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출처는 없다. 하지만 한국 영어교육이 망한 까닭은 독일어 때문이 확실하다.
한국의 영어 관련 서적은 초기에 일본에서 많이 들여왔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어교재는 그 당시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집필했다. 하지만 그 당시 일본 엘리트들은 영어보다는 독일어 공부에 더 능통했고, 일본의 한 유수 대학의 영어교수는 영어 원어민이 아닌 독일어를 모국어로 하는 독일인이었다고 한다.
독일어와 영어는 비슷한 언어이다. 독일어는 무수한 규칙과 불규칙이 동시에 존재하는 언어인 반면 영어는 독일어에 비해 그 규칙이 느슨하다. 독일어에 익숙한 사람은 영어 문법이 껌이다. 독일어를 잠깐 공부해 본 사람은 이게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독일어의 시각에서 쓰인 영어문법 책이 일본에서 만들어졌고, 한국은 그것을 그대로 수입해서 아직까지 쓰고 있고, 그 영향력은 아직도 거세다.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닌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에게 독일식 사고방식으로 쓰인 영문법은 영어공부에 '독'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한국식 사고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영어문법을 우리는 결국 달달외울 수밖에 없었다.
영어문법을 공부하려면 일단, 영어로 쓰인 독일어문법 책을 공부하는 게 오히려 더 쉽다. 독일어를 공부하라는 말이 아니라 독일어문법에서 영어와 어떻게 구별하고 있는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독일어에서 매우 어려운 부분 예를 들어 '전치사'는 보통 영어문법책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독일어 명사는 반드시 한정사를 가지고 다닌다. 이 한정사는 뒤에 나오는 명사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중성인지, 주격인지 목적격인지 소유격인지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서 다른 한정사를 넣어줘야 한다. 하지만 영어문법책에서 명사 앞에 나오는 '관사'는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독일어와 한국어는 양 끝단에 놓여 있고 영어는 그 중간에 놓인 언어라고 간단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독일어는 명사적으로 생각하는 언어이고 한국어는 동사적으로 생각하는 언어이다. 그래서 보통 동사적으로 표현하는 한국어를 영어로 하면 전치사를 사용하여 명사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많다.
독일어는 형용사적으로 생각한다. 명사가 중심이기 때문에 명사를 꾸며주는 형용사가 중요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한국어는 독일어가 형용사로 표현하는 것을 명사로 표현한다. 이는 영어와 비교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명사로 표현되는 한국말을 영어로 자연스럽게 바꿀 때는 그 명사를 형용사로 바꾸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되는 경우가 많다. (껍질 깐 굴 => oysters without shells, 한국식은 껍질 깐 굴이지만 영어는 껍질이 없는 굴이 된다.)
독일어는 또한 부사적으로 생각한다. 한국어가 동사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 그래서 동사적으로 표현된 한국말을 영어로 바꿀 때는 부사를 이용해서 표현하는 것이 좋다. 영어의 [전치사 +명사] 단어 무리는 보통 부사가 된다. (학교에 버스를 타고 갔다. => I got to school by bus.) 반대로 영어의 동사를 우리말로 해석할 때는 부사적으로 해석하면 더 쉬워진다. 영어는 문장의 문법 구조 자체가 '동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일반적인' 원칙일 뿐이지 모든 상황에서 다 맞는 건 아니다. 이 일반적 원칙을 먼저 적용하고 맞지 않으면 다른 한국말 명사를 그대로 영어 명사로 번역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독일어와 영어는 동사 단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장에서 주어와 동사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장의 문법 구조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어중심으로 읽는 언어가 아니라 문법중심으로 읽어야 하는 언어이다. 한 문장에 쓰인 모든 영어단어 뜻을 알아도 문장해석이 잘 안 되는 경우는 그 문장의 문법을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형용사, 부사, 접속사를 다 제거한 뼈대만 있는 영어의 모든 문장들은 그 문장에 쓰인 단어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모두 다 같은 의미를 공유한다. 그래서 문장의 뼈대만 추릴 수 있는 능력이 영단어 공부보다 더 선행되어야 한다.
주어 + 동사: 주어가 스스로 동사 행동을 한다. (주어가 동사 상태이다.)
Water boils. (물이 스스로 끓는다. 물이 끓는 상태이다)
Her mind changes. (그녀의 마음은 스스로 변한다. 그녀의 마음이 변한 상태이다.)
주어+동사+목적어(명사): 주어가 목적어를 가지고 동사 행동을 한다. (한국어와 가장 유사한 문법구문이라서 한국사람들이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영어문장이다.)
I boiled water. (나는 물을 가지고 끓이는 행동을 했다. => 나는 물을 끓였다.)
I changed her mind. (나는 그녀의 마음을 가지고 변화되는 행동을 했다. => 나는 그녀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주어 + 동사+ 전치사+ 명사: 주어가 움직여서 명사로 간다. 단, 여기서 동사는 단어의 의미에 움직임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I go to school. (나는 움직여서 학교로 간다.)
I drive to school. (나는 움직여서 (움직이는 방법은 차를 운전해서) 학교로 간다)
주어+동사+명사 1+명사 2 : 주어가 명사 1에게 명사 2를 준다. 보통 이런 문장을 우리는 give (~을 주다)라는 동사 때문에 '준다'라는 의미를 가진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사의 의미가 아니라, 문장의 구조 때문에 '주다'라는 의미가 들어간 것이다. 동사가 달라져도 기본적인 의미 '주다'는 항상 살아 있다. 동사는 부사적으로 해석하면 자연스럽게 해석된다.
He gave me a card. (그는 나에게 카드를 줬다.)
Tom warmed me a soup. (탐은 나에게 수프를 (따뜻하게 데워서) 줬다.)
Mom got me shoes. (엄마가 나에게 신발을 줬다.)
이외에도 기본 문장 문법구조가 더 있다. 하지만 그런 문장은 위 기본 문장을 응용한 것뿐이다.
독일어를 읽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은 문장의 동사를 찾는 것이다. 영어를 읽는 첫 번째 방법도 문장 뼈대의 동사를 찾는 것이다. 물론 문제는 영어문장에 잔가지 뼈대들이 하도 많아서 이 잔가지들을 가지 치는 방법을 모른다면 문장 큰 뼈대의 동사를 찾는 게 어려워진다.
물론 영어문장은 큰 뼈대에 의미가 없다. 영어는 가장 핵심 알갱이를 형용사나 부사 단어 무리를 이용해서 말한다. 영어문장의 큰 뼈대는 집의 대들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들보 없이는 집안에 있는 다양한 가구나 장신구들은 의미가 없어진다. 집안을 꾸미는 것은 대들보가 완전히 세워지고 난 다음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집을 다 꾸민 후에는 아무도 대들보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영어를 배우는 우리들은 집안의 온갖 장신구에 현혹되면 안 된다. 이 장신구들의 유혹을 제치고 그 집의 대들보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급한 마음으로 빨리 의미를 해석하고 번역하려고 하지 말고 내 눈앞에 놓인 문장의 기본 뼈대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찬찬히 뼈를 발라가며 음미하는 것이 영어공부의 지름길이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한 문장씩 연습해 가다 보면 속도도 조금씩 붙게 된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것이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