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희로운 Dec 28. 2023

아홉수 매듭달 스물 이레의 기록

나의 20대는 끝까지 흔들리기만 하였구나

안녕. 또다시 잠 못 드는 밤이다.

아니, 사실 이렇게 잠 못 드는 날들이 새롭지는 않지만.


벌써 올해도 이제 3일 남은 시점,

또 한 해를 어떻게 보내왔는지.

연말에 종무식도 없이 흐지부지 보내긴 처음이라서

혼란 속에서 어찌저찌 애매한 마무리를 맞이하고 있다.


근 두 달도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이사를 했고, 짐을 정리했고, 그럼에도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여전히 혼재한다.

(연말엔 친구들이 놀러 오기로 했는데 그 안에 방을 정리할 수 있을지  상태면 애들이 발 디딜 곳이 있는지 모르겠다)


올해를 돌아보면,

자주 웃고, 때때로 행복하고, 자주 울고, 자주 슬펐다.

올해 나의 삶은 어제는 조증이었다가, 오늘은 울증이었다가 했다.


다른 전개와 결말을 기대하고 많은 것을 바꾸었으나

도망쳐 온 곳에도 낙원은 없어서 때때로 무기력했고


번아웃과 무력감으로 3Q부턴 일조차 제대로 챙기고 있지 않으나 어떻게 들어오는 것들만은 쳐내다 보니

매출은 나오고 실적은 나오는 데 나는 침전하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사람들과 공유하고 기뻐하는 것들 대신에


큰 것을 보고 웃고, 작은 것에 울고, 술에 취해 잊고

돌아서 아침을 맞이하면 남은 것은 새로이 후회와 고민뿐이었다.


나답지 않은 시간들이라는 생각과 함께

과연 나 다운게 뭐냐는 물음이 뿌리 밑바닥부터 뒤 흔들었다.


최근의 독서모임이 내게 결핍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잦게 던질 때마다 

지난 시즌에는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어서

저의 동력은 재미인가 봐요,라고 했는데


두 달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의 결핍은 인정이었던 것 같다.


꽤 오랫동안 나의 중요한 가치는

안전과 안정이라고 해왔는데, 이제와 보니 사실,

안정은 인정에서부터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사람은 나를 알아줘, 나를 이해할 수 있어'에서 출발한 인정이

'이곳은 나의 안전한 바운더리야'라는 안정에 도달하는 걸지도.


올해 나도 내 바운더리를 많이 찾아 헤매었으나

그것은 마치 신기루와 같아서

가지려고 하면 가질 수 없고 가지지 않으려면 공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알게 된 걸 모른 척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뻔뻔하게 내 주장만 우길 수 있는 사람도 아니기에


가질 수 없는 것에
갈증 내며

동시에 노력해도 받아들일 수 없음에

슬퍼하면서 지낼 수밖에 없다.


팔레트에 다른 색이 섞여와 이제는 더 이상

돌아와 분홍색이라고만은 부를 수 없는 

점묘화 같던 나의 자화상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그저

잃어버린 색에 슬퍼하며 새 그림에 적응하며

그래도 여전히 파스텔톤인지, 무슨 모양의 그림이 되어가는지,

다만 특징을 찾아낼 뿐이다.


20살 때 내가 그려보았던 29살 때의 그림이 이런 것은 아니었는데 

29살의 현실은 여전히 미완인 것만 같다.


30대엔 뭐라도 그릴 수 있을 건지,

더 멀리서 보면 뭐라도 things의 형태라도 있는 것인지,

기대가 되면서도 씁쓸하고 무섭다.


사실 이번 올해 연말정산 회고록엔

나의 모든 미련을 여기에 두고 간다고 적었는데 

차마 모두 묻어버리지 못하고 몰래 옷깃에나마 묻은 채로 함께 지나오는지 모르겠다.


모두의 23년, 후련하셨는지.

혹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지.

매거진의 이전글 아홉수 하늘연달 열이레의 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