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책들의 도서관 - 5인 5색 문학 맛집
문학작품코너에서 찾아낸 보물 같은 책이다.
동화라고 하기엔 어린이 자료실이 아닌 종합자료실에 있던 책이고, 소설이라고 하기엔 화자들이 중학생들이라 청소년소설이 가장 맞는 분류라고 하겠다.
첫 번째 작품은 과학소설전문작가인 남유하의 <도서관을 훔치다>라는 소설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낯선 도시로 전학 온 하세이는 마음을 놓고 있을 수 있는 공간은 바로 도서관이다. 그 도서관에서 새로운 인물을 만난다. 이름도 비슷한 허이세. 독특한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서로 같은 반이 되고 같은 공간에서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정말 인연이 아니고서 불가능한 확률이 아닐까 싶지만, 이 아이들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만나게 된다.
하세이가 도서관 책들의 제목을 이용해 단어를 만들고 그 단어에 해당하는 책을 뽑아오면 허이세는 그것들을 눈앞에 나타나도록 마술을 부린다. 나는 이 장면에서 로또 번호가 내 눈앞에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렇게 거의 매일 만나던 아이들. 이세는 세이에게 도서관을 훔치자고 제안한다. 화장실에 숨어서 문을 닫는 시간까지 버티다 도서관 서가로 향한다.
그 애가 오른쪽으로 나를 한 발 이끄는 순간, 신기할 정도로 몸이 가벼워졌다. 나는 왈츠에 맞춰 그 애와 도서관 서가를 누비며 춤을 추었다. p35
무도회를 하려면 위의 그림과 같은 정도의 도서관이 돼야 하지 않을까?
사람도 춤을 추고 도서관의 책들도 함께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다.
입맞춤을 하고 눈을 떴을 때 다시 현실로 돌아온 세이. 자신의 방에 덩그러니 앉아 있고 한 순간에 사라졌다. 이세의 작별인사를 들은 것을 기억한 세이는 크리스마스날 누워만 있게 된다. 그리고 다시 교실로 돌아갔을 때 이세를 아는 친구는 아무도 없다.
이렇게 갑자기 사라지는 장면이 나와서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클라이맥스까지 왔다가 갑자기 훅꺼진 느낌이랄까? 좀 더 알콩달콩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어서 그런지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다음 작품은 정해연의 <뺏어준댁書>이다.
남매가 있는 집의 풍경은 어디나 똑같은 걸까? 톰과 제리처럼 쫓고 쫓기면서도 토닥거리는 모습이 귀여운 남매의 모습이 우리 아이들 모습과 겹쳐졌다.
도서관의 빨간 책이 갑자기 성혁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 책은 모든 글자들을 앗아가는 걸 알게 된다. 나는 이 책은 절대 갖고 싶지 않다. 활자중독이 의심될 만큼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글자가 없는 삶이란 끔찍하다.
웹소설작가인 아버지를 둔 덕에 성혁은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버지의 소설을 자신이 쓴 것처럼 낼 수 있었을까?
선생님은 너무나도 작품성이 좋은 그 소설을 공모전에 내기로 하고 책상서랍에 둔다. 성혁은 그 원고의 글자를 빨간 책을 이용해 없애기로 하고 학교에 잠입하게 되는데 이때 여동생 성윤의 기가 막힌 조언을 얻는다.
바로 여장. 굉장한 남매다.
결국 그 원고를 찾아 빨간 책에 글씨를 모두 담게 되고 원고는 빈 종이가 된다.
하지만 굉장히 꼼꼼한 선생님은 복사한 원고가 있었고 그 원고를 공모전에 제출한다.
하필이면 그 공모전 심사위원이 아빠였고.
결론은? 아래 문장으로 대체한다.
성혁은 처음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눈을 비벼 봤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아빠가 확실했다. 양손을 날 세우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일찌감치 중2병을 앓으면서 엄마를 울렸을 때, 분노에 차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모습 그대로였다. p81
다음은 문지혁의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라는 작품
이 작품의 배경이 참 이상했다. 화장실에서 살고 있는 모녀라니. 바깥세상은 전쟁이 일어나서 창문이 없는 화장실에서 일주일만 버티면 된다고 엄마는 말했고 그걸 지키고 있었다.
엄마는 매일 나가지만 주인공인 윤채는 나갈 수 없다.
종이책을 갖고 있으면 잡혀간다는 설정. 가정집에 두면 위험한 게 책이다.
굉장히 독특한 설정이다 싶었다.
윤채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중력을 사용해 오물을 밑으로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하수처리를 해 변기를 쓰고 있지만 다른 아이들은 전기로 분해해 바로 에너지로 전환하는 하수처리시스템을 쓰고 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똥을 싸는 만큼 전기를 아낄 수 있는 셈이다. (어젯밤, 집 전체를 흔들어 대던 재난문자의 알림 소리가 귓가에 윙윙 들리는 것 같다. 북한에서 보낸 삐라와 함께 오물이 발견됐다는 기사를 보고 정말 혀를 내둘렀다.)
엄마는 아빠의 책을 건네고 뒤에 아무것도 없는 비어 있는 페이지에 일기를 쓰라고 한다.
