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퇴근 후 뭐 하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한강에서 러닝을 할 거라며 같이 뛰겠느냐고 했고 난 좋다며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우린 한강에서 서로를 발견하곤 활짝 웃었다. 체력을 되찾고 처음으로 길게 뛰어보는 거라 친구의 속도에 맞춰 잘 뛸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궁금해졌다. '걱정해서 뭐 하겠어. 일단 뛰어 보자!' 노을 지는 한강을 배경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친구와 말하면서 달리다 보니 금방 목표한 곳의 반환점까지 도착했다. 친구는 나에게 괜찮냐며, 힘들면 그만해도 괜찮고, 너의 속도로 뛰어도 좋다며 배려의 말을 해줬다. 우울증으로 모든 근육과 살이 빠져나갔을 때의 내 모습을 본 친구라 이렇게 반 정도 뛴 것도 정말 대단한 거라며 함께 기뻐해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직 더 뛸 수 있을 거 같았다. 그간 운동으로 단련해 온 보람이 있었는지, 목표치까지 같이 뛰겠다며 반환점을 돌았다.
땀이 뚝뚝 떨어지고 다리는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하고 또렷했다. 친구를 따라 달리다 보니 어느새 도착점에 와 있었다. 온몸이 타오르듯 열기가 활활 뿜어져 나왔다. 4km 조금 넘게 쉬지 않고 뛰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뿌듯했다. '와... 나 이제 진짜 뛸 수 있네. 할 수 있네.' 동시에 몇 년 전만 해도 온몸이 저릴 정도로 침대에만 누워있었던 내가 떠올랐다. 하루의 시작이 두렵고 무섭기만 했던 나. 친구와 약속을 겨우 용기 내어 잡고는 길에서 픽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던 나. 말할 기운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기운도 없던 나.
이랬던 내가 지금처럼 건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어둠 속에서 잠시 아주 작은 빛이라도 보이면 그 빛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조금씩 밖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오늘 그 빛이 없다면 내일까지 버텼고, 그러다 보면 순간적으로 힘을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시간이 찾아왔다. 그 시간을 놓치지 않고, 집 근처라도 산책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일기를 썼다. 그렇게 더디지만 아주 천천히 빛이 보이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사람과의 약속을 깨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이 생겼을 때쯤, 필라테스를 주 2회 등록했다. 이것만으로도 나에겐 엄청난 성과였다. 그동안은 몸도 마음도 온전하지 않아 약속조차 잡지 못했으니까.
되도록 칭찬을 스스로에게 많이 해주려고 노력했다. '일주일 중 네가 해내는 게 고작 필라테스 2회 가는 거뿐이네.'가 아닌 '정말 대단하다. 꾸준히 해내고 있다는 게, 약속을 지킬 만큼 건강해졌다는 게 너무 대단해. 잘하고 있어.'라며 못한 거 보단 잘한 거에 초점을 뒀다. 그렇게 점점 나는 나를 돌보며 키워냈다.
이젠 필라테스 주 2회 가는 거에 몸이 완벽하게 적응했다. 추가적으로 다른 운동도 할 정도로 체력을 되찾았다. 오히려 우울증 전보다 더 단단해졌다. 아주 최근엔 5km 러닝에 성공하기까지 했다. 5km를 뛰면서 이런 마음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건강히 뛸 수 있는 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살아 숨 쉴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만 아는 나와의 대화들이, 노력들이 하나 둘 쌓이면서 두 발을 땅에 딛고 씩씩하게 걸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결정적으로 나를 어둠 속에서 끌어올릴 수 있던 건 나뿐이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도 감사하며 더 소중히 아껴줄 수밖에.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을 가장 가까이에서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 스스로다. 그대의 히어로는 그대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