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같은 딸, 딸 같은 엄마
네가 되어 줄게, 꿈꾸는 소녀
나는 딸이 하나 있다.
물론, 아들도 하나 있다.
나는 딸이기도 하고, 딸도 있다.
누군가의 딸이기도 한 엄마, 그리고 그 마음을 이해하는 딸.
우연히 읽은 책들이 엄마와 딸이 서로 몸이 바뀌거나, 엄마의 꿈을 꾸게 되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였다.
워낙 유명한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의 신작 청소년 소설 [네가 되어 줄게]와 2023 대산창작기금 수상작인 백혜영 작가의 [꿈을 걷는 소녀]가 바로 그 소설들인데 두 편 모두 청소년 소설이다.
같이 합평모임을 하는 단심샘이 내가 쓴 동화를 읽으니 생각나는 청소년 소설이 있다며 추천해 준 작품이 바로 [꿈을 걷는 소녀]다.
이 작품을 읽고 나니 추천해 준 단심샘이 참 고마웠다. 그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아마 이 작품은 읽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양장본인 이 책표지에 오타가 있었는데 폐기되지 않고 그대로 나온 걸 보면 눈치를 못 챈 걸까?
(대산창작기금을 대상창작기금으로 표현을 해놨다. 온라인 서점의 사진은 수정된 사진이다.)
두 작품 모두 마음에 남는 작품이었다. 오타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먼저, 조남주 작가의 [네가 되어 줄게]는 엄마와 딸의 영혼이 바뀐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일본 영화 <비밀>을 연상케 하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내용이다.
2023년 현재의 이야기로 엄마 최수일, 딸 강윤슬이 1993년 때를 번갈아가며 이야기한다.
술에 취한 아빠를 데리러 갔다가 교통사고가 났고, 엄마와 딸의 몸이 바뀌었다. 바뀐 게 맞을까?
윤슬은 1993년의 중학생 엄마의 모습으로, 수일은 2023년의 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노트는 세로로 절반을 접어 빼곡히 쓴 덕분에 낭비한 공간이 거의 없었다. 글자 크기와 간격이 일정해서 무지 노트인데도 줄노트처럼 보였다. p50
이 부분을 읽는데 울컥했다. 최수일은 나랑 같은 또래이고 강윤슬은 내 딸과 같은 또래이다. 내가 학창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윤슬이 엄마의 세상으로 가 보는 모습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보냈던 학창 시절을 우리 딸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는 건 내 성격에 맞지도 않고. 돌아가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여기로 오게 됐는지 먼저 알아야 했다. 출구로 들어가면 입구가 나올 테니까. p60
판타지의 세계에서 입구와 출구는 같다.
이 소설 역시 들어온 입구로 나가야 한다. 윤슬은 그 출구를 찾게 될 것이다.
읽다 보면 엄마의 마음에 빙의됐다가, 딸의 마음도 들여다보게 된다.
이 작가는 정말 지난 82년생 김지영도 그랬지만 엄마로서의 삶과 딸로서의 삶을 잘 그린다. 읽다 보면 울컥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윤슬이에게 사랑을 주려 애쓰고, 동시에 엄마의 사랑을 받는 윤슬이를 질투하고, 그러면서도 내 노력을 멈추지 못했다. 사랑받는 일이 당연한 윤슬이가 부럽고 궁금했다. p66
소설 속 세계는 현실을 반영한 듯, 아닌 듯 경계를 넘나 든다.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은 윤슬과 엄마가 좋아하는 그림책이다. 엄마 수일이 윤슬의 몸으로 어린이집에 가 읽어주는 장면이 있다. 겉은 윤슬이지만 속은 엄마이니 얼마나 잘 읽어줄까? 아이를 보는 것도 베테랑처럼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윤슬이가 윤슬이로 돌아오지 못할까 봐 불안하면서도 윤슬이인 척 받는 사랑이 따뜻하다. 더 잘못되기 전에 되돌려야 한다는 조급함과 이대로 아주아주 잠시만 더 있고 싶다는 이기심이 끊임없이 서로를 침범하고 있다. p81
수일의 마음은 이러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다. 이 마음이 괜찮은데 다른 마음이 걸린다. 자신은 현 상황이 따뜻해서 괜찮기도 하지만 윤슬이를 영원히 보지 못할까 봐 걱정도 된다.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만 흐르는 건 아닌 것 같아.
미래의 일 덕분에 과거가 다시 이해되기도 하고,
현재가 아닌 미래를 기준으로 선택하기도 하고.
사람들은 사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살고 있지. p113
'비밀의 화원'이라는 노래가 나오자, 엄마는 이상은의 노래로, 윤슬이는 아이유의 노래로 받아들인다. 나는 두 노래 모두 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몰랐던 일들이 나이를 먹고 나니 예상이 된다. 그때는 의미를 몰랐지만 시간이 흐르면 차차 알게 되고 깨닫게 된다. 이것마저 나이가 들고 나니 드는 생각이다.
나는 소화기의 힘을 못 이기고 뒤로 밀리다 소화기를 꼭 붙잡은 채로 넘어져 바닥에 굴렀다. 바닥도, 계단도, 가장 앞에 서 있던 수학 쌤도 온통 흰 가루를 뒤집어썼다. 물론 나도. p120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이 80년 대생들의 학창 시절을 이해할까? 시험 성적이 떨어졌다고 떨어진 점수만큼 손바닥을 맞고 등수를 복도에 대자보를 붙이듯 공개를 하는 행위를 아이들은 과연 이해를 할까?
