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해파랑길, 오랫동안 보고 싶은 것들

43코스 : 하조대 해변 - 수산항. 9.5km

by 물냉이

해파랑길 43코스는 하조대 해변에서 수산항에 이르는 9.5km의 짧은 구간이다. 낚시와 해돋이로 알려진 수산항과, 동호해변, 중광정해변, 하조대해변의 넓은 모래사장이 좋은 구간이다.


지켜야 할 것들(수산항- 동호해변-여운포리)


수산항은 해안도로가 없는 오롯하고 작은 항구이다. 해파랑길은 수산항의 마을의 북쪽으로 들어가서 남쪽으로 되돌아 나온다. 수산항을 들르지 않고 그냥 질러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항보다 개발의 손때를 덜타고 햇살 가득했던 수산항의 옛 모습을 떠올리며 언덕을 넘는다. 이곳은 물회가 유명했다. 항구에서 바로 내린 생선은 물회를 찾아 불편함도 마다않고 찾아오는 손님들 덕에 수족관에 머무를 시간없이 바로 순환이 되어 다른 어느곳보다 싱싱했다. 물회 역시 재료의 신선함이 맛의 팔할인 음식이다. 그런데 이번엔 겨울이라해도 이전에 비하면 너무 손님이 없다. 수족관도 만족스럽지 않아 물회를 건너뛰고 고픈배로 다시 돌아 나온다. 한참동안 식사를 할 수 없겠지만 내키지 않는건 어쩔 수 없다. 수산항은 이제 개발되어 과거보다 훨씬 세련되어 보이지만 이전의 정서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수산항을 돌아 나오는 언덕 길가에는 삼월이면 노랗게 꽃을 피운 복수초 몇 포기가 가슴을 설레게 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복수초를 볼 수 없었다. 철이 좀 이른 탓도 있겠지만 그자리에 환삼덩굴이 말라 우거져 있어 어쩌면 앞으로는 복수초를 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수초로 기분을 전환하지 못한채 동호해수욕장을 향해 넘어가는 고갯길의 콘크리트 옹벽들은 황량하고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아 기분전환이 필요하다.


20170329_110449.jpg 포장도로 옆에서 꽃을 피운 복수초
20170329_110521.jpg 복수초의 복수는 복(福)과 수(壽)이다.
20200218_111729_43코스.jpg 덩굴식물이 뒤덮인 현재의 모습


도화리에서 동호해수욕장을 향해 넘어가는 고개에는 동해안 자전거길 도화쉼터가 있다. 동호해수욕장을 지나 온 자전거들이 힘들게 고갯길을 오르다 죽겠다 싶을 때쯤 쉬기 적당한 위치이다. 쉼터의 아래쪽으로는 철책이 있고 갯바위에 하얗게 파도가 부서지는 경관이 빼어나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람을 향해 앉으니 시원함이 눈과 몸으로 다가온다. 이제 가자 싶을 때쯤 동호해수욕장 쪽에서 누군가 절뚝이며 걸어왔다. 이런곳을 걸어올 사람은 분명 해파랑길을 걷는 사람이다. 고통스러워하며 의자에 앉는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직장을 명퇴한 뒤 새로 마음을 다질 겸 평소 걷고 싶었던 해파랑길을 부산부터 걸어 왔다고 했다. 사무직으로 생활하던 이가 하루도 쉬지 않고 부산에서 이곳까지 걸어왔으니 다리가 안아프면 이상한 일이다. 요령도 없이 그냥 무조건 걸어 관절과 근육 모두에 무리가 온 것 같았다. 나머지 일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해, 걷고 난 뒤에 차가운 물을 이용해 근육을 풀어주는 방법과 붓기가 있는 곳을 응급처치하는 방법들을 알려 주었다. 인생의 제2막을 시작하는 시점에 그는 스스로 해파랑길 걷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몸은 힘들어하면서도 마음의 만족함은 큰 것 같았다. 그는 쉬면서 기운을 차렸고 다시 천천히 길을 가기 시작했다.

