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해파랑길, 영금정 파도의 거문고 소리

45코스 : 설악해맞이공원 - 장사항. 17.5km

by 물냉이

해파랑길 45코스는 설악해맞이공원에서 장사항에 이르는 17.5km의 구간이다. 석호인 영랑호를 한 바퀴 돌고 청초호를 마주할 수 있다. 갯배와 아바이마을, 속초시장에서 어촌 문화와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속초를 대표하는 설악산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다. 45코스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역방향으로 걸었다.


화랑의 젊은 꿈을 따라(장사항-장천마을-범바위-영금정)

장사항을 출발한다. 장사항의 안쪽에 조형물이 있는 '바다숲 공원'과 함께 '장사어촌 체험마을'이라는 안내판을 볼 수 있다. 미역과 오징어를 형상화한 조형물은 이곳의 중요한 수산물이 무엇인지를 쉽게 알게 한다. 이일대는 한때는 모두 사구였던 곳이다. 항구의 주차장 옆에서 바로 단단해진 모래흙을 마주할 수 있다. 장사방파제를 바라보며 영랑호로 접어든다. 석호인 영랑호는 '영랑호습지생태공원' 옆으로 장천천이 유입되고, 영랑교와 사진교 아래의 수로로 바다와 연결된다. 영랑호는 신라의 화랑인 '영랑(永郞)의 이름을 딴 것이다. 신라의 화랑들은 전국의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무술을 수련했다. 자연을 찾아 나서는 것 자체가 운동이 되었을 것이다. 무술 연습을 하지 않을 뿐이지 걷기는 화랑의 수련과 닮은 부분이 있다. 벚나무 가로수들이 서있는 순환도로를 따라 걷는다. 속초시 카누연맹의 건물이 호숫가에 있다. 영랑호에 카누 타는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카누를 타는 사람들이 취미생활을 하는 이들보다는 선수들이 더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 파도가 높은 동해바다를 보다가 영랑호의 잔잔한 물결과 설악산을 보면 또 다른 신비로움이 있다. 화랑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영랑이 영랑호에 머물다 갔듯, 요즘은 속초에서 한달살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20200217_132556.jpg 장사항의 오징어와 미역 조형물

고려시대 사람인 안축(安軸)은 영랑호를 처음으로 읊은 사람이다. 그의 시 영랑포범주(永郞浦泛舟, 영랑호에 배띄우고)에는 거울처럼 잔잔한 영랑호에 배를 띄우고 영랑호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내용들이 나온다. 그는 이곳이 신선이 내려올만한 경치라고 말한다. 영랑호는 속초시민들이 운동을 하는 곳이다. 한 바퀴만 돌면 8킬로를 걷는 것이니 충분히 운동이 된다. 700년 전처럼 신선이 내려왔다가는 시민들의 모습이 낯설어 서둘러 돌아갈 것 같다. 안축의 시에는 연꽃과 순채가 나온다. 그러고 보니 고성의 천진호에서도 각시수련과 순채가 있다. 안축이 본 연꽃은 오늘날의 연꽃일 수도 있지만 각시수련일 수도 있다. 속초와 고성 일대의 석호에는 각시수련과 순채가 흔했을 것이다.

20170321_154550.jpg 설악산을 배경으로 하는 영랑호에서 카누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20170321_154558.jpg 속초시 카누연맹 건물
20170321_155029.jpg 공룡의 머리가 영랑호를 바라보고 있다
20170321_155904.jpg 영랑호 습지의 갈대와 전경
20170321_160905.jpg 범바위 일대와 영랑호
20170321_163140.jpg 영랑호에 전해오는 설화를 조형물로 나타냈다


범바위는 속초 8경 중에 2경에 속하는 명소이다. 그럼 속초 8경은 무엇일까? 1경은 동명항 등대전망대, 2경 범바위, 3경 청대산, 4경 청초호, 5경 조도, 6경 대포 외옹치, 7경 설악 해맞이공원, 8경 학무정 등이다. 청대산이나 속초해변의 조도 등은 외지인들에게는 좀 낯선 곳이지만 대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범바위는 덫에 걸린 호랑이를 구해준 나그네와 호랑이의 우정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길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범바위 위로 올라갈 수 있는데, 범바위 위에 올려져 있는 바위들의 모습이 곧 구를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이런 돌을 어디서 보았는가 했는데 설악산의 흔들바위가 떠올랐다. 이런 바위들을 '핵석(core stone)'이라고 한다. 핵석은 바위가 절리에 의해 기반암과 분리된 상태에서 풍화작용에 의해 깎여 나가면서 만들어진다. 이때 모서리의 풍화가 빠르게 진행되면 둥근 모습의 바위가 된다. 범바위 위에서 영랑호를 감상하다 내려오는 길에 바로 옆의 영랑정에 들렀다 내려온다.

영랑호의 주변엔 과거부터 숙박시설들이 조성되어 있는데 산불로 인해 모두 타버리고 아직 복구가 되지 않은 상태이다. 주변의 경관을 더 이상 훼손하지 않으면서 시설들이 복구되기를 바래본다. 이참에 시설들을 모두 철거하고 자연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도 고려해보면 어떨까. 히말리야시다가로수길을 지나 방사제가 설치된 해변을 걷는다. 저 앞에 속초등대의 모습이 보인다.


