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던 미국 기숙사 근처에 맛있는 커피와 베이글로 유명한 집이 있다. 바로 언커먼 그라운드(Uncommon Grounds). 운전면허가 없어서 걸어다녀야 하는 운명인 발순이인 나에게 이곳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천국이나 마찬가지다.
맛집은 공유해야 더 맛있는 법. 바로 옆방 선생님한테 알려주고 같이 베이글을 사 먹곤했다.
가게 안에 커피빈을 로스팅하는 기계가 있고 이 기계를 사용해서 직접 로스팅한다. 진한 커피냄새가 항상 꽉 차있다.
무지막지하게 큰 머핀도 팔도 쿠키도 판다. 커서 오히려 더 먹음직 스러운것 같다. 하지만 이곳은 베이글과 커피로 유명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베이글은 시나몬 레이즌. 두툼하고 촉촉하고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한번은 옆방 쌤과 같이 갔는데 나의 최애 베이글이 동이 나서 못 먹고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왔다.
그런데 며칠 전 선생님이 나를 위해 직접 사비를 들이셔서 시나몬 레이즌 베이글을 사서 주셨다. 완전 감동받아 고맙다고 말하려는데 선생님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말을 시작하며 내 말을 막았다.
"아니, 선생님. 내가 베이글 계산하고 점원한테 "Thank you"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 남자가 "Sure thing"그러는 거예요. 이 사람 나 놀린 거 맞죠? 아니, 내가 고맙다고 하는데 그게 '물론이지'라고 말하는 게 어디 있어요? Thank you라고 말하면 You're welcome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선생님은 분명히 이 남자가 본인을 가지고 놀렸다고 생각하며 분개했다. 하지만 Sure thing도 Thank you에 대한 응답으로 아주 적절하다. 다만, 어떠한 인토네이션을 사용했는지가 관건이다. 꿀리는 듯한 목소리면 놀린 게 맞고 밝고 경쾌한 목소리는 You're welcome과 비슷한 의미로 쓰인 것이다. 그럼 왜 You're welcome이라고 쓰지 않고 Sure thing이라고 하느냐고? 그건 발음하기 쉬워서 그런것 같다.
영어는 정말 경제성을 철저하게 따지는 언어다. 쉽게 표현할 수 있으면 단순하게 쉽게 표현한다. 한국말을 그대로 영어로 번역한 문장들이 어색한 경우가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You're welcome은 4음절이지만, Sure thing은 2음절이다. 2음절로 말할 수 있는데 왜 굳이 4음절로 말하겠는가. 그리고 이 가게 점원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손님을 만나야 하고 그들의 수많은 Thank you에 대답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그럼 당연히 2음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선생님에게 이런 것을 설명해 준 다음 덧붙였다.
"이게 다 암기식 위주의 한국 영어교육의 폐해예요. 선생님은 피해자인 거죠. Thank you 할 때 You're welcome이라고 말하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치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죠."
"그러게. How are you?라고 물어보면 자동적으로 I'm fine, thank you. And you? 나오는 거랑 똑같네."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외우는 영어 공부를 이젠 정말 그만해야 한다. 항상 '왜 그런가'에 대해서 질문하고 본인 나름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 이유가 잘못된 것이어도 상관없다. 무조건 외운 영어문법보다, 내가 깊이 생각해본 영어문법이 나에게 살이 되고 뼈가 되는 것이다. 무조건 외운 영어문법은 이렇게 우리를 분개하게 만들고, 우리의 귀한 에너지를 쓸데없이 낭비하게 만든다.
영어교육에는 돈보다 '생각'을 더 훨씬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