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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영어

by Sia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어떤 외국인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친구들의 버스 요금을 본인이 한꺼번에 결제하기 위해 버스 기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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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unsplash; Priscilla Du Preez]


"3개요."


처음엔 그냥 애교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외국인이 계속 이런 실수를 한다면?

"야, 나 인간이야. 그냥 물건이 아니라고! 너랑 절교야! 흥!"


사람은 '명'이라고 세고, 물건은 '개'로 센다는 매우 사소한 차이로 의미가 달라지듯이 영어도 사소한 스펠링 하나 차이로 의미가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영어를 공부하면서 영어는 정말 쩨쩨하고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언어라는 생각이 쉽게 든다. 한때, 어떤 영어교육자는 주어가 3인칭 단수이고 시제가 현재일 때 동사 끝에 붙이는 s를 없애고 가르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규칙은 한국인들이 영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실수를 많이 하고 입에 익히기 어려운 문법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영어가 아직까지 동사에 붙는 3인칭 단수 현재 s를 없애지 않는 이유가 있다.


첫째, 이 s가 있기에 문장에서 동사를 찾는 것이 더 쉬워진다. 영어 문장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어와 동사를 정확히 찾는 것이다. 특히 매우 복잡한 문장을 읽을 때 이 기초 지식은 유용하게 잘 쓰인다. (한번 테스트해 보기 원한다면 유명한 미국 교육학자 존 듀이가 쓴 책을 영어로 한번 읽어보면 된다.)


둘째, 영어는 주어나 동사 중 단 하나만을 복수 표시를 해준다는 규칙이 있다. (이것 역시 주어와 동사 구분을 쉽게 해주는 역할이다.) 주어가 복수, 두 개 이상일 경우 (you 포함) 동사는 반드시 단수 취급을 해서 s를 절대 붙이지 않는다. 주어가 단수, 하나일 경우는 반드시 동사에 s를 붙여야 하는데, 시제가 과거가 될 경우에는 과거형으로 동사가 모습이 바뀌므로 굳이 또다시 동사의 모습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기에 s를 붙이지 않는다. 영어는 경제성을 예민하게 따지는 언어이다. 한번 했으면 또다시 하지 않는다.


미국 대학원을 다니면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 각자 방이 있긴 했지만, 부엌과 화장실, 거실은 공용이었다. 첫 몇 달은 도서관, 기숙사 내방, 부엌과 화장실 밖에 모르고 지냈다. 어느 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옆방에 사는 타이완 학생 샤론이 부엌으로 나와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요새 학교 과제도 너무 많고 집도 그립고 너무 힘들단다. 자기 인생에서 부모님 곁을 떠나서 혼자 사는 것은 처음이고" I'm an only children."라며 눈물을 흘린다.


갑자기 만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children이 아니라 child인데'

'혼자라 너무 외로워서 자기 자신을 두 명 이상으로 생각했나?'

'샤론 진짜 힘들구나. 안아주고 토닥 토닥해주고 싶은데, 우린 그 정도 친한 사이는 아직 아니야....'


힘들다고 우는 사람에게 너 영어 문법 틀렸어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 결국 나는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샤론은 자기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Children은 s를 단어 끝에 붙이지 않고 child를 복수로 만든다. 왜 s를 붙이지 않고 완전히 다른 모양의 단어가 만들어졌을까? 원래 고대 영어에서는 child의 단수와 복수가 똑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단수와 복수가 똑같아 불편해서 단어 끝에 ru(그 당시에 복수를 만드는 것)를 붙여 복수형으로 만들었고 나중에는 이것을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다시 en이라는 복수를 나타내는 또 다른 형태를 덧붙였단다. 그래서 children은 짜장면 곱빼기 복수 형태인 것이다.


복수 형태가 얼마나 중요했으면 경제성을 따지는 언어가 곱빼기 복수 형태가 된 단어를 만들게 된 걸까?


같은 날, 4시가 조금 지난 무렵 같은 과 박사생 모임이 줌으로 진행됐다. 두 번째로 하는 모임이라 낯선 얼굴보다는 이미 익숙한 얼굴들이 더 많아 반가웠다. 모임 중간에 새로운 박사쟁이 들어왔다. Ed라는 박사과정 5년 차 남자였다. Ed는 부인이 새로운 직장을 찾아서 알바니에서 먼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다. 이 이야기를 듣자 많은 사람들이 Ed에게 줌으로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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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unsplash:Al Elmes]


Congrats!

Congratulations!


줌 모임에 있던 또 다른 한국인 박사과정 선생님도 마지막으로 Ed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Congratulation.


이 메시지를 보는 순간 만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왜 한국 사람들은 영어 표현의 마지막 "s "스펠링을 주의 깊게 신경 쓰지 않을까?


저걸 본 영어 원어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틀렸다고 알려줘야 할까?


안 알려주면 계속해서 s 빼고 congratulation 할 텐데...


우리가 말하는 [축하해], [축하축하]는 전부 Congratulations/ Congrats이다. 단어 끝에 s를 붙여서 복수형으로 만들어야지 축하한다는 말이 된다. s가 빠지면 셀 수 없는 추상적인 의미의 단어가 돼버린다. 그래서 congratulation은 [축하 행위]라는 뜻이 된다. 생각해 봐라. 친구들에게 '나 승진했어'라고 말했는데 친구가 '축하해'라고 하지 않고 '축하 행위'라고 말한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아마도 우린 "야 너 지금 나 비꼬냐?" 하며 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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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unsplash; Mick Haupt]


이 쪼그만 s 하나 가지고 뭘 그리 너스레를 떠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듯이 영어에서 단어 끝에 오는 s는 매우 중요한 문법적인 역할 및 엄청난 의미 차이를 가져오기에 그냥 작은 고추로 넘기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작은 고추는 맵다.


결국 난 그 한국인 박사과정 선생님에게 s를 붙여야 한다고 말해주지 못했다. 샤론에게도 only child라고 말해야 한다고 얘기해 주지 못했다. 약간 이상해도 무슨 뜻인지 다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의사소통만 되면 된다고 세세하고 쩨쩨한 문법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사소통이 문법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은 동의한다. 하지만, 문법은 신경 써야 한다. 그냥 무조건 외우는 문법이 아니라, 그 문법이 그 언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면서 공부해야 한다. 문법이 알려주는 그 언어의 성격과 특징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 진짜 영어 문법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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