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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여린 Jul 08. 2024

'무서워'라는 말버릇

 모험심이 강해 새로운 골목길을 발견하면 꼭 들어가 봐야 하고, 처음 보는 음식을 보면 맛을 봐야 직성이 풀렸다. 아는 일본어라곤 기본적인 인사말뿐이었던 스무 살 무렵, 일본으로 무작정 유학을 가서 용감하게 부딪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이런 내 성격 덕분이었다.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들에게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마음을 활짝 열었다. 좋은 인연들이 이어졌고, 나는 참 '인복(人福)'이 많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한 순간에 들이닥친 우울이라는 큰 파도에 힘 없이 휩쓸려 간 후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 말버릇이 생겼다. 그 말버릇은 바로 '무서워'였다. 길을 걷다 보면 뒤에서 누군가 나를 차도로 밀칠까 봐 무서웠고, 급행열차가 지나갈 때의 큰 소리도 무서웠고,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도 무서웠고, 나의 존재가 민폐가 될까 봐 무서웠다.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낄수록 나는 점점 더 움츠러들고 있었다. 작은 방도 먼지만큼 작아진 나에겐 너무나 거대하게 느껴졌고, 의자 끄는 소리에도 흠칫흠칫 놀랐다.


 사실 이렇게 늘 공포감이 도사리고 있을 땐 말버릇의 존재조차 눈치를 못 챘다. 어둠 속에서 차근차근 빛을 향해 반쯤 나왔을 때에서야 알아차렸다. '무서운 게 많아졌구나.' 무서운 게 많아질수록 불편함 속에  나 자신을 밀어 넣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스스로 알아차렸다는 건 아주 좋은 신호다. 변화할 수 있는 시작점에 서있다는 거니까. 나는 이때부터 되도록 '무서워'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안 쓰려고 노력했다. 길을 걷다 새가 날아와도 무서워하기보단 새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떠올렸다. 예를 들면, 새들과 친구처럼 지내며 이야기를 나누는 디즈니 공주들을 생각하며 새의 귀여운 면을 찾으려 노력했다. 새들을 날 도와주는 작고 귀여운 친구로 바라보니, '무서워'라는 말이 '귀여워'로 자연스레 바뀌었다.


 이런 작은 변화와 노력들이 모여 다시 나의 호기심과 모험심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들을 가져와줬다. 동시에 두려움과 공포심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사람을 만날 때에도 '저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줄까 봐 무서워.'라고 생각하며 피하기보단 '일단 만나보지 뭐. 만나보지 않으면 그 사람에 대해 평생 알 수 없는 거니까. 좋은 사람이면 운이 좋은 거고, 아니면 말고.'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무서워'라는 말을 지워갈수록 다시 나에게 새로운 도전과 만남이 생겨났다. 그리고 막상 부딪혀보면 걱정했던 거보다 별 거 아닌 일이 훨씬 많았다. 나의 시작을 가로막는 단어, 말, 감정들은 최대한 다른 긍정적인 것들로 바꿔보는 연습이 참 중요한 거 같다. 이러한 연습들은 가로막혀 있던 구멍을 뚫어준다. 이 뚫린 구멍들이 이어져 점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좋은 에너지와 소중한 인연, 복(福)이 원활히 드나드는 공간이 되어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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