20170321_164947.jpg 영랑호 범바위
20210121_135353.jpg 영랑정과 핵석
20210121_135529.jpg 범바위 위의 핵석과 영랑호
20210121_141431.jpg 범바위와 영랑정


20170321_170324.jpg 화재 이전의 영랑호 주변의 숙박시설
20210121_130757.jpg 영랑호 주변의 히말리야시다가로수
20200217_134354.jpg 해변에 말리고 있는 가자미와 명태, 멀리 속초등대가 보인다


거문고 소리에 취해(영금정-외옹치항-대호항-설악해맞이공원)

과거에는 속초에서 회를 싸게 먹으려면 동명항을 찾았었다. 지금은 회보다는 영금정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길을 걷을 때는 어디고 들르는 것이 귀찮은 일인데, 파도가 가까이까지 치고 올라오는 영금정 앞의 다리 정자까지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게 된다. 사실 영금정은 정자가 아니다. 바닷가의 바위산 위에 있는 정자를 닮은 바위를 말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산 위에 세운 정자를 영금정으로 찾는다. 이곳에 서면 바위로 파고드는 파도소리가 마치 거문고 소리 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의 바위는 속초항의 방파제를 조성하기 위해 파괴되어 원형을 잃고 말았다. 그렇지만 지금도 수려한 바다경관과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원래의 모습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바다로 향해 나있는 전망대에서 파도소리를 듣는다. 6줄 거문고의 소리가 들리는 듯 아닌 듯 어지럽다.

20170322_083141-45코스.jpg 바다 쪽에서 바라본 영금정 경관


영금정 입구에 전시된 과거 영금정 일대의 모습
20200217_134746_45코스 영금정 상징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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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금정의 상징인 거문고 조형물과 속초등대

속초항 여객터미널 앞의 포장길을 걸어 생선구이 거리에 도착한다. 속초항의 생선구이집들은 TV에 여러 차례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져 지금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속초관광수산시장을 들러보는 것이 좋다. 닭강정, 대게찜, 오징어순대 등 널리 알려진 먹거리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걷는데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갯배선착장에서 건너편에 가 있는 갯배를 기다린다. 청호동과 중앙동을 케이블을 연결해 건너는 갯배는 속초시민의 대중교통으로 쓰였으나 지금은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체험시설이 되었다. 갯배를 건너 청호해변 근처에는 음식점들이 많다. 아바이순대나 홍게장은 참고 지나가기 힘든 맛을 지니고 있다. 설악대교를 건너며 설악산과 어우러진 청초호를 구경한다. 요즘은 청초호 호수공원과 유원지를 찾는 관광객들도 많다. 아바이마을의 벽화는 북한의 가족들과 헤어져 조금이라도 고향 가까이서 사는 아바이들의 사연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TV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보며 그 아픔이 절절했는데 지금은 하나 둘 잊혀져 가는 기억들이다. '빨리빨리'로 대표되던 나라에서 시간의 흐름은 참 많은 것을 잊게 한다.



DSC09498.JPG 속초관광 수산시장
20210402_150514.jpg 속초의 오징어순대


DSC09518.JPG 갯배
20200217_141418.jpg 갯배가 건너는 속초항일대 모습
20200217_142019.jpg 설악을 배경으로 하는 청초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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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이마을의 벽화

속초해변에서 해송숲을 거닐며 다시 힘을 얻는다. 내친김에 외옹치항으로 가는 언덕을 넘어 대포항에 도착한다. 대호항의 배에서 잡은 활어를 바로 내려 판매해 회값이 싸고 맛있어 대포항의 입구 도로까지 차들이 길게 줄을 서던 곳이었다. 지금은 관광지로 잘 정비되고 넓은 주차장도 마련되어 보기 좋지만 과거의 그 좁은 선창에서 시끌벅적하던 모습은 볼 수 없다. 그때는 회도, 상인도, 관광객도 모두가 뒤섞여 펄떡거리곤 했다. 항의 깔끔한 중국집에 들러 해물짬뽕을 한 그릇 먹는다. 근처의 횟집에서 섭국을 한 그릇 먹어도 좋으련만, 혼자 대포항을 걸으면서 들어가 먹기는 부담스러운 생각이 든다.

어쨌든 든든히 속을 채우고 널찍한 주차장을 터벅터벅 걸어 나와 길을 따라 걸으며 설악 해맞이 공원에 도착한다. 이전엔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할 때 이곳에 도착하면 이제 속초시내에 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 곳이다. 지금은 바닷가에 있는 인어 연인상을 보려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렇게 45코스의 시작점에 도착했다.


20200217_144542.jpg 해송숲 사이로 난 속초 해변길
20200217_152019_45코스 대포항.jpg 대포항의 음식점이 있는 거리
20200217_155508.jpg 대포항의 바다 쪽 거리


20170322_112848-44코스.jpg 인어연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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