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어순과 영어의 어순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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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는 반드시 “나는 사랑해 너를”이라는 순서대로 말해줘야 한다. 그러나 한국말은 보통은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한다. 한국말에는 조사라는 게 있어서 문장에서 단어의 순서가 어떻게 되던지 상관없이 단어가 주어인지 목적어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한국말은 어순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영어는 불행히도 조사가 없다. 그래서 문장에서 단어가 오는 순서인 어순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 두 언어의 어순이 똑같아질 때가 있다. 바로 한국사람들이 화가 나서 말을 할 때다. 한국사람들이 화가 나서 말하면 영어와 같은 어순대로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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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밥 안 먹어'라는 문장과 '나 안 먹어'이 두 문장 중에 화가 났을 때 하는 것은 바로 두 번째 '나 안 먹어'라는 것이다. 첫 번째는 주어+목적어+동사이지만 두 번째는 주어+ 동사 형태이다. 영어가 바로 주어+ 동사 형태이다.
영어는 매우 감정적인 언어이다. 목적어보다 더 먼저 동사가 나오면서 감정을 더 빨리 말해줄 수 있다. 이에 반해 한국말은 최대한 감정을 절제해서 표현해야 하는 언어다. 한국말은 결론부터 말하지 않는다. 빙 한참을 둘러서 설명한 다음에야 끝에 가서야 결론을 말한다. 하지만 영어는 아니다. 결론부터 말해야 한다. 동사부터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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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동물박사님의 미국 유학 시절 일화가 생각난다. 박사님에게는 친한 미국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박사님의 영어 글을 곧잘 첨삭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친구에게 첨삭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친구가 글을 읽지도 않고 그 앞에서 바로 맨 뒷 장을 떼어서 맨 앞에다 갖다 놓고 스테이플러를 찍어서 박사님에게 도로 주었다.
"넌 이렇게만 하면 완벽해"
영어 글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잘 쓰시는 박사님인데도 결론을 맨 뒤에 말하는 한국식 사고방식을 고치는 것은 그리 쉬운 게 아닌가 보다. 영어를 쓰는 사람을 결론부터 듣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다. 이해가 안 된다. 감정이 격한 사람에게 결론부터 얘기하지 않고 이리저리 둘래 둘래 하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자. 듣는 사람을 참지 못한다. 영어 원어민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무엇인지 바로 알기 원하는데 계속 수박 겉핥기만 하고 있는 우리를 보면 답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어는 말하는 사람, 쓰는 사람의 감정을 최대한 언어에 녹여서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영어 원어민들이 말할 때 보면 얼굴 표정이나 손동작 몸동작이 매우 크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자신이 말하는 감정을 실어 준다. 영어는 강세가 중요한데, 이 강세도 이런 동작으로 표시한다. 강세가 있는 단어를 말할 때 눈썹을 추켜올린다던지, 손을 까딱거린다던지, 고개를 좌우로 살짝 한다던지 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강세를 넣어주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한글은 최대한 감정이 절제된 언어이다. 정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말해야 하는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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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들도 화가 났을 때는 몸을 정자세로 놔두지 못한다. 얼굴 표정이 매우 다채로워지고 손이나 발도 가만 두지 못한다. 정말 기분이 좋을 때도 우린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이렇게 한국인들의 극단적인 감정표현이 일상적으로 드러나야 하는 언어가 영어이다.
그래서 영어를 배우면 성격도 변할 수밖에 없다. 한국적 사고방식과 영어식 사고방식 사이를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하면서 더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