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해파랑길, 동해시의 복수초

33코스 : 추암해변 - 묵호항. 14km

by 물냉이

해파랑길 33코스는 추암해변에서 출발해 동해화력, 전천을 거쳐 동해시 한섬해변을 지나 묵호역에 이르는 코스이다. 하지만 이 코스는 1km 정도 더 걸어 묵호항에서 끝마치는 게 더 편리하다. 추암해변을 출발해 동해에 이르기까지 특별히 유명한 곳은 없다. 신라 진성여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의 전설이 서려 있는 감추사가 동해시의 해변에 있지만 탐방로에서 찾아 들어가기가 어렵다. 오히려 동해시의 냉천공원에 잠깐 들러 서낭숲과 복수초를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싸고 싱싱한 회를 언제고 만날 수 있는 묵호항에 들러 잠시 식욕을 발동시켜도 좋다.


개발의 뒤안길에서(추암해변-동해화력발전-전천-송정동-냉천동-묵호항)

시멘트를 나르는 삼척선 대신 관광열차인 바다열차로 더 유명해진 삼척해변역을 떠나 동해화력발전으로 향한다. 이 길은 산업시설이 주여서 주변에 볼만한 자연환경은 없는 길이다. 다만 길가의 회화나무 가로수가 걷기 여행자를 위로해주는데 겨울에는 낙엽이 져 이마저도 어렵다. 더욱이 이 회화나무 가로수의 대부분이 녹병에 걸려 있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회화나무 녹병은 녹병균(Uromyces truncicola)이 회화나무의 가지나 줄기에 길고 홀쭉한 혹을 만드는 병이다. 이 혹 때문에 나무의 가지가 쉬 썩어버리거나 바람에 의해 쉽게 부러진다. 녹병이 걸린 가지를 잘라 태워버려야 치료가 된다는데 이 길의 가로수는 대부분 굵은 가지에 녹병이 발생해 무작정 자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가로수의 상태만큼이나 길의 공기도 좋지 않아 가로수를 바라보며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동해화력발전소의 높다란 굴뚝을 바라보며 동해시 위생처리장을 거쳐 전천하구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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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화력발전의 높은 굴뚝과 녹병에 걸린 회화나무 가로수


전천하구는 예전에는 갯목으로 불렸으며 갯목항이 있었다. 지역주민들의 고깃배가 드나들고 사람들이 찾아와 북적거렸으나 지금은 동해항을 개발하고 시멘트공장이 들어서면서 낚싯배를 댈 수 있는 수준의 전천포구로 바뀌었다. 전천의 하구에는 호해정(湖海亭)이 있는데 해방이 된 것을 기념해 1947년에 지역의 인사들이 지은 정자이다. 정자의 현판 중에 완당의 낙인이 찍힌 천하괴석(天下怪石)이라는 현판이 눈에 띈다. 정자의 생긴 연대를 생각하면 이 현판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호해정의 뒤편 바다 쪽에 할미바위가 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다. 할미바위 앞에는 마고할미의 전설을 적어 놓았는데 만약 추사선생이 '천하괴석'을 이곳에서 쓴 것이라면 아마도 이 할미바위를 보고 쓰지 않았을까. 추사의 글이 그 이전에 다른 곳에서 쓰인 것이라 해도 이곳에 현판을 걸 때는 할미바위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만큼 할미바위와 호해정은 지척에 있다.

전천하구와 나란히 바다를 향하는 남쪽의 산 능선에 있는 만경대(萬景臺)는 전천하구 일대의 동해를 조망할 수 있는 정자이다. 만경대는 1613년 김훈이 세운 정자를 허목이 와서 보고 주변 경치에 감탄하며 만경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지금은 올라가 보면 시멘트 공장만 보이고, 초기에는 해파랑길의 코스였으나 지금은 사람들이 이곳을 들르지 않고 그냥 전천을 따라간다.

20170304_144059.jpg 호해정의 추사선생이 쓴 천하괴석 현판(왼쪽)과 만제 홍낙섭선생의 풍속영귀 현판(오른쪽)
20170304_144252.jpg 호해정 뒤편의 할미바위
20170304_151431.jpg 만경대에서 바라보면 기업가이자 정치를 하기도 한 김성곤회장이 세운 시멘트공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20170304_152427.jpg 만경대 옆의 석회암지대에 형성된 돌리네에는 밭농사를 짓고 있다


전천은 강원도의 다른 하구들과 마찬가지로 연어가 찾아오는 하구이다. 몇 년 전 이곳에서 산란을 위해 돌아온 연어들이 그물에 가로막혀 상류로 올라가지 못하고 하구에서 알을 뿌리며 죽어가는 것을 한나절 동안 본 적이 있었다. 생물들은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다 보니 자꾸 환경을 파괴한다. 지금도 전천하구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원으로는 적극 개발되고 있으나 회유성 어류를 위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20210408_230214.jpg 전천하구에서 상류로 올라가지 못하고 하류를 맴돌다 죽은 연어


