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해파랑길, 저 바다에 누워

9코스 : 일산해수욕장 - 정자항. 19km

by 물냉이

해파랑길9코스는 일산해수욕장에서 정자항까지 이어지는 19km의 산길과 바다를 따라 걷는길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구간이다. 일산해수욕장에서 남목마성에 이르기 까지는 현대중공업의 담장을 따라 길고 지루한 길을 걸어야한다. 그러나 이 지루함은 남목마성에 올라 주전봉수대에 이르면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면 단숨에 사라지게 된다. 하기해수욕장을 지나고 주전몽돌해변의 자갈을 굴리는 파도소리를 감상하며 걷노라면 어느결에 정자항에 닿게 된다.


브런치를 먹다(일산해수욕장-현대중공업-동부회관)

8시 40분, 숙소에서 일부러 조금 늦게 나왔다. 겨울철 일산해수욕장에서는 아침을 먹을 곳이 많지 않아 시간을 좀 늦추면 문을 연 곳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그냥 내 바람일 뿐이었다. 주변을 더 찾아보면 문을 연 식당이 있겠지만 코스에서 너무 벗어난 곳까지 식당을 찾아다니고 싶지는 않다. 조금 지나자 긴 담장이 이어진다. 현대중공업 앞이다. '이렇게 큰 회사가 있으니 건너편에는 문을 연 식당이 꽤 있을 거야.' 담장에는 덩굴식물들을 식재해 장미, 담쟁이덩굴이 시멘트와 흙이 섞인 벽을 덮고 있다. 식물마저 없었다면 이 길은 정말 황량한 길이겠구나 싶다. 은행나무, 개잎갈나무, 왕대, 왕벚나무, 모감주나무가 가로수로 식재되어 있고, 영산홍, 사철나무 같은 키 작은 나무들이 울타리를 이루고 있다. 봄철엔 왕벚나무가, 여름철엔 모감주나무가, 가을에는 은행나무가 각각의 특기로 계절을 수놓을 것이고, 개잎갈나무, 왕대는 사계절 푸른빛으로 길의 황량함을 메워줄 것이다. 그런데 현대중공업 맞은편에 문을 연 식당은 거의 없고(딱 한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너무 돌아가야 해서 포기했다.) 임대라는 글자를 적어 놓은 곳이 자주 눈에 띈다. 이 거리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상가의 황량함을 메워줄 방법은 무엇일까?

현대중공업 담장에 있는 덩굴장미(좌)와 울타리나무와 가로수가 함께 심어져 있는 담장길(우)

10시쯤 되니 길고 긴 담장이 끝이 났다. 남목마성을 넘으려면 어쨌든 아침을 먹어야 할 것 같아 음식점 간판이 많은 동부동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이 시간에도 문을 연 곳이 한 곳도 없다. 더구나 오늘은 월요일인데. 그래도 굶을 처지는 아닌가 보다. 골목 끝에 있는 토스트 가게가 문을 열어 토스트와 커피 한잔을 시켰다. '이 양으로는 끼니가 될 리 없지만 어쩔 수 없다. 안 먹는 것보다 나으니.' 토스트를 먹고 골목을 벗어 나오는데 모퉁이에 문을 연 돼지국밥집이 있다. "아... 조금 더 올걸" 토스트와 커피값이 국밥값 보다 비싸다. 국밥을 더 사 먹을까 하다 허기가 가셔서 인지 생각이 없다. "나도 브런치 먹은 셈 쳐야지."