아빠 책 속에 적혀있던 '비블리온 39'에 가게 된 윤채는 그곳에서 엄마를 만난다. 이곳은 종이 책을 만들고 보관하는 반정부 조직의 39번째 지부였다.
이 소설이 독특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종이책을 왜 갖고 있으면 안 됐을까?
꼭 책통법을 만든 사람이 정치를 하고 있는 곳 같잖아.
부디 우리가 서로에게 서로의 다음 페이지가 되기를.
이 말이 참 와닿았다.
가족에게 다음 페이지가 될 수 있다면 그럼 또 한 권의 책이 탄생하는 것이니까.
다음은 정명섭의 <모험의 책>이다.
'아랑'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보고 반가웠다. 아주 예전에 아랑이라는 단어가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쓰였다. 그래서 핸드폰에 아랑이라는 이름으로 바꿔놓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런 단어를 전혀 쓰지 않고 있어 책 속에서 발견한 이 이름이 더 반가웠던 것 같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적힌 뜻은 또 다르다.
1. 소주를 곤 뒤에 남은 찌꺼기.
2. 굶주린 이리라는 뜻으로, 무엇에나 탐을 내는 사람을 이르는 말.
오호, 어떤 이야기의 소재로 써도 괜찮을 것 같은 명칭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면 핵전쟁 이후 바이커로 살아가는 아랑이 있다. 그리고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솔라시티'라는 곳이다.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을 탈출해 다른 곳으로 종적을 감춰 그를 찾아야 하는 임무가 생겼다.
그 임무의 목적은 그가 갖고 간 매뉴얼을 찾으려는 것이다. 기술자들 사이에서 전해져 오는 수리 방법을 적은 책으로 바로 '모험의 책'이었다.
여러 권의 SF소설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보통 사람들이 살고 있던 세상의 끝에는 다른 누군가의 권력이 시작되고 그 권력에 반하는 세력이 생겨 그 권력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될 때 사건이 일어났다.
솔라시티에서 도망친 당사자가 중요한 모험의 책을 갖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솔라시티를 운영하고 있는 시장의 권력을 흔들고 있다는 증거다.
아랑은 시장이 내린 임무를 무사히 행한다. 멧돼지족을 찾아 수석기술자에게서 모험의 책 사본을 받고 문신이 새겨진 그의 손가락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 대가로 엄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갈고리 손에 대한 정보를 받고 나서는 순간 알 수 없는 남자가 나타나 외친다.
우리는 지금 가짜 세상에 살고 있어. 그러니까 진짜 세상으로 찾아가기 위해서는 깨어나야 한다.
라고.
나는 이런 류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열린 결말. 좋다.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해야 하고 독자에게 불친절한 결론을 던지는 소설은 피하고 싶다. 이 단편은 여기까지.
마지막 단편인 전건우의 [귀서]는 제목에서와 같이 호러다. 귀신 들린 책이라니. 갑자기 팔에 있는 털들이 바짝 서는 것 같다.
어떤 커뮤니티에 호러를 기가 막히게 쓰는 사람이 나타난다. '전기수'라는 필명을 쓰는 그를 만나기 위해 쪽지를 보냈고 그 전기수는 작가를 찾아온다.
귀서를 들고 온 전기수는 작가에게 자신은 그 귀서에서 본 글을 각색해서 글을 썼고 판권도 팔았다고 하며 작가를 떠본다. 작가는 귀서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전기수는 그 귀서를 들고 자리를 뜨고 작가는 망설인다.
그때 교통사고를 당한 전기수의 책, 귀서를 가지고 작가는 집으로 향한다.
어쩌면 이런 플롯은 흔할 수 있다. 귀신 들린 책을 갖고 튀는 사람이 죽음을 맞는 그런 내용들. 하지만 이 소설은 서술하는 형태가 대화로 이루어져 있어 금방 소설에 빠져들게 되었다.
작가는 귀서를 손안에 얻은 후 그 책 속에 담긴 글을 소설로 써내 베스트셀러작가가 된다. 그 후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누나가 사고로 즉사하게 된다던지,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죽음을 맞은 후에도 그만두지 않고 책을 출간한다. 결국 어머니까지 뇌출혈로 사망하게 되자, 작가는 무당을 다시 찾아간다. 무당은 귀서를 태울 것을 조언하고 불을 붙인다. 귀서에 붙은 불은 작가와 무당에게도 붙고 화상을 입는다.
그리고 '귀서'라는 소설을 신작으로 내놓는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언제든지 올 수 있는 유혹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가 문제겠지만, 나에게 만약 거래를 권한다면 한 번쯤 수긍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덮자, 이런 글귀가 있다.
'책'속에선 모든 것이 가능하다. 사랑도, 모험도, 저주도.......
그렇다. 책 속에선 어떤 일이든 가능할 것이다. 내가 꿈꾸는 것, 이룰 수 없는 것, 또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도.
현실은 더하다고는 하나, 척박한 현실을 눈감고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책 속에서 만나고 싶다.
* SF동화 연재는 이제 끝이 났습니다. SF라고 하여 '스프'이야기라고도 하더군요. ㅋㅋ
괜찮은 SF동화가 나타나면 또 소개를 할게요.
다음 주부터는 생활동화를 중심으로 연재할 계획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