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해파랑길, 오리나무숲엔 오리가 없다

8코스 : 염포삼거리 - 일산해수욕장. 15.4km

by 물냉이

해파랑길 8코스는 염포삼거리에서 일산해수욕장에 이르는 15.4km 구간이다. 산업시설로 번잡한 염포부두길은 해안이지만 걷기가 좋지 않다. 염포삼거리에서 염포산으로 방향을 튼 길은 능선을 따라 울산대교전망대를 거쳐 방어진체육공원입구 교차로 앞으로 나온다. 이때부터 방어진항에 이를 때까지 도로변을 따라걷다가 대왕암, 일산해수욕장에 이르는 절경의 길을 걸을 수 있어 힘든 노정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나무들의 무덤( 염포삼거리-약수터-울산대교전망대- 방어진체육공원입구교차로)

염포삼거리 근처에서 짬뽕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짬뽕을 많이 먹게 된다. 참고로 지난번에 해파랑길을 걸었을 때는 물회를 많이 먹었었다. 염포산 입구에 소나무재선충 예방 나무주사 시행지라고 쓰여있다. 기간을 보니 2017년 1월이다. 그랬다. 그때 그기간에 이길을 걸었었다. 소나무들을 다 베어내고 훈증처리를 한 포장 더미가 산 골짜기 곳곳에 쌓여 있었고, 건너편 골짜기에서는 나무 자르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왔었다. 나무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홀로코스트라고 부르짖었을 것이다. 그들의 사유의 힘을 필력으로 모아 호소성 짙은 기사들을 언론에 실었을 것이다. 걷는 내내 독한 약제(우리가 농약이라고 부르는) 냄새에 목과 코가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렸었다. 숲엔 아직도 그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나무를 훈증 처리한 흔적도 사라지지 않은 채 나무를 덮은 방수포가 조금씩 찢겨 가고 있다. 염포산 골짜기에 있는 약수터는 산길을 오르던 이들이 잠시 목을 축이고 쉬어가던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비소가 초과 검출되어 약수터를 폐쇄했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손을 대보니 물은 여전히 시원한데 눈에 보이지 않는 비소가 있다니 손을 씻는 것도 찜찜하다.

소나무재선충 제거를 위해 훈증처리한 모습(좌)과 비소의 양이 많아 폐쇄한 약수터(우)

염포산에서 울산대교 전망대까지 가는 길에는 오리나무군락이 넓게 분포해 있다. 오리나무는 원래 습한 땅을 좋아하는 나무이다. 동대산에서 무룡산, 염포산으로 이어지는 산들은 서쪽의 태화강 하구와 마주 보고 있어 하구의 습기가 올라오는 장소에 있다. 대기 중의 습도가 높으니 오리나무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된다. 그러니까 염포산은 오리나무들이 살기 좋은 명당인 셈이다. 울산대교 전망대 앞의 도로에 앉아 신발을 벗고 시원하게 바람을 맞는다. 울산대교 전망대에서는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울산항과 장생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밤에 올라가 보면 밤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산업지대의 생기를 볼 수 있다. 천내봉수대와 연결된 산길을 따라 천천히 산을 내려온다. 천내봉수대 입구를 지나 산 중턱에 넓게 퍼진 경작지를 지나면 방어진 체육공원 입구 교차가 나온다.

등산을 온 지역주민들의 방문이 많은 염포산 길(좌)과 오리나무군락(우)


울산대교 전망대에서 바라본 울산항의 야경(좌)과 봉수대에서 발견된 몽돌 안내판(우), 투석용으로 사용했다는데 왠지 애잔한 느낌이 든다.

대왕암의 해국(방어진체육공원입구교차로-소리체험관-대왕암-일산해수욕장)

방어진체육공원입구교차로에서 방어진항까지는 큰길을 따라 해파랑길이 이어진다. 이 마을엔 꽃나루공원이 있는데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노선을 약간 벗어나 골목길로 간다. 공원은 비스듬한 언덕에 소나무와 벚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양버즘나무, 밤나무, 향나무 등이 섞여 있었고 특별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방어진 항에는 말리려 널어놓은 생선들이 오후의 부족한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은지 몸통을 하얗게 드러내고 있다. 원래 시골 장터에 가면 무엇이든 하나라도 사려고 하는 버릇이 있는데 걸을 때는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슬도가 보이는 소리체험관까지 한걸음에 성큼 도작한다.

20200112_161202.jpg 데면데면 지나치는 꽃나루공원, 도시 한복판에 있는 이공원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쉼터가 된다
방어진항의 어물전 앞에 널어 말리고 있는 생선들
아...얘가 가재미인가 광어인가, 도다리인가......가재미겠지?

걷다 보니 대왕암 입구이다. 저녁을 향해 달려가는 해는 피곤한 일정을 재촉한다. 일주일 만에 길을 걸었더니 몸에 녹이 슬었던 것인지 이곳저곳이 삐걱거린다. 대왕암은 지난해 11월에 문화관광해설사 보수교육이 있어 찾아왔었다. 그때 대왕암 입구의 곰솔숲에는 노랗게 핀 털머위가 가득했다. 대왕암에 자문을 온 적이 있다. 그때 입구와 하층이 허전한 곰솔숲에 털머위를 심어 경관을 조성해야 한다는 자문을 했었는데 그 생각이나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게 나의 자문을 받아 이렇게 조성한 건지, 아니면 다른 사연이 있는지 그건 확인할 수가 없다. 담당자를 찾아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고. 이게 자문의 한계이다. 모 그러면 어떤가 생태를 배웠고 그걸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만족한다. 어차피 생색을 낼 일도 없고, 이런 사업을 한 번 하고 나면 내가 그 일에 기여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수 없이 많다. 세상은 그렇게 작은 손길과 손길이 모여 조금씩 변화한다. 오늘은 일산해수욕장 남쪽의 모텔촌에서 하루 묵어갈 거다. 댕바위 공원 건너편에 있는 제주은희네해장국 집에 들러 뜨끈한 국물의 해장국을 주문했다. "어 그런데 밥이 너무 적다." 걸을 때는 밥을 많이 먹게 되는데, 서운했다. 밥을 한 공기 더 주문해 먹고 나와서 계산하다 보니 추가 공깃밥 값은 받지 않는다. 서운함이 순간 사라진다. '참 사람 마음 하고는.'

멀리 슬도등대가 보인다(좌). 오른쪽은 소리박물관의 모습이다.


20191106_155738.jpg 대왕암입구의 곰솔숲 아래 심어 경관을 조성한 털머위
20191106_160745.jpg 대왕암입구의 등대, 작고 단아한 등대가 마음에 쏙 들어 온다.
20191106_162855.jpg 대왕암공원의 절경
20191106_164534.jpg 대왕암공원에서 석양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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