꽃이 봄이다(전천-송정동-냉천동-묵호항)

전천하구에서 철교까지 하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 뒤 철길 옆 소로를 걸어 동해역을 거쳐 송정동까지 가는 것이 원래의 코스인데 북평교를 건너 동해항 앞을 지나 송정동으로 들어간다. 동해항으로 가는 큰 길엔 마치 우산처럼 다듬어 놓은 느릅나무 가로수들이 서있다. 가로수를 심을 때 꽃이나 경관을 우선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도로의 폭이 넓거나 오염배출원이 가까이에 있는 가로수들은 오염에 잘 견디고, 주변 환경과 어울려 잘 사는 것을 식재해야 한다. 점심때가 되어 벽화가 그려져 있는 송정동의 골목을 지나 송정시장에 있는 '밥과 찌개'라는 밥집에 들어갔다. 3년 전 이곳에 식당이 문을 열었을 때 즐겁게 식사한 경험이 있어 들어갔는데 그때보다 반찬은 늘었고 음식 맛은 그때와 비슷했다. 사실 3년 전의 음식 맛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그저 맛에 대한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20170304_164708.jpg 동해항 앞의 길에 식재된 느릅나무 가로수. 마치 우산을 펼쳐 놓은 것처럼 전지해 놓았다
20170304_170428.jpg 동해역으로 가는 철로 옆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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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찌개 식당의 3년전 식사(왼쪽)와 이번에 먹은 식사


송정동을 지나 용정동으로 들어서면 철길을 따라 잘 꾸며진 길을 걸을 수 있다. 메타쉐콰이어 가로수는 인도의 보도블록을 일어나게 하거나 포장을 깨뜨리기도 하지만 쭉 뻗은 나무의 수형과 여름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가로수이다. 인도 옆 곰솔숲에도 야자매트를 깔아 걷는 길을 만들어 놓아 걷는 사람이 어느 길이든 선택해 걸을 수 있다. 길 옆의 철로로 가끔씩 열차가 지나갈 때면 그 소리가 소음으로 들리지 않고 어릴 때 기차소리를 들었을 때 설레던 그런 기분이 든다. 이 길은 햇볕이 좋아 다른 곳보다 일찍 봄이 찾아온다. 길가에 심어 놓은 매실나무는 2월이면 하얀 매화꽃을 함박 피워 다른 곳 보다 빨리 봄을 즐긴다.

2월의 동해가 매력적인 곳인 이유는 천곡동에 있는 냉천공원 때문이다. 냉천공원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아추 초미니의 돌리네 구멍을 볼 수도 있는 곳인데, 이곳에서 샘솟는 물은 천곡 동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냉천공원에는 매년 2월이면 노란 복수초가 꽃을 피운다. 호텔과 상점이 들어찬 시내 한복판에서 복수초를 볼 수 있어 매년 봄이면 이곳을 찾아왔었다. 최근에는 야생화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알려져 땅이 녹기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이번 길 여행에도 복수초가 화사하고 노란 꽃을 보여주었다. 지난밤에 눈이 내렸는데 이것이 녹으면서 눈 속의 복수초를 보는 행운도 누릴 수 있었다. 사람들이 자주 찾다 보니 복수초가 필 때면 사진을 찍겠다고 들어가 꽃들을 밟아 뭉개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동해시에서는 지킴이를 고용해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으나 막무가내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막을 수가 없다. 냉천공원의 곳곳에 나무 울타리를 심어 출입을 막고 있기도 하다. 누군가 들어가 짓밟은 꽃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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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동의 철길을 따라 나란히 걸을 수 있는 해파랑길
20200210_134652.jpg 길에서 만난 매화꽃
20200210_140514.jpg 천곡동의 복수초 보호를 위한 출입자제 현수막
20200210_141258.jpg 눈 속의 복수초, 관리인의 허락을 받고 촬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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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를 다시 바닷가로 돌려 철길을 따라 한섬해변과 부곡돌담마을, 그림타일이 장식된 굴다리를 지나 묵호역 사거리에서 묵호항에 도착한다. 요즘은 한섬해변에서 한섬해안길을 따라 천곡항, 고불개해변 등 해안의 절경을 감상하는 이들도 많은데 구간의 마지막을 앞에 두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냥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을." 묵호항의 수산물 판매장에서 대게를 사서 근처에 있는 가게에 대게를 쪄서 포장해 달라고 했다. 며칠 만에 집으로 가는 길에 빈손이 아닌 건 기분 좋은 일이다.

20170305_101911.jpg 부곡동 굴다리의 타일 벽화. 아이들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그림들이다
20200210_143457.jpg 동해 수산물판매센터의 모습
20200210_200937.jpg 삶아 포장한 대게. 대게를 사서 인근에 있는 곳에서 따로 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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