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물론 눈으로 울 때도 있었지만 손으로 발로 울 때도 많았다. 더 어릴 때, 어린이였을 때는, 내가 그냥 하도 돌아다니는 활동적인 아이라서 땀이 많이 나는 줄 알았다. 청소년기가 되면서 알았다, 다한증이 있다는 걸.
평소엔 그저 땀 흡수가 잘 되는 옷을 입고 손부채와 여분의 손수건을 들고 다니는 것으로 충분하였으나, 내 청소년기의 대부분은 반 강제적으로나마 공부로 이루어져 있었고 책의 종이와 내 손의 땀은 상극이었다.
갱지로 이루어진 시험지나 통신문에 물이 닿으면 잘 찢어진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나는 내 손에 닿는 종이들이 찢어지지 않게 하는데에 공부한 걸 기억해내는 노력만큼이나 공을 들여야 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나는 종이와는 거리가 멀고, 쉬는 시간마다 매점에 가는 캐릭터여서 사실 생활에서 그리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신나게 놀다가 졸업 후 재수학원에 똑 떨어졌을 때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오기로 패기로 입소를 했으니 공부는 해야겠는데 도무지 필기를 못 하겠는 거다. 펜을 잡으면 펜을 따라서 책상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게, 누가 보면 꼭 손에 정수기를 틀어놓은 급이었다.
하필 나는 공부를 단권화로 배웠기에 내가 공부해야 할 양에 대해 모두 필기하고 내 손으로 하나로서 정리하는 과정을 주로 했다. 손을 쓰는 것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당시 유행하던 제트스트림을 쓰자니 볼펜 똥이 너무 묻어 나오고 잉크펜을 쓰자니 번지고. 진정한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지만 장인이 아닌 나는 도구를 탓해야 했다.
부모님 또한 여러 가지 방안을 찾아주셨으나, 손에 보톡스를 맞거나 등에 있는 신경을 절단하는 영구적인 방법 이외엔 주기적으로 드리클로와 같은 약을 발라주는 등의 1회성 방법뿐이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귀차니즘 겁쟁이인 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중에 없었다.
다행히 그렇다고 망하라는 법도 없었다. 이게 오래 겪다 보니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방법을 깨닫게 되는 거다. 찬 공기를 쐬거나 찬 음식을 먹거나 땀 흡수가 잘되는 천을 대고 있으면 어느 순간 땀이 멈췄다. 항상 손수건을 두 개 이상씩 들고 다니고, 펜에 손수건을 돌돌 두르고도 옷으로 펜을 받추어 종이에 손이 닿지 않게 하고 공부를 했다.
그렇게 수험생활을 지속하다 청소시간에 문득, 내가 지금 땀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땀이 난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거나 생각을 비우면 땀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주로 땀이 나는 순간은 뭐가 잘 안 풀렸을 때, 이해가 안 되는 걸 이해하려고 애를 쓸 때, 선생님과 면담할 때 등등 내가 긴장하는 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때부터 마음의 평정을 얻는 방법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무언가 잘 안 풀릴 때, 뭔가 신경이 쓰일 때, 화가 날 때마다,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하기 전에 이 감정을 상쇄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했다. 손의 땀을 마르게 하기 위해서였지만 때론 내 머리의 온도를 식히기 위해서 기도 했다.
마음이 흔들리거나 과하게 화가 나던 순간들에 있어선 음악을 듣거나 바람을 쐬고 오는 등, 과열되던 분위기의 흐름을 깨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불씨가 훌훌 타오르는 장작에 물을 끼얹으면 금세 상황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수험생활을 끝내고 대학교에 들어와서부터는 웬만해선 그렇게 땀이 줄줄 흐르는 일은 없었다. 졸업 후 면접을 보러 다닐 때, 긴장한 탓인지 치마 위에 가지런히 올려둔 손 때문에 정장치마가 흥건해져 오랜만에 놀랐을 뿐이다. 10년이 지나니 체질이 바뀌었는지, 그래도 마음을 다스릴 줄 알게 되었는지, 손발보단 필요한 순간에 눈으로 많이 울었던 것 같고 그마저도 과하게 우는 일은 많이 없어졌다.
그럴 때마다 손때문이라도 생긴 평정심에 대한 집착이 때론 안쓰러우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감정의 동요가 없어졌다는 건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만큼 외부로부터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많아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의 평정심을 지킨다는 변명으로 원하는 것만 받아들이기도 했다.
내 안의 공기청정기에 강한 필터를 끼워 외부로부터 내 마음의 고요함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잘하는 건 아니다. 아직도 여러 가지를 한번에 맡아 마음이 급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사람 사이 갈등이 생기거나 할 때면 멘붕이 오기도 한다. 사실 평정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가만히 있어도 고요하지 않은 상태와 같다는 반증이기도 하니까 때론 계속 애써야만 하는 내가 안쓰럽기도, 천성이 야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뒤늦게라도 나 사용법 하나를 깨달았으니 그게 어딘지. 이게 내 팔자라면 뭐라도 그렇듯,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바삐 노를 저어야 하는 것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다 보면 더딘 걸음이나마 앞으로 나아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