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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로운 Feb 12. 2021

자주 반하는 사람에 대하여

나 사용법 -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

우연히 유튜브에서 내 시선을 끈 신인이 있었다. 장르가 30호라고 당당하게 얘기하던 그가 고른 '그를 표현하는 한마디'는 '배 아픈 가수'였다. 신입도 최고는 중고 신입이라는데, 역시나 실력이든 센스든 이미 준비된 인재였고, 배 아픈 가수라면서 사실은 본인이 남 배 아프게 하는 가수였다.


김이나 작가가가 그 소개 글(배 아픈-)을 보고 해준 말이 있다. "배 아픔을 본인이 인정하면 동경과 선망"이라고. 어쩌면 나도 동경과 선망을 잘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나의 경우, 자주 가는 아이스크림 가게 사장님의 지독한 이벤트 콘셉트와 마케팅 솜씨를 좋아한다. 같이 일하는 언니의 깔끔한 일처리를 좋아한다. 내 친구의 섬세한 성격을 사랑하고 장항준 감독의 자격지심 없는 유머 매너를 동경한다.


나를 한 줄로 표현하면 뭐가 될까?

그러면 나는 잘 반하는 사람쯤 해볼까? 나는 여자든 남자든 사람에게 잘 반하는 편이다. 세상에서 가장 인간애가 없다며 주장하는 나지만 생각해 보면 난 사람의 매력을 잘 발굴하고 잘 기억해서 잘 사랑하는 편이다.


필력이 좋은 사람을 보면 부럽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일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인스타에 팔로우 버튼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팔로워가 뭔지 생각해보니 팬이라는 말에 제일 가까운 듯하다. 누구나 누구의 팬이 될 수 있는 세상이라니! 너무 좋다. 이상하게 이런 마음은 괜스레 갖고 있을수록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의 특징들은 나에게 영감을 준다.


 실 예로 운동을 싫어하던 내가 필라테스에 빠져 1년 넘게 통장을 바치고 있는데, 필라테스만 해도 나만 외사랑 하던 느낌이 든다. 처음엔 필라테스 선생님의 시범에 반해서였다. 같은 여자로서 여리여리한 모습에 또 단단한 근력으로 동작을 해내는 것을 보고 동경하기 시작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고 저렇게 잘하고 싶어서 자주 출석하여 열심히 따라 했거늘 남들은 체어에서 발이 잘만 떨어지던데 나는 왜 그렇게 땅과 발이 가까운지! 한동안 운동을 멀리한 나로서는 그 작은 동작도 쉽지 않았다.


이렇게 동작이 안되면 꼭 데이트 신청 제안에 실패한 듯이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지 못하고 계속 찾아가서 하게 되는 건 필라테스에 대한 지독한 짝사랑이었을테다. 다행히 한번 재미 들린 것에는 쉽게 식지 않는 터라 난생처음 집에 요가매트까지 사 와서 홈트를 시작했다. 집에 와서도 동영상으로 틈틈이 연습하며 근력을 키웠더니 그때 못했던 동작이 이제는 쉽게 올라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직도 조금은 부족하지만 지금은 어떤 운동보다 필라테스가 제일 쉽고 재미있다.


오히려 사춘기 때 실제 연애사에선 짝사랑엔 관심 없었는데, 해보니까 무언가를 짝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대단한 동력이 된다. 그렇게 멋지게 살고 싶은 롤 모델이 되고, 또 다른 것을 배울 용기가 되기도 하고, 또 그것들이 나의 취미로, 나의 일상으로 일부로 흡수되어 또다시 곧 내가 되기도 한다. 그 사람의 생애에서 다져진 그 매력이, 혹은 어떤 것에서 오는 매력이 이 삭막한 일상에서 좋은 활력이 되기도 한다.


기형도는 '질투는 나의 힘'이랬는데 나는 '애정은 나의 힘'이다. 어떠한 매력에게 잘 반한다는 게 혹자는 금사빠라 하겠지만 금세 식지는 않으니 그냥 사랑이 많다고 하자. 혹은 잘 알아보는 눈썰미가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오늘 보니 가수 이승윤 씨가 싱어게인 우승자가 되었다고 한다. 역시 매력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 눈에도 띄기 마련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떨까? 누군가도 나라는 브랜드에 매료될 만큼의 또 다른 매력포인트가 있을까. 남을 사랑하는 것엔 자신이 있지만 그만큼 나를 사랑하는 일엔 소홀했던 것 같다.


흠, 생각해 보면 난 꽂히는 브랜딩에 잘 동화되어 충실한 소비자가 되는 좋은 고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처럼 매력적인 소개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나답게 꽂히는 브랜드인 아이스크림가게의 매력적인 단골이 되고자 한다. 역시 오늘은 이따가 꼭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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