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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램 donggram Jun 06. 2024

살아가고, 사랑할 것

상갓집에 다녀왔다. 몇 층으로 가야 할까. 장례식장 입구에 띄워진 모니터를 살펴보다 한 곳에 시선이 멈췄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 사이에 자리 잡은 젊은 남자. 자식과 손주들의 이름으로 빼곡히 채워진 여느 상주 리스트와는 달리, 그의 가족은 ‘배우자’뿐이었다.


어쩐지 남 일 같지 않았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우리 부부가 가진 건 남보다 못한 형제뿐이었기에. “나중에 우리 둘 중에 한 명이 떠나면, 저렇게 배우자 이름만 올라와 있겠다”며 덤덤한 대화를 주고받다가도 신랑의 죽음을 상상해 보면 말문이 턱 막힌다.


그와 가족이 된 후 내게 ‘두려움’으로 다가오던 대부분의 것들이 사라졌다. 무언가를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좋은 배우자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온전한 행복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까지. 그런 내가 유일하게 겁내는 것이 있다면 ‘신랑과의 영원한 이별’이다.


당신과 함께라 헤쳐나갈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릴 것 같다. 아무리 고심을 해봐도 혼자 살아낼 자신이 없다. 농담처럼 뱉었던 “대한민국 남성 평균 수명이 여성보다 5년 짧은데, 자기가 나보다 다섯 살 더 많으니까 난 10년이나 혼자 살게 될지도 몰라” 같은 말들도 사실은 내게 그리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는다. 제아무리 금술 좋은 부부래도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이별이다. 그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내게도 나름의 해결책이 필요했다. 결국 반드시 죽는다는 ‘확실함’과 그게 언제일지 모른다는 ‘불확실함’ 사이에서 초조하게 떨고 있던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다.


어제 사랑을 고백했다고 해서 오늘의 사랑을 아껴두지 말 것. 한 번 더 안아줄 것. 매일 입 맞출 것. 잠에 들기 전 서로에게 수고의 인사를 건넬 것. 과거에 얽매이지도, 미래를 불안해하지도 말고 지금 그대로에 진심을 다할 것.


어쩌면 죽음은 우리에게 늘 경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가고, 또 사랑하라고. 후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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