동부동의 먹자골목과 브런치로 먹은 토스트와 커피

바다를 향해 달리는 마음(동부회관-남목마성-주전봉수대-하기해수욕장)

동부회관을 지나 현대동부패밀리아파트 뒷길로 간다. 아파트 뒤의 산자락에 있는 남목체육소공원 옆길을 통해 해발 189.8m의 봉대산으로 오르기 위해서다. 소나무가 많았던 이산에도 재선충 방재작업이 진행되었다. 이런 길들은 정말 공기가 좋지 않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콧물과 재채기가 연이어 나온다.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8호인 남목마성은 말들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말 목장의 주변을 돌로 쌓아 만든 울타리가 성처럼 보여 붙은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말을 키우기 위해 200여 곳에 말 목장을 설치했다고 하며, 남목마성도 그중 하나로 성의 길이가 5.11km라고 한다. 남목마성의 입구에 오르면 평탄하고 넓은 산길인 '남목역사누리길'이 이어진다. 길가의 상처를 입어 속이 빈 소나무 안에 누군가 동자승 인형에 염주를 걸어 넣어 두었다. 동자승이 비는 덜 맞겠지만 혼자 이 산에서 매일 밤을 보내려면 무섭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도 안 되지만 혼자 걸을 때에는 감정이입이 잘된다. 영화 '캐스트어웨이' 를 보면 주인공인 톰 행크스는 배구공과 친구가 되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게 혼자가 되어 생긴 언어능력인지, 아니면 외로움이 깊어지면서 이야기 상대를 찾는 간절함 인지는 모를 일이다. 봉호사에 다가갈 무렵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오르는 이들을 만났다. 4명이서 둘씩 짝을 이뤄 자전거 여행을 하는 그들은 50대와 60대 초반의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의 에너지와 열정에 저절로 박수가 나왔다.

남목역사누리길(좌)과 나무속에 좌정한 동자승(우)

봉호사 옆에는 주전봉수대가 있다. 세조 때 세워진 이 봉수대는 6m 높이로 돌을 원통형으로 쌓아 올린 것이 사각형 형태인 세종시대에 세운 봉수대와 다른 점이다. 이런데 오면 늘 드는 생각 '여기서는 어떤 걸 봉수 재료로 썼을까?' 봉수대의 봉수는 횃불(烽)과, 연기(燧)를 뜻한다. 낮에는 연기를 피워 신호를 보내고 밤에는 불을 이용한 것이다. 횃불은 나무를 땠을 것이고 멀리까지 나무를 하러 갈 수는 없었을 테니 주변에 자라는 나무들을 이용하였을 것이다. 비가 오거나 하는 걸 대비해 나무를 말려 사용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 연기는 어떻게 했을까? 제주도에서는 소똥과 말똥을 말려 사용했다고 한다. 내륙에서는 소똥과 말똥을 나르는 것도 힘들어 산 짐승의 똥을 모아 이용했다고 한다. 봉수를 날마다 올리지는 않았을 테지만 수시로 짐승 똥을 주으러 다니는 모습이 상상된다. '그러고 보니 내 주위에 포유류나 조류를 전공하는 이들도 똥만 보면 정신없이 살펴보던데.' 봉수대에서 바다 쪽으로 해수관음상이 있다. 관음상으로 가는 입구에는 잘 자란 로즈메리가 한그루 서있다.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 있는 식물이지만 로즈메리의 향을 생각하면 가장 적절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관음상 앞에는 한 사람이 좌정할 만한 편편한 바위가 있는데 그곳에 앉아 양말을 벗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쉬고 있는데 여성 몇 분이 나에게 말을 붙이다 깜짝 놀란다. 뒷모습이 할머니처럼 생겨서 할머니인 줄 알았단다. '머리가 좀 길어서 그랬겠지만, 그래도 할머니로 보일 정도는 아닌데.' 아무튼 푸른 바다에 기대 누워 마음을 바람에 씻는 시간이었다.

봉호사를 떠나 하기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작은 산지습지를 만났다. 산속의 후미진 곳에서 물억새와 사초류 그리고 몇 가지 습지식물을 품고 있는 산지습지는 규모가 작다 해도 산속의 동물들에게는 중요한 서식지가 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계단을 따라 산을 내려오니, 바다로 가는 출구가 나를 반긴다. 나는 저 빛처럼 환한 바다를 쫓아 말처럼 달려온 것이다.