등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정말 수일의 말대로 난 ‘야만의 시대’에 살았구나.
이 소설에서 구세주는 바로 수일의 언니이자, 윤슬의 이모다. 이모는 30년 전에 윤슬을 만났다. 그리고 정확히 30년 후 윤슬의 몸에 있는 수일을 만난다.
이렇게 이어지다니.
소설가의 구성력에 감탄했다.
정말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딸에게 이 책을 추천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빌려온 책 중 재밌게 읽었던 책 이름을 말하며 그 책 보다 더 재밌다고 했더니 읽어보겠다고 가져갔다.
너도 이제 엄마와 한 배를 탄 거야. :)
다음 책은 정말 표지가 예뻐 계속 눈이 가는 책, 백혜영 작가의 [꿈을 걷는 소녀]다.
이 책은 몸이 바뀌는 게 아닌 '도플갱어'의 등장과 꿈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초판이어서 그런걸까? 뒤표지에도 오타가 있었고 책 중간에도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편집자는 정말 심장이 덜컹했을 듯.
새별이는 낯선 장소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 중 자신과 닮은 여학생을 발견하게 되고 도플갱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꿈인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 후로도 계속해서 꿈을 꾼다.
소꿉친구 마용진이 아라에게 고백을 받는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그 꿈 이야기를 마용진에게 하게 되는데 굉장히 당황해한다.
그리고 아라는 꿈 이야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잘 또(잘생긴 또라이)라는 별명 대신 미덕(미스터리 덕후)이라는 별명을 붙인 후 연휘와 더 가까워진다.
그 후로도 새별이는 자신과 닮은 여학생을 몇 번 더 보게 된다.
엄마와는 늘 이런 식이다. 잘 지내보려 할수록 자꾸 어긋난다. 대화하려는 시도 자체만으로 둘 다 기분만 상하고 마니까. p65
어떤 사고 이후 새별이와 엄마의 관계가 냉랭해졌다.
대화를 통해 어느 정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화면 밖에서 보는 내 생각이 그렇고 그 안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새별이는 할머니 집에서 엄마의 옛 앨범을 발견하게 된다. 그 앨범에서 발견한 사진을 통해 엄마가 갖고 있는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꿈과도 관련이 있다.
이 소설은 빙의나 몸이 바뀌지 않는다.
제삼자가 꿈을 통해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 새별이는 꿈속에서 엄마의 어린 시절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너에게 저 윤슬처럼 반짝이는 능력이 있는지도 몰라.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과거를 볼 수 있는 초능력 같은 거. p103
미덕 연휘는 새별이에게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하지만 새별이는 깜짝 놀라게 되고 뭔가 알고 있는 듯한 연휘에 대해 궁금해진다. [네가 되어 줄게]에서 나온 주인공의 이름이 나와 이건 운명 같은 책인가 싶었다.
다른 소설과는 다른 점이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페이지 하단에 각주를 달았다. 보통 소설 맨 뒤를 펼쳐봐야 하는 것에 비해 읽을 때 끊기지 않아 좋았다.
‘죽음의 고드름’ 같은 용어는 그냥 흘릴 수 있는 것이었으나 각주를 통해 ‘브리니클’이라는 정식명칭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새별이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다. 꿈에서 깨어나서도 그 꿈이 누구의 꿈인지 알 수 없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다리가 끊어져 떨어지고 버스는 구겨졌다. 바로 성수대교가 무너진 사건을 꿈속에서 본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도 잊은 것인지 이태원참사가 또 일어났다.
두 참사가 일어난 때 정부가 했던 절차도 같았다. 그렇게 일처리를 하는 두 정부(박근혜정부, 윤석열정부)가 참 밉다.
30년 전뿐이냐? 사고야 늘 일어났지. 몇 년 전에도 학생들 수백이 죽고, 얼마 안 지나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세상을 떠났잖아. 쯧쯧쯧, 자식 앞세운 그 부모 심정이 어떨꼬. p164
할머니의 말이 그냥 문장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사고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
자연스럽게 새별이는 성수대교 사고를 이야기한다. 정확한 내막을 알게 된 새별이는 엄마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싶어 한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얼마나 힘든 지 새별이는 알고 있다. 은별이의 사고로 인해 가족들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다.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대는 여론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뀐다. 어처구니가 없다.
엄마와 새별이는 어떤 행동을 할까? 과거를 잊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을까? 아픔을 간직한 가족이 용기를 내어 세상 밖으로 나가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엄마 곁에서 힘이 되어준 새별이가 참 기특하다.
사고를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일듷이 역사 속에 박제된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함께 기억해주고,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p258
엄마와 딸의 이야기 두 편이지만 전혀 다르다. 문체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다.
[네가 되어 줄게]가 익살스러운 맛이 있는 작품이라면 [꿈을 걷는 소녀]는 먹먹함을 뒤로 하고 용기를 내는 가족들의 이야기다. 거기에 청소년들의 사랑 이야기도 담겨 있다.
두 편의 청소년 소설 모두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