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가까이 우울증을 앓았다. 불안과 우울이 짓눌러 몸을 일으키는 거 조차 힘들었다. 숨만 붙어있다 뿐이지 시체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껴졌다. 정말 하루 딱 30분만이라도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빌었다. 야속하게도 긴장으로 굳어버린 불편한 얼굴과 몸과 마음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익숙해져만 갔다. 익숙해진 만큼 지쳤다. 지친 만큼 혼란스러웠다. 과거의 긍정적이고 밝았던 나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고 두려움에 떨며 움츠러든 나만 방 안에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를 버릴 수 없었다. 처음엔 내 옆에 있어주며 같이 버텨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힘을 냈다. 그들을 위해 어떻게든 건강해져 보겠다고 치료도 받고 약도 먹어 가며 캄캄했던 수많은 날들을 지나왔다. 느리지만 차근차근 회복하다 보니 그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이겨내어 되찾고 싶었다. 거창한 꿈도 명예도 부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일상들을 꼭 다시 만나고 싶었다.
의사 선생님께 이제 약을 안 먹어도 될 만큼 우울증이 좋아진 거 같다는 이야기를 듣던 날, 상담 선생님께 혼자 힘으로 설 수 있는 힘이 생긴 거 같으니 상담을 종료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듣던 날, 집으로 운전하여 돌아가는 길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수없이 다녔던, 언제가 끝일지도 몰랐던 병원 가는 길에 진짜 마지막 날이 온 것이다.
그 후,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튼튼해지는 것에 가속도가 붙었고 남편과 경주 여행을 떠났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눈이 상쾌하게 떠졌다. 악몽을 꾸지도, 도중에 깨지도 않았다. 오늘 하루가 기대되기 시작했다. 한층 가벼워진 몸으로 산책을 하는데, 내 마음에 늘 달라붙어 옴짝달싹 안 하던 불안과 우울들이 하나도 없는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순간 그 사실이 너무 신기하면서도 감사했다. 감격스러워서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토록 되찾고 싶던 평온한 하루, 고요해진 마음이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이렇게 다시 일상을 되찾고 몇 달을 지내니, 어두웠던 날들의 감정들이 잊혀지면서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 또한 흐릿해져 갔다. 하지만 감사함을 잊어버리는 순간, 나의 세상은 어둠에 잠기기 쉽다는 것을 알기에 매일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불안과 우울이 고요해진 날들에 감사하며, 편히 숨 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활짝 웃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건강한 몸과 마음에 감사하며, 다시 되찾은 일상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