. 공원을 지나 길게 뻗은 산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능선엔 나무가 없고 칡이 가득 들어차 있다. 이 능선의 동남쪽으로는 울산 석유화학단지를 비롯한 대규모의 공단이 분포한다. 대기오염이 걱정되는 이곳에서 굳건하게 자라는 칡은 생명력이 대단한 식물이다. 나지가 있는 산지에 칡이 들어가면 다른 식물들은 들어가지를 못한다. 이 능선은 해발 138m인 함월산으로 이어지는데, 산을 오르는 경사가 가파른 게 몇 번을 산길에서 쉬게 만든다. 정상에 있는 산불초소 옆에서 땀을 닦는다. '이 초소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정말 운동되겠네. 차가 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아침, 저녁으로 산을 오르내려야 하니'
산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에는 리기다소나무 식재림이 우거져 있다. 잎이 2장인 소나무와 달리 잎이 3장씩 달린 리기다소나무는 외래종이다. 조림을 할 때 얼마나 많이 심었는지 전국 어느 곳을 가던지 리기다소나무를 볼 수 있다. 리기다소나무 숲에서는 송이버섯이 자라지 않는다. 내리막길에는 스트로보 잣나무 식재림 사이로 길이 나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다. 산을 내려오면 습지에 애기부들, 연 등이 자라는 선암호수공원이 있다.
입구가 막혀버린 과거의 길(좌), 새로운 길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우).
함월산 정상부에 있는 산불감시초소(좌)와 선암공원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리기다소나무 식재림 누군가 리기다소나무 줄기에 새집을 달아 놓았다(좌). 스트로보잣나무숲의 낙엽이 쌓인 길은 부드러운 푹신함이 있다(우)
나무들도 상처를 받는다(선암호수공원-울산대공원)
선암호수공원의 입구에는 루돌프와 썰매상이 있다. 그래, 크리스마스야 지났지만 기분까지 끝내버릴 이유는 없다. 비싼 돈을 들여서 시설을 설치했으면 본전을 뽑아야 한다. 연들이 자라는 습지에는 커다란 홍연이 꽃을 벌리고 있다. 가끔은 가짜가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한다. 이곳은 자연습지가 아닌 공원습지다. 공원에서는 생태계의 유지보다는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쉬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도 안내판에는 이곳에 있는 황소개구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황소개구리의 피해는 과거에 비해 훨씬 줄어들지 않았나? 그들은 이제 우리의 자연생태계의 한 축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으므로 이들에 대한 감시는 계속하되 관리대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간 방식으로 해보는 건 어떨까.
선암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난 후에 산길을 오르는데 개나리와 진달래가 벌써 핀 것들이 있다. 이제 1월인데 이 친구들이 정신없는 건가? 아니면 남쪽이라 나무를 뚫고 들어오는 햇볕에 계절을 착각한 것일까. 생태계에서는 이런 일이 희귀한 것은 아니어서 별로 관심을 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한겨울에 핀 꽃을 보면 겨울과 싸우는 외로운 투사 같기도 하고, 홀로 걷는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친구 같기도 하다. 선암동 뒷산의 정상에 있는 바위를 신선암이라고 하는데 신선들이 놀러 올만한 자리이긴 한데 바위에다 작은 부처를 새겨 놓기도 하고, '삶'이라는 글자를 큼지막하게 새겨 놓기도 했다. 요즘 문신들을 많이 하는데 바위가 아닌 자신의 몸에 새겨 놓았으면 좋았을걸 그랬다.
선암호수공원 입구의 루돌프 조각(좌), 만든 연꽃이지만 황량한 겨울 연못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준다(우) 선암동의 뒷산 정상에 있는 신선암(좌)과 팔각정에서 바라본 울산시 전경(우) 리기다소나무 숲으로 나있는 산길에서 송진을 과도하게 흘리고 있는 나무를 만났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보통 우리는 어디가 아프면 병원을 찾아가지만, 생태계의 동물들은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상처가 드러나는 순간 주변의 수많은 적들로부터 공격을 당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참고 지내다 상처가 지나치면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순간이 오고, 그 생물의 미래는 밝지 않다. 나무의 상처도 비슷하다. 나무가 티를 내도 지나다니는 우리가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있다. 어쨌든 심각한 상처를 입은 나무를 보는 기분이 좋지 않다. 송진이 나무가 흘리는 피처럼 느껴진다.
