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해파랑길, 촛대바위 바라보며

32코스 : 맹방해변 - 추암해변. 22.3km

by 물냉이

맹방해수욕장에서 추암해변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 32코스는 20km가 넘는 긴 구간이다. 곰솔숲과 해안의 조화가 아름다운 맹방해수욕장은 곰솔숲을 따라 걷는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32코스는 명소가 많은 곳이다. 매향 이야기와, 하맹방의 유채밭, 실직왕비 무덤, 죽서루, 척주동해비, 촛대바위 등 각 장소마다 한참을 머물러 감상하여야 하는 곳들을 지나치듯 봐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는 구간이다.


우리가 찾는 향(맹방해변-한재-오십천 하구)

덕봉산을 뒤로하고 맹방해변을 걷는다. 모래사장의 길이가 길고 다른 해변에 비해 파도도 낮은 편이어서 여름이면 많은 피서객이 몰리는 곳이다. 겨울에도 여름의 추억을 기억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해변과 함께 잘 조성된 곰솔 숲길을 거닐 수 있어 겨울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다. 아쉬운 점은 화장실 문을 모두 잠가 놓아 관광객들을 당황하게 한다는 것이다. 조금 비용이 든다 해도 관광객들을 위해 화장실을 개방할 필요가 있는 곳이다. 어둑해진 곰솔숲을 걷는다. 곰솔숲의 남쪽으로는 소한천이 흐르는데 마읍천의 하구와 만나 바다로 들어간다. 맹방(孟芳)은 매향방(埋香坊)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매향은 향나무를 바다와 하천이 만나는 하구에 묻는 행위를 말한다. 묻은 향나무는 세월이 지나면 침향처럼 향이 좋아진다고 믿었으며, 매향을 하며 소원을 비는 미륵신앙이다. 한때 이곳의 매향지점을 찾아 마읍천하구와 소한천 일대를 돌아다녔었다. 소한천 공사를 하던 시점에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었는데, 그때 하천을 준설하면서 나온 뻘모래에서 나무 조각들을 여러 개 주워 한동안 보관했었다. 소한천의 상류는 소한굴에서 나오는 찬 계곡물에 민물김이 자라는 곳이다. 지금은 민물김연구소 건물이 계곡 입구에 세워져 민물김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하맹방에서 상맹방 사이의 해변에는 곰솔숲이 파괴되었고 그 자리에 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해안가에 가로수처럼 어린 곰솔들이 식재되어 있지만 이것으로 숲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나중이라도 이 골프장이 곰솔숲으로 복원되어야 한다는 꿈을 갖고 있다. 상맹방의 유채꽃밭과 길가의 벚나무가 만들어 내는 봄철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위로를 삼는다. 맹방을 떠나 한재에 오르면 맹방의 해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오십천변에서 일정을 마무리한다.


20170303_161149.jpg 맹방해변의 긴 모래사장
20170303_161428.jpg 맹방해변에서 바라본 덕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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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방해변의 소나무숲에 조성되어 있는 탐방로


맹방 (2).JPG 유채꽃이 활짝 핀 맹방의 유채꽃밭
삼척맹방 (4).JPG 한재에서 바라본 맹방의 해변과 곰솔숲


오십천에 낯빛을 비추어 보면(오십천 하구-죽서루-장미공원-육향산)

오십천 하구에서 죽서루로 향해 걷는 하천길에서 잠시 빠져나오면 실직왕비릉을 볼 수 있다. 실직왕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손자 김위웅으로 그의 부인은 밀양 박씨이다. 이 왕비릉은 작고 아담한데 능 주변에 있는 석물이 마음에 들어 이곳을 지날 때면 들러 감상하곤 한다. 능 주변의 석물은 상석과 한쌍으로 된 망주석, 문인상, 석호(石虎)와 두 쌍으로 된 석양이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은 망주석이다. 망주석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삶과 죽음, 음과 양을 상징하며, 조선시대의 망주석에는 다람쥐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꽃잎으로 보이는 무늬가 새겨져 있다.

