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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여린 Jun 05. 2024

그때도 지금도 내가 있어 다행이야

 마지막까지 죽음에 저항하며 삶을 원하시던 외할머니는 결국 암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몇 달 후 외할아버지는 자신의 쓰임이 다했다는 듯 자연스레 생을 마감하셨다. 같은 해 나는 지독한 우울증에 지쳐있었고 삶을 포기하려 하고 있었다. 결국 응급실에 실려 갔고, 눈을 떠보니 생이 연장되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지만 강한 빛을 내고 있는 조카가 태어났다. 여러 생명이 교차되던 진한 시간이었다. 


 조카를 만나러 가는 날이면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 죽음을 택하려 했던 내가 이렇게 환하고 깨끗한 생명 앞에 서도 괜찮은 걸까, 혹여 나의 어둠이 아주 미세하게라도 이 아기에게 전해지면 어쩌지......' 이런 자기 파괴적인 생각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점점 더 우울함과 불안감이 득실거리는 어두운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스스로를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울증이란 병은 내가 만들어낸 감정과 생각들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파멸시켜 가게 만들었다. 


 조카에게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뭘까에 대해 고민하다 오랜만에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다. 화사한 분홍 꽃다발을 그려 선물했다. 그 당시 조카의 탄생으로 인해 내가 갖게 된 밝은 마음을 모조리 담아 그린 그림이었다. 그렇게 점점 성장해 가는 조카 앞에서 최대한 나의 어둠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더 과하게 웃고, 밝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입맛도 없고 소화도 잘 안 되어 비쩍 마른 몸은 조카와 시간을 잠시 보내면 에너지가 다해 옆 방에서 쓰러지듯 잠을 잤다. 그런 나를 보고 조카는 잘도 웃고, 안아줬다. 


 기나긴 우울증에 마침표를 찍고 건강해진 지금, 조카는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고 말도 재잘재잘 참 잘한다. 농담도 수준급이라 웃기기까지 한다. 얼마 전 조카와 한강에서 피크닉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따듯한 햇살, 편하게 웃는 얼굴,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무탈한 나날들에 감사함이 솟구친다. 밤이 되어 헤어질 시간, 조카와 나는 서로에게 손을 힘차게 흔들며 "다음에 또 만나! 그때도 우리 재밌게 놀자!"라고 말한다. 조카가 떠난 후 조용해진 집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 힘들어도 버티길 정말 잘했다. 그때 안 죽고 살아서 진짜 다행이다!'


 그때도 지금도 내가 이 세상에 있어 참 다행이다. 그때도 지금도 내가 조카 옆에 있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때도 지금도 내 존재 자체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있구나. 그때 삶을 포기해 버렸다면, 조카는 나의 부재에서 엄청난 어두움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삶을 간절히 포기하고 싶은 지친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 깊고 긴 어둠에도 끝은 분명 있다고, 하루하루 죽지 않고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거라고, 지금 당장은 기대야 되는 순간이 많을지라도 조금만 더 버티면 언젠간 사람들이 기댈 수 있을 만큼의 더 크고 튼튼한 마음을 갖게 될 거라고, 그러니 자책 말고 무리하지 말고 살아만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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