20200218_113036.jpg 바닷가의 도화쉼터, 자전거 라이더와 걷기 여행자가 함께 쉬어가는 곳이다.
20200218_113122.jpg 도화쉼터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


나도 쉼터를 떠나 계속 길을 간다. 자전거는 언덕길에서 쉬어갈 정도로 힘이 들다 정상에 오르면 막힌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려버리며 신나게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걷는 건 극한을 체험하기보다는 이러나저러나 그저 끊임없이 걸을 뿐이다. 고래가 이름표를 달고 있는 동호해변의 입구에는 클라리넷과 플루트를 부는 두 소녀상이 있다. 두 소녀는 일반 금속 재질을 사용하지 않고 모래를 사용한 모래조각이다. "음 아무리 특수기법을 사용했다지만 이렇게 무너지지 않고 오래 서있다니." 그런데 고래인 줄 알았던 조형물이 설명을 보니 멸치라고 한다. 동호리마을회에서는 여름이면 동호해변을 찾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멸치 후리기'를 한다. 멸치후리기는 배로 그물을 싣고 바다로 나가 그물을 삥 둘러쳐 놓은 후에 그물의 양쪽을 해안에 연결하고 이 끈을 양쪽에서 잡아당겨 물고기를 잡는 방법이다. 해변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고 잡은 물고기를 각자 나누어 가질 수 있어 만족도가 큰 관광상품이다. 잡히는 물고기는 전어, 숭어, 황어, 멸치 등 다양하다. 코로나가 빨리 진정되고 다시 여름에 이런 즐거움을 즐길수 있었으면 좋겠다.

동호해변의 서쪽에는 양양공항이 있다. 뜨고 내리는 비행기는 많지 않지만 공항 주변의 길들은, 포장된 도로를 따라 꾸역꾸역 가야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오가는 차량이 적은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상운천을 지나 하천변에 있는 모래채취장과, 저멀리 보이는 설악산을 그냥 무심히 바라보며 기계적으로 걷는다. 걸음의 즐거움을 느끼기는 무리다. 이럴땐 걸음의 속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


20200218_121158_43코스 동호해변.jpg 동호해변의 멸치 조형물과 악기를 연주하는 소녀상
20200218_123238.jpg 상운천 하구 상류의 모습
20200218_124049.jpg 동해안의 모래를 화수분처럼 퍼낸다.


사라지는 사구습지(여운포리-중광정해변-하조대해변)


여운포리는 원래 연포였으나 여운포로 발음되던 것이 마을 이름으로 굳어진 곳이다. 이곳은 흙담과 블록으로 담장을 쌓은 집들이 고만고만하게 자리 잡은 곳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쇠락하는 시골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 지은 집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낡은 담장에 벽화를 그려넣으면서 마을의 분위기가 다시 살아났다. 골목과 토지 구획도 반듯하게 잘 되어 있어서 마을이 더욱 깨끗해 보이기까지 한다. 마을을 빠져나오는 길, 밭에 만들어 놓은 개집에서 강아지들이 짖어댄다. 집주변에 쳐 놓은 철망에 발을 올리고 내쪽을 향해 꼬리를 흔드는데 그 모습이 마치 몽골의 초원에서 보았던 마못같다. 이곳이 도심도 아닌데 좀 널찍한 곳에 풀어 마음껏 놀게하면 어떨까. 주인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어쩌다 본 사람 모습에 간절히 꼬리치는 강아지들을 보니 마음이 안타깝다.

20200218_124734.jpg 낡은 블록담장이 꽃담장이 되었다
20200218_124828.jpg 유지기한이 짧지만 벽화는 적절히 이용한다면 마을의 환경을 개선하는데 좋은 수단이 된다.
20200218_125020.jpg 마못을 떠올리게 하던 강아지들. 지금은 좀 살만한지 모르겠다.