관동 8경 중의 하나인 죽서루는 오십천의 절벽 위에 세워진 정자이다. 단원이나 겸제의 그림을 통해 죽서루 절벽 일대의 모습이 과거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연석을 초석으로 삼은 죽서루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아름답지만 죽서루의 건너편 강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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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왕비릉과 망주석. 망주석에는 조선시대의 망주석처럼 다람쥐가 조각되어 있지 않고 꽃문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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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제 정선의 죽서루 그림과 단원 김홍도의 죽서루 그림은 닮아 있으면서도 다른 것들이 있다. 이 차이점을 찾아 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


20170501_075752_HDR.jpg 죽서루가 있는 절벽과 물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바라본다


20190608_155108.jpg 절벽 위의 죽서루
DSCN0184-죽서루.JPG 가까이에서 바라본 죽서루 풍경. 자연석을 초석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침햇살을 받으며 오십천을 걷는다. 오십천의 하구의 하천변에는 삼척장미공원이 있어 여름이면 이곳에서 다양한 색상과 형태의 장미꽃을 만날 수 있다. 장미공원을 걸을 때면 크리스토프 갱스 감독의 영화 '미녀와 야수'를 떠올리곤 했다. 이 영화는 사건의 발단과 긴장, 갈등, 해결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다양한 모습의 장미들이 화면을 채운다. 장미의 다양한 아름다움과 상징을 느껴보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겨울이라면 오십천에서 떨어진 도로인 오십천로를 따라 육향산 입구까지 걷는 것도 괜찮다. 다만 이 길의 개잎갈나무 가로수는 전정작업을 과도하게 해 나무의 모습이 안쓰럽다.

육향산의 입구는 과거 '동해척주비'가 있던 곳이다. 비는 산의 정상으로 옮겨 놓았다. 동해척주비는 삼척부사를 지낸 허목이 해일과 수해를 막기 위해 동해송을 지어 비로 세운 것이다. 놀랍게도 이 비를 세우면서 수해가 사라졌다고 한다. 비석의 전면에 쓰인 척주동해비( 陟州東海碑)는 전서체로 마치 부적에 쓰인 주문처럼 느껴진다. 이 주문이 성난 자연을 가라 앉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육향산에 있는 '대한평수토찬비'나 '우전각'은 모두 물을 다스리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척주동해비와 함께 재해에 고통받는 백성들을 걱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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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가오면 삼척 장미공원엔 다양한 색과 모습의 장미들이 축제를 연다
20200210_074217.jpg 오십천로의 개잎갈나무 가로수들과 같은 형태로 지어진 주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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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주동해비와 육향의 정상에 조성된 육향정


바다는 바위를 다듬어(육향산-새천년도로-삼척해변-해가사터-추암해변)

삼척항은 산업용 선박과 어선들을 대는 항이 구분되어 있다. 어항을 걸으며 어촌의 소소한 일상을 마주할 수 있다. 항의 북서쪽에 있는 산자락에는 서낭당이 있는데 이곳에 가보면 누군가가 제수로 바친 물고기들이 걸려 있곤 했다. 처음에는 좀 생소했지만 나의 잡은 것을 감사의 표시로 바친 것이라 생각하니 이해가 갔다.

정하동의 달동네 골목을 오르면 능선을 따라 경작지들이 나타나고 소나무숲길을 걸어 광진항의 입구로 내려오게 된다. 이른 봄이면 언덕의 경사진 작은 텃밭들에 농사를 짓기 위해 퇴비를 뿌리거나 밭을 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나는 바다 쪽의 새천년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청명한 날의 상큼한 바다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 준다. 푸른 바다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기암괴석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은 촛대바위에 가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걷는 길은 도로변과 조성해 놓은 데크가 번갈아 가며 있다. 바닷가의 데크길은 해안의 경관과 환경을 파괴하고, 해풍에 의해 쉽게 부식되며, 해일이나 파도에 의해 자주 훼손되어 관리비가 많이 들어가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해안길을 조성할 때 데크의 설치는 하지 않도록 권하지만 폭이 좁은 도로에 인도를 설치하기 어려운 점과, 데크를 설치하면 평소에 접근할 수 없었던 절경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해안 데크 탐방로의 설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170304_092752.jpg 삼척항에서 바라본 뒷산 중턱의 서낭당
20170304_094340.jpg 이른 봄 정하동의 골목을 오르면 다락밭에 농사를 짓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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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동의 산에 있는 경작지와 동해바다가 보이는 소나무숲


