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해파랑길, 바다부채길의 절경 속을 거닐면

35코스 : 옥계역 교차로-정동진역. 11km

by 물냉이

해파랑길 35코스는 옥계역 교차로에서 정동진역까지이다. 원래 옥계시장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바다쪽으로 걸어 옥계읍은 들르지 않고 옥계해변으로 바로 출발한다. 옥계해변과 금진해변을 지나면서 바닷가의 좁은 길을 해안 절벽을 바라보며 심곡항까지 걷는다. 심곡항에서 내륙쪽으로 들어와 능선을 따라 정동진 입구까지 가는 것이 원래의 노선이나 요즘은 대부분 심곡항에서 정동진까지의 바닷길인 '바다부채길'을 걷는다. 바다와 해안절벽, 바위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바다의 절경을 걸으며 마주할 수 있다.

35코스 경로.jpg 바닷가 길을 걷다 보면 가보지 못하는 길(노란색 점선)이 생기게 된다


모래밭과 솔밭에 불어온 바람(옥계역 교차로-옥계해변-금진해변)

옥계역 교차로에서 주수천을 건너 산업단지의 넓은 포장도로를 걷는다. 주수천을 건너며 동쪽으로 보이는 시멘트 공장은 원래 주수천하구였을 것이다. 하구에 모래가 퇴적되어 사구가 넓게 형성되면서 물길은 북쪽으로 가 낙풍천의 하구와 합쳐졌고, 주수천하구의 사구는 육지와 붙으며 형태가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구가 있는 곳의 행정구역은 조산리인데 바닷가 사구의 땅과 인근의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산을 조성해서 생긴 이름이다. 조산은 보통 돌을 쌓거나 나무를 심어 조성하는데 바닷가에서는 돌을 구하기 어려우므로 나무를 심는 경우가 많다. 모래밭에서 잘 사는 곰솔을 주로 식재하였을 것이다. 1980년대까지의 지도를 보면 이곳에 경작지가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경작지 주변으로 소나무숲이 있었을 것이다. 자연의 변화는 과거의 지도와 현재의 지도를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지금은 옥계해변이지만 80년대까지는 이곳을 광포(廣浦)로 불렀던 것도 흥미롭다. 옥계해변과 금진해변의 모래밭은 옥계해수욕장 남쪽에서 바다로 들어가는 주수천과 낙풍천이 주공급처이다. 갈대가 우거진 하구를 바라보며 낙풍천을 건너면 옥계해변의 송림이 시작된다.


어릴 때 옥계해변으로 여행을 온 적이 있다. 그때 한밤중에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과 해변을 지나가던 열차의 모습을 보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옥계해변의 소나무숲은 바다쪽은 곰솔숲이고 내륙쪽은 그보다 굵은 소나무숲이 자리 잡고 있다. 소나무들은 줄기에 송진을 채취한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지금은 오랜 시간의 훈장처럼 보이지만 소나무가 감내했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은 꽤 길었을 것이다. 송림을 지나 옥계해변과 금진해변을 걷는다. 겨울이라 해변에 사람은 없다. 해변의 모래사장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해변에 진행된 여러 공사들이 기존의 해변환경에 적합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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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지도와 1990년대의 지도를 비교해 보면 주수천 하구의 조산리 일대가 옥계항이 들어서면서 형태가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200524_181616.jpg 주수천하구에 우거진 갈대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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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풍천하구와 옥계송림의 모습
20200214_133808.jpg 나이를 많이 먹은 소나무마다 송진을 채취한 흔적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20200214_135639.jpg 금진해변의 모래사장과 해안의 사면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곰솔


자연이 빚은 조각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따라갈까(금진해변-심곡항-정동진역)