피눈물을 흘리듯 상처에서 송진이 흘러나온 리기다소나무
자연을 배려하는 것(울산대공원-태화강 전망대)
아이들의 목소리가 산 아래쪽에서 들려온다. 울산대공원의 어린이 교통안전공원에서 나는 소리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숲길을 걸어 옥동에 도착했을 때 대규모로 산허리를 자르고 도로를 내고 있었다. 횡단면이 잘린 숲은 토양층에는 암석층부터 표토층까지 한눈에 드러나고 있다. 항공지도를 보면 이 일대가 도로공사에 의해 완전히 끊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직도 이런 방식으로 산을 절단 내 도로를 만들어야 하나." 길을 돌아가는데 아래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게 짜증이 났다. 산길이 계속되어 힘든데 이런 길까지 나오다니. 여기에 도로가 난 후에 동물들에겐 뭐라고 할까? "불편하니 돌아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써붙이기라도 할까. 공사가 끝난 후에는 생태계를 복원한다고 하며 '에코브리지'를 세울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돈을 쓰고 돈을 버는 사람들이야 이처럼 딱 맞는 사업이 없을 테니까. 그런데 생각해보자 누가 이 산길을 이용하고 있으며, 새 길이 생기면 이용할 사람은 또 누구 인가를, 주와 종이 바뀐 채 돈에 대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주도하는 공사방식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도로를 내기 위해 산의 능선을 횡단한 모습이다. 이런 거면 돈이 좀들어도 터널을 뚫어야 하는거 아닐까? 해발 125.7m의 삼호산으로 가는 중간이 도로에 의해 끊겨 있어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니 '솔마루 산성'이라고 현판을 단 문이 나타난다. "음,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정말 진지하게 산성 문을 복원한 것이라고 봐야 하나? 아니면 탐방로에 설치해 놓은 조성물인가?' 정말이지 그게 그렇다. 누군가 길 위에 쌓인 솔잎을 쓸어 하트를 만들어 놓았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사소한 것으로 상대방을 즐겁게 해 주려 노력할까? 도시라는 곳은, 또 먹고 산다는 것은 날카로운 미늘을 달고 상대를 옭아매려 노리는 작업일 뿐인 건가?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어 보지만 '사실 발등 찍힌 적도 많다.'
삼호산 오르는 길에는 소나무숲과 오리나무숲이 많이 있다. 오리나무는 길을 가면 오리마다 볼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산길, 들길을 차 없이 걸어 다녔으니 나무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오리나무는 길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 오리마다 볼 수 있는 나무임이 분명하다. 길을 걷다 보면 남쪽에는 오리나무를 자주 보게 되고 중부지방에서는 물오리나무를 자주 보게 된다. 그런데 해파랑길 남쪽의 길에서 만나는 오리나무들은 이제 많이 죽어가고 있다. 나무의 나이와 대기오염, 질병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있는 것 같은데 후계목이 자라 올라올지 아니면 다른 나무로 바뀔지는 조금 더 두고 보자.
삼호산 정상을 지나 태화강과 나란히 능선이 이어지는 곳까지 가는 중간에 대규모의 공원묘지가 보인다. 울산공원묘원이다. 결국은 다 맞이해야 하는 길이고 나도 마음속으로 준비를 해 두어야 하는데 이런 곳에 오면 마음이 가라앉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드디어 오리나무 가지 사이로 태화강이 보인다. 저 아래까지 가려면 아직도 오르막 내리막을 몇 번을 더 거듭해야 하지만 마음은 편해진다. 지금은 태화강 국가정원으로 부르는 무거동 앞의 저 대숲에는 인근 주민들이 농사를 짓던 텃밭이 많았던 곳이다. 죽순이 올라올 때면 큰 자루로 여러 자루씩 껍질 벗긴 죽순을 따오던 사람들과 마주쳐 가벼운 실랑이를 벌인적이 있었다. 자기 것이 아닌데도 아무도 안 따가는데 좀 따가면 어떻냐며 더 큰소리로 답을 하던 그들은 승합차 가득 죽순이 든 자루를 싣고 도망치듯 떠났었다. 밭들을 대숲으로 복원하고 다른 나무들도 함께 심어 백로, 해오라비 같은 여름철새들과 떼까마귀들이 찾고, 시민들도 편하게 이용하는 이곳에서 그런 이들을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무거동의 건물 옥상마다 들어서 있는 태양광 집열판도 인상적이다. 태화강 전망대에 도착했는데 아직 해가 있다. 올해 해파랑길 첫 걷기는 오늘까지이다. 3박 4일 동안 1코스에서 6코스까지 걸었다. 아무리 걷기가 좋아도 삼일 지나면 집 생각이 나고 사일째부터는 걷기 싫은 맘이 더 커진다. 참으면 계속 갈 수 있는데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다. 쉴 땐 쉬어야 한다. 마침 무거동에서 울산역으로 가는 버스가 올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아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뛰고 또 뛰었다. 아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고 숨이 가쁘다. 다음 차를 타도 되는 건데, 어쨌든 버스는 탔고 덕분에 기차를 타기 전에 뜨끈한 곰탕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다.
도로를 연결해주는 인도교(좌)와 마음을 연결해주는 솔잎 하트(우) 산길에서 자주 만나는 오리나무 숲(좌)과 울산공원묘원에 잠든 수 많은 기억들(우) 태화강 국가정원 삼호지구의 대숲(좌)과 십리대숲(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