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코스 : 묵호항 - 옥계역 교차로, 11.5km
해파랑길 34코스는 묵호항에서 옥계역 교차로까지의 11.5km 구간이다. 원래의 코스는 망상해변에서 심곡동의 남구만 선생 사당을 지나 해발 301m의 망운산 자락을 빙 돌아 옥계시장에 도착하는 13.8km의 코스이나 바다 쪽으로 막혀있던 구간에 걸을 수 있는 길이 조성되면서 코스가 짧아졌다. 그러나 짧아진 코스는 옥계읍을 경유하지 않으므로 스탬프를 찍으려면 옥계읍까지 들어갔다 되돌아 나와야 한다.
서민의 삶과 바다(묵호항- 어달해변-대진해변-망상해변)
묵호항에서 출발해 논골마을 앞을 지나 묵호등대를 들르지 않고 해변을 따라 걷는다. 묵호등대 일대는 80억 원을 들여 동해도째비골 스카이밸리 조성사업이 한창이다. 묵호등대는 아쉽지만 시설이 모두 완공된 다음에 들러볼 것을 기약한다. 오늘은 집에서 오느라 아침을 먹지 못하고 새벽에 출발했기에 묵호 곰치국집에 들러 아침을 먹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곰치국집들이 문을 열지 않았다. 마침 한 집에서 곰치를 다듬고 있기에 식사가 가능하냐고 물어봤더니 점심 때나 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요즘은 곰치가 통 잡히질 않아요. 우리도 며칠 장사를 못하다가 오늘 겨우 몇 마리 구한 거예요." 못생겨서 버리던 물고기가 별미로 등장하더니 이제는 없어서 팔지 못하는 상황까지 되고 말았다. 그동안 우리는 곰치를 잡으면서 이 물고기가 무리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배려를 했을까. 어느 것이고 남획하면 그 수가 급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 생물이 갑자기 줄어들 때 해양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받는 영향은 또 얼마나 심각한지 우리는 문제가 일어난 후에야 생각하게 된다. 바다는 특히 생태계가 파괴되어도 우리의 눈에 직접 보이지 않아 알 수 없는 곳이다. 고기를 잡는 사람들은 바다의 상태를 좀 더 빨리 알 수 있으니 정부는 이분들의 의견을 항상 듣고 보다 적극적으로 해양정책에 반영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이 늦은 아침은 문을 연 집으로 들어가 북엇국으로 해결했다.
까막바위에서 동쪽으로 선을 그으면 서울에 닿는다고 해서 정동방(正東方)이라고 한다. 정동진, 정서진, 정남진, 정중앙 우리가 많이 들어보던 지역들이 생각난다. 까막바위 옆에는 문어 조각상이 있는데 조선시대 왜구의 피해가 많을 때 왜구에 맨손으로 저항하다 죽어가던 호장(오늘날의 통장이나 이장)이 "내가 비록 너희에게 죽어도 내 영혼은 너희를 다시는 이곳에 못 오게 할 것이다."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먹구름이 일면서 파도가 쳐 배가 뒤집혔다. 이때 살아남은 왜구 배 한 척은 거대한 문어가 나타나 배를 부수고 왜구를 죽였다고 한다. 그냥 들으면 국토를 수호한 호장의 이야기가 감동스럽지만, 이 이야기에는 이 마을의 수령도, 국가의 해안을 지키는 군사도 등장하지 않는다. 국가가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에 산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이 나라는 그렇게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지켜온 나라이다. 국토의 땅 한평, 흙 한 줌이 소중한 이유이다.
바다낚시 배들이 많은 어달항을 지나 길가 언덕에 있는 서낭당을 들른다. 소나무가 서낭목으로 서있고, 서낭당은 낮은 콘크리트 담장 안에 단을 만들어 놓았다. 누군가 막걸리와 사과를 올려놓았다. 단의 위쪽엔 검게 변한 생선토막이 걸려 있다. 이렇게 자신이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바쳐 앞으로도 풍어를 이룰 수 있도록 기원하는 행위를 천신(薦新)이라고 한다. 이런 정성들을 보면 바닷가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여름이면 젊은 층이 많이 놀러 오는 어달해변에는 카페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관광지 분위기에 맞춰 초소의 지붕을 지어 놓았는데 보기에는 오징어 머리 같은데 의도한 바를 제대로 표현한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는 점은 인정해 주고 싶다. 3년 전 이 구간을 걸을 때는 친구들이 찾아와 하룻밤을 같이 자며 걸어 주었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길을 걷는다. 함께 걷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당신이 걷기가 서투르다면 혼자 걷기보다는 함께 걷는 것을 권한다. 길에서 만나는 어려운 일을 보다 쉽게 대처할 수 있으며, 외로움을 느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바닷가에는 해루질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띈다. 바위가 많고, 물이 비교적 얕은 해변에서 해루질이 많이 이루어진다. 주로 미역을 따는 경우가 많고 문어를 잡는 이들도 있다.