잔설이 남아 있는 비치조각공원을 지나 해안의 파도와 바위를 감상하며 걷는다. 군의 해안 초소를 바라보며 오르고 있는 두꺼비바위는 그 모습이 비슷해 많은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전망대까지 마련해 놓았다. 나에게는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곰솔이 더 눈에 들어온다. 살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제 몫을 다하며 살아가는 식물들은 나에게 힘을 준다. 힘든 건 사람만이 아니다. 두꺼비바위를 지나면 보이는 후진항의 옛 이름은 '뒷나루'이다. 이곳은 해안가에 돌을 신체로 하고 바람신을 모시는 해신당이 있었는데 해안도로가 생기며 건물이 사라진 것을 2011년 복원하였다. 당 안에는 동해용왕과 성황의 신위가 있다.

20200210_090646.jpg 잔설이 남아 있는 비치조각공원
20200210_091425.jpg 해안의 초소를 바라보고 있는 두꺼비바위
20200210_093305(0).jpg 뒷나루의 해신당. 뒷나루를 한자로 바꾸면 후진으로 정말 후진 이름이 된다


삼척해변에 도착하니 이전에 이곳을 지날 때 만났던 이가 생각났다. 그는 서울을 떠나 삼척의 바닷가에 집을 싸게 구입해 살고 있다고 했다. 언제든 삼척에 오면 놀러 오라고 했는데 "아, 연락처가 없다." 삼척해변의 끝자락에는 온국민서낭당 조형물이 있는데 이 옆의 계단을 이용하면 리조트 주변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해가사터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겨울엔 계단의 출입문을 막아 놓아 이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해가사는 수로부인을 해룡이 납치한 것을 항의해 지은 노래로 해가사터에 돌로 만든 구슬에 새겨져 있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아내 앗은 죄 그 얼마나 큰가

네 만약 어기고 바치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하는 내용이다.


해가사와 함께 헌화가도 함께 새겨져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은 구슬을 돌려 자신의 앞에 용을 타고 있는 수로부인의 그림이 멈추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까지 나는 이 구슬을 굴릴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구슬의 크기가 워낙 크고 무거워 보여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증산해변을 지나면 다양한 모습의 석회암 바위가 있는 이사부사자공원이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장군 이사부가 배에 사자상을 만들어 가지고 가 울릉도 사람들을 위협해 항복을 받아내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라판 트로이 목마인 셈이다. 이 때문에 이사부사자 공원에는 여러 형태의 사자상이 있다. 그 시절에 사자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었길래 사람들이 두려워했을까?


추암해변을 걸으며 촛대바위를 바라본다. 추암해변엔 촛대바위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의 바위들을 볼 수 있다. 추암해변의 석회암이 파도에 씻겨 삐쭉빼쭉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라피에(lapié)라고 한다. 최근엔 이곳에 출렁다리를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더 만들어 주었지만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가 또 하나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함께 든다. '전 국토의 관광지화'라는 말을 생각하며, 추암조각공원의 햇빛 드는 자리에 앉아 해파랑길 32코스를 마무리한다.


20200210_093950.jpg 삼척해변과 솔비치리조트의 모습
20200210_095553.jpg 리조트 앞 바닷가에 조성된 온국민서낭당
20170304_124755.jpg 해가사터의 여의구슬에는 해가사와 헌화가가 쓰여 있다


20170304_125504.jpg 이사부 사자공원에는 다양한 사자상이 있었으나 나무로 된 사자상 일부는 없어지고 지금은 소수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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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암해변의 다양한 형태의 바위들
20170304_132117.jpg 추암해변의 바위들을 바라보며 추암 조각공원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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