금진해변을 지나면서 모래 해변은 사라지고 해안절벽에 왕복 2차선의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1980년대 까지만 해도 금진항에서 정동진까지는 바다쪽이건 내륙쪽이건 포장도로가 없는 오지였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내륙쪽으로 도로가 생기면서 통행이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그 덕에 해안의 절경이 보존될 수 있었으며, 우리는 지금 그 혜택을 보고 있다. 하지만 이 길의 폭이 좁아 차가 다닐 때면 위험하고 종종 사면에서 낙석사고가 일어나기도 해 걸을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금진항의 낮은 물에 잘피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잘피는 미역이나 다시마, 김 같은 해조류와는 다르게 뿌리, 줄기, 잎이 명확하며 꽃이 피는 식물이다. 우리나라에는 9종류가 있다고 하는데 동해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대개 거머리말(Zostera marina)이다. 바닷가에 잘피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면 많은 바다생물들이 살 수 있어 '바다의 숲'이라고도 부른다. 잘피가 자라는 곳에 쇠구조물이 있는데 관리를 하는 것인지 방치하는 것인지 애매해 보인다. 어쨌든 금진항의 바다는 생물들도 살만한 곳이라는 이야기이다. 금진항을 지나면서 바닷가로 탐방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편안히 바다의 절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해안가의 이 길을 수로부인에게 꽃을 따다 바친 노인의 전설에 의거해 헌화로라고 부른다. 헌화로에는 합궁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여근곡 앞에 남근이 서있는 모습이라 붙은 이름이다. 후에 이곳을 정비하며 둥근 형태의 바위를 더 가져다 놓았는데 어색함은 내 몫이다. 심곡항에 이를 때까지 바위가 만들어 놓은 절경을 바라보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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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의 좁은 길과 낙석붕괴가 일어난 사면
20200214_140923.jpg 금진항의 전경
20200214_141012.jpg 금진항의 수심이 얕은 곳에 있는 잘피군락
20200214_141111.jpg 해안 절벽의 사면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들
20170307_155918.jpg 합궁골 입구의 남근석
20200214_142237.jpg 인도가 잘 조성된 헌화로의 모습
20200214_143306.jpg 헌화가 가사를 새겨놓은 헌화로 안내표지석


심곡항에서 마을 안쪽에 있는 서낭당을 구경하고 고개를 올라 소나무가 낮게 깔린 산길을 걸으면 정동진의 입구까지 갈 수 있지만 지금은 대부분 심곡항에서 정동진까지 이어지는 '바다부채길'을 이용한다. 바다부채길의 경우 해파랑길에 있는 길 중 유일하게 성인 3,000원의 입장료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천연기념물 제437호로 지정된 이곳은 2,300만 년 전의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도 있다. 2.86km의 거리여서 한 시간 10분 정도면 천천히 걸으면서 충분히 관광을 할 수 있다. 강릉시에서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으니 궁금한 내용은 언제든지 들어가서 확인하면 된다. 입구의 전망타워가 있는 곳의 바위가 만들어 내는 절경과 함께 길을 걸으며 투구바위, 부채바위 등을 볼 수 있다. 나는 이곳을 걸으면서 바닷가의 절벽에 자라는 향나무와 곰솔의 사는 모습을 살펴보는 것을 즐긴다. 살기 어려운 바닷가 절벽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에 힘을 얻기 때문이다. 바다부채길이 끝나는 정동매표소에서 정동진까지는 도로를 따라 걷는 구간이 많아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

20170307_165300.jpg 심곡리 언덕길에서 만난 장승
20170307_171322.jpg 산길의 키 작은 소나무군락
20200214_150149.jpg 바다부채길 입구의 전망대 주변 풍경
20200214_150339.jpg 바다부채길의 아름다운 지형과 해안 절벽에 자라는 향나무
20200214_152517.jpg 바다부채길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부채바위
20200214_155033.jpg 해안의 절벽에 나있는 향나무를 바로 옆에서 보며 걸을 수 있다


정동진은 주변에 고성산이 있어서 고성동으로 불리다 경복궁의 정동쪽에 있다 해서 정동진으로 불리게 되었다. 정동진천의 하구가 바다와 만나는 곳에는 모래시계공원이 있다. 방영한 지 30년이 다 돼가는 드라마 '모래시계'의 영향이 아직까지 강하게 미치고 있는 곳이다. 정동진천의 하구가 마치 물감을 풀은 듯 옥색을 띠고 있다. 이것은 상류에서 오염물질이 떠내려와 생긴 것이다. 나중에 다시 가 보았을 때 큰 비가 내려 바다로 떠내려가면서 정동진천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유명 관광지인 이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또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모래시계공원을 지나 정동진 해변의 모래사장을 따라 걸으면 식당가와 함께 해파랑길 35코스의 마지막인 정동진역이 나온다.



20200214_163010.jpg 정동진 모래시계 공원의 전경
20170308_084432.jpg 정동진 해안의 바다와 곰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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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공원의 기차박물관
20170308_084909.jpg 레일이 달리는 정동진 해변
20170308_085122.jpg 맑은 정동진천 하구의 모습


20200214_163235.jpg 옥빛으로 변한 정동진천 하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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