여운포리, 중광정리의 해변 안쪽은 아직 개발되지 않고 곰솔숲과 중간중간 사구습지들이 자리잡고 있다. 중광정리 사구습지의 일부가 논과 밭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이정도는 언제든 복원이 가능하다. 동해안의 사구습지는 이제 거의 남아있는 곳이 없다. 그나마 개발의 영향이 적은 고성군에 조각난 사구습지들이 존재한다. 이제는 이렇게 남아 있는 곳들만이라도 보전하고 지켜나가야 한다. 원형이 남아 있는 자연은 요즘 많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생태관광의 중요한 자원이다. 앞으로는 사구습지를 이용한 생태관광도 관광의 한축을 담당할 것이다. 하조대해변으로 다가갈수록 중광정리의 사구습지는 교란과 훼손이 심해진다. 이곳은 습지가 넓게 분포하고 있었는데 지속적으로 습지를 메우고 단계적으로 개발을 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보전이 아닌 지속가능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구습지를 개발하는 방식은 우선 모래를 파내 큰 웅덩이를 만들고 이곳에 고인 물들을 퍼낸다. 이렇게하면 웅덩이를 파내면서 골재로 이용할 수 있는 모래를 얻고, 또 웅덩이에 물들이 고이면서 주변의 사구에 스며있던 물들을 모두 뽑아낼 수가 있다. 웅덩이에 물을 퍼낸자리는 흙으로 복토를 하면 사구는 없어지고 개발이 가능한 토지가 생기는 것이다. 금방 개발을 할 수는 없으면 몇년을 방치해 두기도 하는데 이때 육상식물들이 들어와 육화가 빠르게 진행된다. 사구의 훼손을 알아도 복원하려면 흙을 모두 거두어 내고 다시 모래를 채워 넣어야 하니 복원이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원래 바다의 일부분인 사구는 개인이 소유나 이용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닌 공유지이다. 지자체들은 이런 공유지를 개발하면 저렴하게 땅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끊임없이 개발을 한다. 민선으로 뽑는 지자체장들의 세수확보와 치적을 쌓으려는 목적으로 이용되기도 하는 이런 행위들로 인해 동해안의 해수욕장들의 모래가 사라지고 해안이 급격하게 깎여나간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한곳에서 얻은 작은 경제적 이익 때문에 더큰 경제적인 손실이 일어나는 걸 눈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욕심을 내려놓지 않는다. 자연은 다 연결되어 서로 인과를 갖는데 그들은 그 두가지 현상이 서로 다른 것이라고 눈가리고 아웅한다. 끊임없고 거대한 욕망 때문이다.

20200218_125641.jpg 사구와 습지, 그리고 나지
20200218_125810.jpg 사구습지에서 벼농사를 짓는 것은 그나마 피해가 덜 간다. 조금만 방치해도 손쉽게 습지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광정리의 솔숲길과 해파랑길 안내표식
20200218_131503.jpg 중광정리의 잔존하는 사구습지
20200218_131827.jpg 개발 1단계 : 하구습지의 모래를 퍼내고 고인물을 뽑아낸다
20200218_132026.jpg 개발 2단계 : 주변의 사구습지는 건조하게 되고 육상식물들이 들어온다.
20200218_132335.jpg 개발 3단계 : 건조해진 사구습지에 성토작업을 통해 이용하기 좋은 땅으로 만든다.

하조대해변이 가까워지면서 넓은 포장도로가 나온다. 이것들은 하조대해변의 배후사구를 개발하기위해 조성한 것들이다. 점심때가 지나 배가고픈 상황에 눈에 보이는 환경들은 몸의 기운을 더 빠지게 한다. 그래도 확트인 하조대해변을 보니 마음에 위로가 된다. 해변을 보호한다고 설치한 데크를 보며 쓴웃음이 돌지만 어쩌겠는가 해변의 포장도로 위를 천천히 걷는다. 몇몇 사람들이 하조대의 바다를 감상하고 있다. 하조대 전망대가 저만치 앞에 보일 때쯤 43코스의 출발점에 도착한다.


20200218_133908.jpg 하조대해변의 탐방로
20200218_134054.jpg 하조대해변에서 하조대전망대가 이만큼 다가와 보일 때쯤 43코스의 시작점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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