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은 N년간 N번의 경험을 통한 빅 데이터의 산물
나는 이 말을 정말 신봉하는 편이다. 사람과 어울려 지내다 보면 어떠한 느낌이 오는 순간들이 있다.
쎄함이라던가 호감이라던가.
사람들을 자주 보다보니 미세표정이라는 스쳐 지나가는 눈빛에서 상대의 생각이 읽힐 때가 있다. 얼굴과 눈빛은 마음의 창이라던데 진짜구나, 싶은 순간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무표정이라던가 나를 지나 모퉁이를 돈 저 사람의 표정이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을 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그런 걸 한번 보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기 어렵다. 특히 존경하거나 좋아하던 사람들일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고.
표정에 관한 얘길 더 해볼까. 사람의 근육은 자주 쓰는 대로 성장하고 고착화된다. 표정을 만드는 얼굴근육 또한 근육의 성질에서 멀지 않다. 자주 하는 말이 만드는 자주 짓는 표정대로 굳어져 주름이 되고 인상이 된다.
표정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본질에 우선하는 듯 하다. 말을 하면 더 그 사람의 성격이 생동감 있게 드러나는 이유기도 하다. 가만히 있는 이목구비는 외형일 뿐, 말이 그 사람의 내형이자 본질이니까. 가끔 그런 표정에 이 사람의 본질이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르구나 하는 쎄한 느낌도 온다. 틀릴 때도 있지만 슬프게도 대부분은 맞았다. 때론 일부러 무시하기도 하고 때론 시간에 의해 억지로 증명되기도 하지만.
눈치도 촉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 지내는 사람들에게서 간간히 이러한 순간들을 겪곤 했다. 일하면서 어떤 또래 거래처 분과 잠깐 사적인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스스로는 일이 잘 맞는다던 그 분을 단순히 첫인상으론 좀 무서운 분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대화를 해보니 표정이 굳어있었을 뿐 생각보다 무섭진 않았으나 말에 상당한 경계가 있었다. 사람을 대하고 만나는 일을 하는 분이 사람을 무서워하고, 어느 순간의 표정들엔 시니컬한 체념이 스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회사에 열정을 쏟는 츤데레 같은 분이었지만 '결국 회사의 부품일 뿐이다'라는 말은 같은 일을 하는 나에게도 꽤나 아렸다.
일을 잘 하는 분이라는 건 익히 전해들어 알고 있었으나 억센 나무는 바람에 부러진다고, 여러번 부러져 본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왠지 적지 않은 일들이 있었을 것 같은 기분.
너무 다 잘하려고 애쓰시거나 곧게만 살지않으셔도 괜찮을텐데,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주제 넘어 보일까봐 하지못했다. 표정에서 티가 났는지 내게 씁슬하게 웃어보이시며 이제 괜찮아요, 하시는데 애먼 내가 마음이 안 좋았다.
그 분도 어느쯔음엔 어디의 행복에 가 닿으실까.
타인의 그늘을 읽는 일은 언제나 미세하고 또 조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