대진항의 입구에 있는 나지막한 바위 위에는 '해성당'이라는 이름을 단 해신당이 있다. 나지막한 바위 위에 간소한 단이 있을 뿐이지만 이런 곳들이 지역주민들에게는 실생활의 공간이다. 잠깐 지나가는 걷기 여행자에게도 이런 장소는 의미 있게 느껴진다. 대진항을 지나면 붉은 벽돌담이 길게 이어진다. 지도에는 '함대감투훈련장'이라고 나오는데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서울대학교 동해해양 연구센터 옆의 바닷가에는 철망이 쳐져 접근할 수 없는 바다 저편에 노고암(老姑岩)이라는 바위가 서있다. 안내판을 읽어보면 효녀를 용왕이 데려가는 것을 막으려다 부모가 바위로 변했다는 내용이다. 현대식으로 재해석해보면 바다에 딸을 빼앗기고 부모도 바위가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걸 보면 동해안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당하며 살아왔는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마상천교를 건너면 마상천에서 흘러나와 쌓인 모래가 이룬 노봉해수욕장이 나온다. 겨울철이라 그런지 캠핑장에는 그물이 몇 무더기씩 쌓여 있다. 주차공간을 관광객이 이용하지 않을 때는 지역주민들이 그물 말리는 장소로 이용하는 것도 효율적인 방식인 것 같다. 곰솔숲 사이로 난 길을 걷다 보면 곰솔 사이로 망상역이 보인다. 망상역은 임시역으로 여름휴가철이면 영동선 열차가 정차하여 바다를 찾는 휴가객들의 편의를 봐주었었다. 지금은 망상해수욕장 역이 문을 열어 망상역은 폐역으로 남아 있다. 망상역 앞의 길을 곧장 가면 해변에 캠핑카들이 줄지어 서있고,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망상해변이다. 망상해변은 오토캠핑장이 잘 발달한 곳이다. 해수욕장의 북쪽과 남쪽에 대규모의 캠핑장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이 캠핑장 때문에 훼손된 소나무숲의 면적이 엄청나다. 캠핑장을 조성하며, 시설보다는 소나무숲을 더 살렸다면 지금보다 훨씬 찾아가고픈 곳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캠핑촌에 새롭게 식재한 곰솔들이 더 자란다면 상황은 한결 나아지겠지만 울창한 해송숲을 크게 해치지 않고 유지하면서 캠핑장을 운영하는 다른 곳들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든다.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고개를 돌려 피하며 망상해변을 걷는다. 걸을 때는 될 수 있는 한 모래밭 위를 지나가지 않는데 아무래도 포장된 길이나 흙길보다는 힘이 더 들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모래길을 걸어야 할 때는 바닷물에 젖어 딱딱해진 경계 부분을 따라 걷는다. 장거리 길을 걷다 보니 요령만 늘어나게 된다.
망상해변에서 망운산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원래의 해파랑길 코스이다. 이 길을 따라가면 한적한 농촌 풍경을 볼 수 있다. 김응위 효자각을 지나 남구만 선생의 사당인 약천사를 만날 수 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여태 아니 일어났느냐
재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하나니."
남구만 선생의 이 시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외에도 다른 곳과는 다른 삼척김씨열녀문의 현판과 석회암이 만든 황토빛깔의 테라로사 지형에 들어서 있는 시골집들과 논밭을 보며 옥계시장까지 걸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엔 바닷길을 따라간다.
사라지는 해안숲(망상해변-도직 해변-옥계역 교차로)
망상해수욕장을 벗어나 도직해변을 걷는 길에는 불에 탄 소나무들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동해 산불로 피해받은 곳이다. 산은 불에 탄 나무들을 정리해 긁어 내 한쪽에 탄 나무들을 쌓아 놓거나, 정리한 자리에 새로 묘목을 심었다. 저곳에 다시 숲이 들어서려면 몇십 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재해 앞에서 자연은 언제나 스스로를 치유하지만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는 인간은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자연을 복원한다. 그것이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생태계에도 도움이 되는지는 몇십 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과거의 일을 다 잊어버린 후이다. 그래서 화재가 난 산림의 복원은 입지환경과 여러 조건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생태계의 변화를 함께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제도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동해 바닷가의 소나무숲이나 곰솔숲이 불로 인해 파괴되는 것을 은근히 나쁜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나무가 사라진 곳에 건물이나 시설을 지어 개발하는 것이 좋은 돈벌이라고 생각한다. 해안의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해서는 공유지의 철저한 관리와 공유 경관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정책이 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도직해변 가는 길엔 곰솔숲이 있던 자리에 '동해망상 해변 한옥촌'이 들어서 있다. 바닷가 모래밭에 저런 한옥촌이 맞는 걸까? 나라면 훼손된 곰솔숲을 복원하는 것이 나중에 더 큰 경제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 나처럼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걸 잘 안다.
도직항 옆을 지나는 고가인 도직교 위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는 옥빛을 띠고 있다. 하지만 곧 나타나는 시멘트공장을 보면 이 나라에 석회암지대가 많은 것이 동해의 각 항구의 환경에는 좋기만 한 게 아니란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지역의 주민들이 자신의 생계터전을 내어주며 살아온 이런 곳들에서 주민들에게 충분한 보상은 이루어졌을까. 시멘트공장 앞을 성큼 지나 길을 따라 걸으니 저쪽에 있는 옥계역이 눈에 들어온다. 옥계역사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