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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로운 Jan 03. 2024

서른, 되었구나. 마침내.

어서 와, 오래 기다렸어.

1월 1일 자로 서른이 되었다.

물론 인생은 연속적이니까 단순히 달력 하루가 지난다고 해서

뭐 되게 크게 천지가 개벽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때론 많은 걸 변화시킨다.


소비에 대한 관점

최근에 한 마케터를 만났다.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신다길래 아이스브레이킹하고자 그냥 흔하게 듣던 얘기로

"요즘 개인정보 이슈로 쿠키 사용이 어려워져서 퍼널 세팅이 어렵겠어요, "라고 말을 건넸다.

"업계 사람이세요?"라고 대답이 왔고 우린 웃었다.


이제는 단순히 너 그거 좋아하지? 라며 쿠키를 수집해서

들이미는 걸로는 그 사람을 동화시키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혹 하게 만드는 걸로는 부족하고,

본질적으로 좋은 제품, 본질적으로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소정님의 생각구독에서 읽게 된 신기한 관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요즘 대화에서 '00 가볼래?', '00 써볼래?'의 고유명사 위주가 아니라

"나는 요즘 조용한 게 좋아서 00을 써", "요새 곡선을 보면 마음이 편해져서 00를 샀어"가 됐다는 거다.

사용의 주체가 더 이상 외부의 유행이 아닌 나의 취향이라는 것.


캐릿에서도 흔히 말하듯 "사람들은 요즘 소비를 나를 보여주는 데에 쓴다"라는 말에

그냥 '응 뭐 그렇지~' 라며 읽어 넘겼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냥 유행해서가 아니라, 따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그 차이는 꽤 크다.


환불도 어려운 걸 왜 사냐는 그 sns 공구의 시작도 사실

따라 하고 싶음에 있지 않았을까.

저 사람을 따라가면 나도 그 정도는 한다는 나의 욕망과

저 사람의 행보를 보며 저 정도 사람의 안목이면

다른데 안 찾아봐도 돈만 내면 되겠다는 편리함과 믿음을 투여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이제 너무나 많은 정보가 오픈되어 있고,

더 이상 아묻따 사는 시대는 아니다.

경험해 본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들 좋다는 게 나한테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이제는 다들 상정하기도 한다.


단순한 재미나 경험적으로서의 소비가 아니라 이젠

취향으로서의 소비라는 거, 가치로서의 소비라는 거.


그게 서른의 첫 주에서 새삼스럽게

저번주의 20대와의 괴리감을 느끼게 된 첫 인사이트였다.


좋은 사람? =일잘러?

전에 했던 밸런스 게임 중 일 잘하는데 성격 더러운 사람과

일 못 하는데 착한 사람 중에 누굴 더 쓰고 싶냐는 질문이 있었다.

세상에서 답답한 걸 제일 싫어하는 나는 당연히 전자였다.


그러나 작년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더 이상 일 잘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졌다.

일은 그저 chat gpt정도 쓸 줄 알면 일정 퀄리티 이상은 알아서 해준다.

이제 중요한 건 오히려 사람이었다.


그럼 이제 사람만의 영역,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근데 어떻게?


좋은 사람이 목표인 사람은 많다.

그러나 어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다르다.

좋다의 개념도 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이 다른 듯하다.


친구의 고민을 잘 들어주면, 도움을 주면 좋은 사람인건가?

단순히 책임감 있게 업무를 잘 쳐내면 좋은 사람인건가?

회식자리에서 친근하면 좋은 사람인건가?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사적인 관계에서 나는 충분히 좋은 친구였다.

그러나 공적인 관계로 시작한 사이를 생각해 보면 자신이 없었다.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일을 잘하는 것을 넘어 공적인 사이가 친해지기란 쉽지 않았다.

회사와 업무라는 느낌은 그저 기계와 부품에 가까워서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동료들이 돈 나오는 pc방으로 위안 삼는 정통 회사' 이미지로서

회사사람들? 안 엮이는 게 상책이었다.


그저 또 본부장이 쓸데없는 지시를 내리고, 부장님이 보고서를 엎기 마련이고,

 팀 대리가 나한테 일 토스 안 했으면 좋겠고,

월급루팡하다 빨리 칼퇴나 시켜줬으면, 하는 그런 느낌이었고

내 친구들에게도 모두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내 공적인 관계에서 친해진 사이는 연수원 동기들뿐이었고,

그마저도 사적으로 따로 보는 사이가 되긴 어려웠다.


다른 회사 사람들과 교류하거나 업계에서 입소문이 나서 스카우트받는 경우는 많으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업계 내에서 '교류한다'는 것은

곧 이직을 위한 발판을 만든다, 혹은 정치질을 잘한다는 인식에 가까웠다.

(물론 전략적인 측면에서 필요하긴 하다.)


누군가 나를 일에 있어서 좋은 사람이라고 추천해 줄 만한 관계를 쌓고 있는지, 유지하고 있는 지?솔직히 확신이 없다.


영업을 하면서 사실 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부분을 알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 혼자서만은 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그걸 알아주는 커뮤니티 안에서의 일이다.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던 면접장에서 면접관이(지금의 내 팀장이다)

'면접 보는 회사에서 가장 중요시 보는 게 뭐냐'라고 물었다.


나는 동료라고 대답했고 업무의 강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 팀장님은 "어 나랑 일할 건데, "라며 웃으셨다.

드문 일이었다.


새로 맡은 일을 하면서, 일을 잘 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교류하는 사람들과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또 너무 고립되지 않으려고 한다.


전문분야가 너무 확실하다 보니 교류라는 게 정말 없는 폐쇄적인 업계라

전문가가 되면 될수록 나의 능력치는 뾰족해지지만

동시에 얇아진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니 더욱 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두루두루,

일적으로도 "저 사람 진짜 잘해, 좋은(젠틀한/일하기 좋은) 사람이야."라는 평과 동시에

사적으로도 누군가 "나 제제를 아는데, 좋은(친근한/인성이 된) 사람이에요."라고

기꺼이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회사 안팎으로 나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어야지.


공적인 좋은 사람과 사적인 좋은 사람이 다를 수도 있겠다는 거,

또한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다니.


사실 역시나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30대 3일 차만에 새삼스러워지는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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