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해파랑길,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31코스 :궁촌레일바이크역- 맹방해변. 9.8km

by 물냉이

해파랑길 31코스는 궁촌레일바이크역에서 맹방해변까지 이어지는 9.8km의 코스이다. 궁촌에서 구 7번 국도를 따라 근덕면 동막리까지 가고 이곳에서 마읍천변으로 나있는 제방길을 걷는다. 부남리마을 뒷길을 따라 걷다가 덕봉산과 맹방해수욕장에 이르게 되는데 길이 단조롭다. 마읍천변에는 축사가 있는데 여름철에는 냄새 때문에 걷기 어려운 점도 있다. 다른 경로를 걷고 싶다면 궁촌레일바이크역에서 대진항을 거쳐 부담리, 덕산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택할 수 있다. 단, 부남리까지는 도로가 나있어 길을 따라 걸으면 되지만 부담에서 덕산까지는 등산로를 가야 한다. 이 길을 걸을 경우 산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특히 덕산항과 새바위의 풍경이 이 구간을 대표한다.


공양왕릉에도 봄은 오고(궁촌레일바이크역- 동막교)

궁촌레일바이크역을 나와 앞산 자락에 있는 공양왕릉을 바라보며 걷는다. 길가의 매화가 함박꽃을 피웠다. 누구나 알듯이 공양왕은 고려의 마지막 왕으로 그의 아들들과 함께 태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언제고 반란의 여지가 있는 구제국의 왕을 누가 그냥 두겠는가. 고구려의 적통을 자처한 고려의 왕릉은 대부분 북한에 있다. 남한에는 강화도에 석릉과 홍릉, 그리고 공양왕의 능을 합해 세 곳만이 있다. 공양왕의 능은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과 삼척 두 곳에 있는데, 세종실록에 기록이 있는 원당동의 공양왕릉은 사적 제191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척의 공양왕릉은 허목이 쓴 척주지에 근거하며 강원도 기념물 제71호이다. 삼척의 공양왕릉은 공양왕과 그의 두 아들, 그리고 하녀 또는 말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4기의 무덤이 함께 있다. 공양왕릉을 끼고 산길을 걸으면 대진항과 부남 2리를 거치는 바닷길을 갈 수 있지만 그 길은 포기하고 도로를 따라 걷는다. 내가 바닷가의 산길을 따라가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산길을 오르내리는 것이 싫어서이고, 다른 하나는 대진항 일대에서 오랜 시간 개발되고 있는 삼척방재 일반산업단지 때문이다. 아름다운 대진항 주변에 개발로 폐허가 되어버린 이곳에 산업단지가 들어와도 나는 한동안 이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국토를 걸으며 상처 입은 땅의 속살을 마주하는 것은 정말 참기 어려운 일이다.

20170303_131927.jpg 궁촌역을 떠나 걷는 길가에 매실나무가 활짝 꽃을 피웠다
20170303_132033.jpg 공양왕릉의 돌계단을 오를까 고민하다 돌아 나온다. 슬픈 삶은 과거라 해도 슬프다


동막리로 넘어가는 산길은 넓은 도로에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고 가끔 지나치는 차들만 있다. 몇 년전 이곳에서 산불감시요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은 소일거리 겸해서 감시원일을 하는데 그냥 자리를 지키고 있기가 지루해 매일 언덕을 걸어 넘으면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고 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하시는 그분을 보면서 그의 생각에 공감했었다. 그 황량한 길이 최근에 내린 눈 덕분에 오늘은 보기 좋은 길이 되었다. 소나무숲 사이에 쌓인 눈은 솔잎을 더욱 푸르게 만들어 주어 소나무가 평소보다 훨씬 더 크게 보인다. 백도라지 가공공장 앞을 지나 마읍천을 건너는 동막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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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막으로 가는 산길의 휑함을 눈이 가려준다. 좋고 나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럴 때가 있을 뿐이다


달뿌리풀 숲을 따라 물을 건너면(동막교-부남1리-덕봉산-맹방해수욕장)

동막교에서 바라보는 마읍천에는 흔히 사람들이 갈대라고 이야기하는 달뿌리풀이 가득 들어차 있다. 갈대와 달뿌리풀은 모습은 거의 같지만, 두 식물이 사는 곳은 전혀 다르다. 갈대는 뻘이 있는 투수성이 좋지 않은 물의 흐름이 느린 곳에 살지만, 달뿌리풀은 모래나 돌이 섞인 하천의 물이 흐르는 지역에 산다. 세상은 보이는 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식물이라 할 수 있다. 마읍천 제방길을 따라 걷는다. 궁촌항에서는 활짝 핀 매화꽃을 보았는데 이곳에는 찬바람만 휑하다. 길가에서 이제 막 꽃봉오리를 맺고 있는 생강나무를 만났다. 지역이나 고도 차이가 없는 비슷한 장소에서도 작은 환경적인 차이에 의해 기후가 달라지기도 한다. 이것을 미세기후라고 한다.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면 바람이 많이 부는 곳과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이 있는 것도 미세기후의 차이라 할 수 있다.

20170303_141307.jpg 마읍천의 달뿌리풀군락이 강을 채우고 있다
20200209_153025.jpg 맑은 물이 흐르는 마읍천에서 잠시 쉬어 간다


부남 1리의 마을 앞에는 잘 자라던 마늘 싹들이 눈에 묻혀 있다. 가끔 내리는 눈은 세상의 풍경을 바꾸어주는데 이 눈이 식물이나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다. 덕산교가 있는 부근에는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산이 아닌 물가에서 숲을 이루는 버드나무는 항상 넘치는 물을 걱정해야 하지만 그 덕분에 자신들의 숲을 이루고 산다. 세상에 걱정 없는 이가 누가 있을까. 그 근심 너머에 있는 즐거움을 찾아 누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비결 아닐까.

20200209_155703.jpg 부남 1리에서 눈 속에 묻힌 마늘싹을 바라본다. 따뜻하겠다
20200524_144609.jpg 마읍천의 버드나무와 족제비싸리가 우거진 숲


덕봉산이 보이는 마읍천하구 옆에 있는 덕산리는 마을의 입구에 방풍림인 소나무숲이 있다. 덕산리 마을 안쪽으로 들어간다. 이곳에 있는 '덕산바다횟집'을 들르기 위해서다. 꽤 오랫동안 이곳을 찾아왔는데 물회로 유명한 이 집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그 맛이 변하지 않는 집이다. 이 집을 찾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물회 속에 들어가는 회가 언제나 싱싱하다. 반찬으로 나오는 계란장조림도 맛이 좋다. 물회를 먹고 속을 채운 다음 해수욕장의 남쪽에 갯그령, 좀보리사초, 갯방풍 등 사구식물이 군락을 이루는 덕산해수욕장에서 바다를 감상한다. 마읍천하구에 있는 덕봉산은 대나무의 한 종류인 이대가 빼곡하게 숲을 이루는 곳이다. 이 섬이 마읍천 하구의 중간에 있어, 사구가 덕산해수욕장과 연결되며 물길을 맹방해수욕장으로 흐르게 한다. 이 사구에 외나무다리를 설치해 놓아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다. 덕봉산 앞의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솔숲 우거진 맹방해수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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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리 마을 입구의 소나무숲과 덕산바다횟집의 물회. 맛있다
DSC00221.JPG 덕봉산과 마읍천 하구의 외나무다리
DSC05375.JPG 외나무다리를 따라 마읍천 하구를 건너면 맹방해수욕장이다


20200524_153200.jpg 덕산해수욕장의 사구식물인 갯그령군락과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엄마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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