봉호사 입구에서 바라본 현대조선소(좌), 원형의 주전봉수대(중),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로즈마리(우사진 왼쪽구석)

산속의 작은 습지(좌)와 하기해변으로 나가는 굴다리(우)


길마다 쌓이는 이야기(하기해수욕장-주전몽돌해변-당사항-우가산-정자항)

해변에 자갈이 많은 작은 해수욕장인 하기 해변에 파도가 높다. 이 해변에 있는 주전천은 하천의 길이도 짧고 물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여름철이면 캠핑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가성비라고 했던가 규모에 비해 이용도가 높은 곳이 하기 해변이다. 주전항으로 가는 길 길가에 말린 생선이 속을 비운채 줄지어 걸려있다. 속을 비우면 썩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먹이가 되기도 쉽다. 나이를 먹어가며 세상의 속성에 조금씩 물들어 가는 나의 한계를 다시 바라본다. 주전항의 빨간 등대가 멀리서도 손이라도 흔드는 듯 눈에 띈다. 주전마을 제당터에는 기념 조각물이 세워져 있다. 이 제당은 할배당이며, 주전마을에는 10여 곳의 제당이 있었는데 2005년에 경로당을 지으면서 함께 통폐합했다고 한다. 보통 할배당은 산신을 모시고 있어 마을이나 산 쪽에 있고, 할매당은 바다신을 모셔 바다 쪽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걸으며 보니 그 위치는 마을에 따라 달랐다. 마을마다 신을 해석하거나 섬기는 방법에 따라 위치가 달라질 수 있는 것 같다.

주전 몽돌해변에 들러 작은 몽돌을 만져 본다. 반질거리는 돌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세상의 사람이 이 돌처럼 많겠지, 비슷비슷해 보여도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빛을 내기도 하고 다른 돌 밑에 깔려 다음을 기다리며 어두운 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이 돌이나 사람 사는 거나 닮아 있는 것 같다. 해수욕장 앞에 있는 해마지라는 식당에 들어가서 전복뚝배기에 밥 한 공기를 더 시켜 먹는다. '아까 먹은 것은 브런치가 아니라 아침이었어.'

구암마을에서 강동 누리길을 따라 걷는다. 어물천이라고도 부르는 금천하구에 있는 돌은 청록색의 무늬가 많이 들어가 있다. 금천 주변에는 마을의 서낭당을 비롯해 마애사 주변의 마애여래좌상, 방바위, 길상바위 등등 문화자원들이 많지만 길을 걸으면서 보기보다는 별도의 시간을 내 방문하는 것이 좋다. 강동 사랑길을 별도로 걷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당사 해양 낚시공원을 지나 당사항에서 길을 고민한다. 여기부터는 우가산 쪽으로 올라가 옹녀와 강쇠의 이야기가 있는 길을 걸어 제전항으로 내려가야 한다. 나는 강동사랑길 5코스인 우가항을 거쳐 제전항에 이르는 바닷길을 선택한다. 앞으로도 노선을 따라 산길보다는 바다 쪽 길을 이용할 생각이다. 바닷길은 돌을 깨서 길을 조성하였는데 걷기에는 불편하지만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어서 그런지 얕은 바닷가에 그동안 보지 못하던 해초들이 자라고 있다. 제전항에서 다시 해파랑길 안내표지를 만나 정자항으로 향한다.

주변에 바위가 있어 얕은 동굴처럼 내륙으로 쑥 들어와 있는 판지항에는 여신의 신을 훔쳐 사람이 된 여신과 결혼한 총각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뒤로 이 마을에서는 물에 빠진 여성의 신발을 건져주는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된다는데, '수영은 잘해야 할 것 같다.'

높다란 고층빌딩이 서있는 정자항이 저 멀리 보이는 곳에 곽암이 있다. 미역바위라는 뜻의 바위에는 고려 개국공신인 박윤웅의 이름인 '允雄'이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어느 게 그 바위 인지 알아보기는 어렵다. 바위에 표식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니 해설판에 사진을 넣고 표시를 해주면 좋을 텐데. 신경을 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는 정자천 하구에 쌓여있는 신생대 조개화석 역시 비슷한 현실에 처해있다. 정자천을 건너 남정자 경로당 앞에서 9코스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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