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소의 새로운 의미.
집 주소를 안다는 게 다른 의미일 수 있다는 걸 사회생활 3년 차 쯔음이 돼서야 알았다. 요즘처럼 뭐든 발달한 정보화시대에 집 주소라는 건, 등기부등본 그리고 집 가격, 더 나아가 집안 형편을 알게 된다는 의미기도 했다. 뭐든 빠른 요즘(?) 친구들에겐 더 이를 수도 있다.
회사에 입사하고도 동기들이랑, 혹은 친구들이랑 얘기하면서 ‘어디 살아?’라는 질문은 가볍게 주고받는 주제였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대학교 때는 그냥 으레 하는 아이스 브레이킹이 아니던가. 단지 ‘아 통학하기엔 멀구나~’, ‘와 가까이 사는구나~’ 정도의 개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직장에서의 사는 곳이라는 의미는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듯했다.
가족이 분당에 사는지, 강남에 사는지, 평촌에 사는지, 부천에 사는지, 인천에 사는지, 잠실에 사는지는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회사에서 30분 거리, 1시간 거리의 의미가 더 이상 아니었다. 그건 어쩌면 집안의 배경이었다. 어떻게 알았냐구요? 저도 알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 집도 경기도 외각 신도시에서 시작했다. 부모님의 신혼집이었다. 이후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다행스러운 아빠의 빠른 승진과 나의 학군을 이유로 강남에 이사 왔다. 지금은 부모님은 다시 경기도로 내려가셨고 나는 내 회사 때문에 서울에 남게 되었다. 서울의 번잡스러움이 싫어 내려가신 터라 현재 살고 계시는 동네는 워낙 외곽 중에서도 외곽이어서, 난 잘 내려가지도 않았고 본가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냥 현재 위치에 만족하며 여유도 부족함도 없이 평안했다. 그런 내가 본가의 개발소식을 먼저 알았을 리가 없다. “본가가 어디예요?”라는 말에 “와 좋은 동네 사시네,”라는 답변을 듣게 되기 시작하면서 알았다.
우리 동네가 호재가 있구나?
불과 몇 년 사이였다. 몇 년 전에 그 동네 산다고 말했을 때 어떤 선배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아 시골에 사는구나?라는 반응. 현재랑은 딴판이었다. 학교생활에 대한 스몰톡을 하다가 “강남에서 산 적이 있어요,“라는 말을 덧붙이면 더 달라졌다. 그런 말을 들으며 썩 즐겁지 않았다. 이 사람, 나를 재고 있구나?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괜히 말했다는 생각도 밀려왔다.
물론 그 말을 듣고 찾아봤지만 우리 집은 말한 대로 정말 외곽인 데다가 그렇게 오를만한 집이 아니라서 정말 정말 호재에서도 예외였지만.... 때론 혼자 서울에서 산다고 하는 것은 본가 위치를 말하는 것보다 편견을 떨치기에 쉽다. 으레 회사 근처겠거니, 하니까.
내가 어른이 된 건지, 세상이 23년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삭막해졌다는 생각은 떨칠 수 없었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사실 우리 집의 가계와 내 생활에는 유의미한 변화는 전혀 없음에도.
최근 새해의 새로운 일로 부동산 공부를 시작하면서 회사 선배들의 렌즈가 나에게도 씌워진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지역? 시세가 얼마 정도지. 거기? 상급지는 여기지.’와 같은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선배들의 반응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때로는 이해해 버리면 더 이상 미워할 수 없어 슬퍼지는 순간이 온다. 여전히 내 친구들, 내 사람들을 단편적으로 판단하지 않지만, 나와 타인에 대한 외부의 시선을 마음 놓고 더 이상 미워할 수 없게 되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거라고 하는데, 이런 이해는 사실 조금 씁쓸한 편이다.
꾸준히 경계하지 않으면 주변에 휩싸여 흔들리거나 물들기 쉽다. 경매를 열심히 하는 지인분이 해주신 말이 있다. 우리가 경매를 하더라도 정없이 잔인하다는 말은 듣지 말자. 어디가서 욕먹는 경매는 하지말자. 더 싸게 살 능력을 키우고 돈 백만원에 아등바등 얼굴붉히지 말자고....
능력을 키워서 남을 쉽게 판단하고 내 이익을 우선시 하는 이기적인 사람은 되지말자. 나이는 먹더라도 계산적인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 되었다. 다시 대학생의 시선으로 돌아가서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해야지.
"혹시 어디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