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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생활 이모저모(1)

꽃밭 가꾸는 마음

by 꼼지 나숙자 Mar 04. 2025

마을 부녀회장 2년의 임기를 마치고, 회관에서 첫 점심을 먹는 날이었다. 새로 부임한 부녀회장은 워낙 요리에 능숙해 음식도 푸짐했고, 일하는 손길도 유연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음식을 담아내는 그릇이 몽땅 일회용이었다.

심지어 수저까지도 하얀 플라스틱 숟가락에 나무젓가락!


내가 7년 전, 귀촌해서 마을회관을 드나들기 시작했을 때, 가장 불편했던 것이 바로 이 일회용 그릇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나면 대형 쓰레기봉투 한가득 쌓이는 일회용 쓰레기를 보고 기겁했던 기억이 난다.


싱크대 상판에는 예쁜 그릇들이 차곡차곡 쟁여져 있었지만, 정작 그것들은 모셔두고 힘없고 볼품없는 하얀 일회용기만 사용하고 있었던 거다. 쌓여가는 쓰레기를 볼 때마다 ‘저걸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병들어가는 지구가 떠올랐다.


그저 내 몸 하나 편하자고 썩는 데 수십 년이 걸리는 일회용품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용하는 것이 무지인지, 이기심인지… 그 모든 것이 참 불편했다.


그러다 부녀회장을 맡게 되면서, 나는 조심스럽게 선언했다.

“앞으로 일회용기 대신 찬장에 있는 그릇을 사용하겠습니다.”


일회용 대신 내 그릇을 쓰면 설거지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생긴다.

그렇지만 좋은 점이 훨씬 많다.


첫째, 환경을 살릴 수 있다.

둘째, 위생적이다.

셋째, 보기에도 좋다.


마을회관에는 따뜻한 물이 잘 나오고, 그릇들도 물에 잘 씻기는 도자기라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물론 무겁고 깨지기 쉬운 단점이 있긴 했지만, 보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환경을 살릴 수 있으니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설거지를 마친 뒤, 내가 준비해 간 소창 행주로 깨끗이 닦아 찬장에 올려두면, 다음에는 꺼내서 바로 쓰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지난 2년 동안 단 한 번도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잘 유지해 왔다.


그런데 부녀회장이 바뀌자마자 다시 일회용을 쓰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경악했다.

‘설거지가 뭐가 그리 힘들다고…’

요리는 자신 없지만 설거지는 도맡아 하겠다고 했던 나의 말도 소용없었다.


그러니 지구가 아플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묻어가야 한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낼 수는 없으니까.

용기와 비겁함 사이에서 중용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데 용기를 내지 못하고 비겁하게 묻어가는 것 같아 마음이 내내 불편하다.


내 지인 중 깊은 산골로 귀촌해 사는 부부가 있다.

그들의 집에서 하룻밤 묵으며, 마음이 하고 평화로웠던 기억이 난다.

평화로움은 산골의 조용한 분위기에서 오는 것이라 해도, 그 집이 주는 간결함과 편안함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마도 미니멀한 살림과 친환경적인 생활 방식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샴푸나 린스 대신 포장 없이 살 수 있는 비누를 사용하고, 모든 선택에서 환경을 우선시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가꾸어진 꽃밭조차 그녀의 일부처럼 느껴질 만큼 아름다웠다.


오늘따라 그 부부가 유독 그립다.


돌이켜보면, 내가 꽃밭을 가꾸는 것도 어쩌면 지구 한 모퉁이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싶기 때문인지 모른다.

처음부터 그런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면서 점점 자연이 더 소중하고 아끼고 싶어졌다.


모쪼록 나로 인해 우리 지구가 한 톨이라도 더 예뻐지고 깨끗해지길 바란다.

아마 그래서 나는 내 집 정원을 줄곧 보살피고 가꾸면서 사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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