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남양주에 있는 실학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가기 전 배고프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추천해 준 <대너리스 카페>로 향했다.
마침 카페 앞에 주차 자리가 나서 무사히 차를 댄 후 입구를 찾았다.
풀잎 가득한 정면에 각종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치 숲 속에 있는 성 같았다. 푸른 숲을 헤쳐지나 문을 찾기까지 보물 찾기를 하듯 아이들과 그렇게 입구를 찾았다.
아이 역시 거대한 광경에 놀란 듯하다. 이런 카페는 처음이긴 했다.
속을 알 수 없는 겉모습에 압도되어 그래서 궁금해지기도 하는 그런 곳.
기대에 부응하듯 카페 안에 들어가서 그 스케일에 놀랐다. 커다란 창과 숲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예뻤다. 그리고 멋졌다.
창 밖으로는 강이 흘렀다. 바로 북한강.
넓디넓은 강을 가로지르는 요트들 덕분에 눈요기가 됐다.
3층까지 올라가 보았다. 예쁜 물품들이 많았다.
돌아온 후 검색해 보니 이곳은 2,3층이 갤러리카페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이 카페의 가장 큰 특징은 커다란 창이다.
통창 유리로 되어 있어 그런지 밖을 보는 게 즐거웠다.
그리고 그 앞에 자리한 사람들을 보는 게 행복했다.
소품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 게 보였다.
주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방학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았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천장이 높아도 크게 들렸다.
아이들과 함께 앉을자리는 쉽게 찾아 앉았다. 우리가 앉자마자, 갑자기 들어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벽에 액자가 붙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보니 액자가 아니라 창이었다.
오, 독특해. 벽돌도 특이하다 생각이 들었는데 그 사이로 마름모모양의 창이 정말 이 벽이 아니면 어울리지 않겠구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야외도 자리가 꽤 많았다. 멋진 북한강을 내려다보며 차를 마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도 아직 더운 여름은 에어컨 바람이 있는 곳이 제일이지.
이번에 읽은 책은 <불편한 편의점>, <어서 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의 표지를 그린 작가의 지망생 시절의 이야기인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 졌어]라는 작품이다.
익숙한 그림의 표지이구나 생각했던 참이었다.
그림에 대해서 몹시 문외한인 나에게 이 책은 궁금했던 곳을 마구마구 긁어준 책이다.
이 카페에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아이들은 그림은 그리고 만화책을 봤다.
그림을 좋아하는 행복이가 그린 그림을 본 후 이 책을 읽은 소감을 말해주고 싶었다.
펜으로 그린 듯한 그림, 그리고 너무 꾸미 것 같지 않은 그림을 좋아한다. 이 책에 실린 삽화들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그림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림을 곁에 두었던 그 모든 순간이 나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종이 위에 마음껏 만화를 베껴 그리던 그때,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던 그때,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계속 낙서를 하고, 사진을 찍고,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늘 미술 교양 수업을 듣고 혼자 미술관에 다니던 그때, 좋아하는 그림을 볼 때마다 설레고 화가들의 책을 찾아다니던 모든 순간들. 진득하게 그림을 배우거나 그린 적은 없지만, 그림을 사랑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p39
한 문단을 통으로 가져왔다.
그림을 그리게 된 작가의 심정이 글을 쓰게 된 내 심정과 맞물려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여서 그렇다.
얼마나 습작을 했을까?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이가 그림으로 돈을 벌어 살 수 있게 되기까지.
'언젠가 나도 사라진다. 그리고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살아 있는 동안만큼만 이라도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싶어.' p 65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미루고 산다. 언젠가는 할 거야, 이걸 다하고 나면 할 거야 하고 말이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이렇게 들고 나서야 후회를 한다. 그때 할걸. 하고.
나도 이제는 미루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쓰려고 한다.
반 고흐, 앙리 루소, 모지스 할머니등은 꽤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다. 다른 일을 하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거나, 그린 그림에 대해 비웃음을 샀다거나, 76세에 그림을 시작해 106세까지 활동을 한 사람까지 지금 뭔가를 시작하는 것이 결코 늦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존감이 올라간다.
나이, 학력에 따라 편견을 갖고 시작하는 대화들. 그런 대화들을 파괴한다.
알량한 잣대를 가지고 상대를 오만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이 참 안타깝다.
작가는 열심히 그린 그림을 SNS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 같다.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그림을 보니 정말 멋져 보였다.(위 우측 사진)
취미로 드로잉 수업을 듣고 그린 그림이라기엔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너무 멋져 보였다. (이 그림은 붓이 없어 화장할 때 쓰는 붓으로 그렸다고 한다.)
세상을 너무 많이 생각하다 보면 아무것도 그릴 수 없다. 아무거나 그리기 위해 세상을 너무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헤야 하는 것'에 눈치 보지 말고 현재의 자신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아닐까. p184
작가가 그림을 그리면서 겪었던 시행착오의 과정은 글을 쓰는 내게도 무난하게 적용되었다.
좌충우돌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무조건 그리듯 써야 했다.
작가는 그림 독학 시 도움이 되었던 경험들을 공유했다.
1. 좋은 그림을 스스로 탐구했다.
- 좋은 글을 발견하면 그 작가의 책들을 읽었다. 괜찮은 문장을 필사하고 소장하고 싶은 책을 구입했다.
2. 책을 주도적으로 선택했다.
- 꾸준히 작법서나 동화와 관련된 책을 봤다. 개요를 짜다가 막히면 좋아하는 동화를 펼치고 그 짜임새를 봤다.
3. 다양하게 시도해 본 것이 오히려 나중에 도움이 되었다.
- 어떤 문체가, 어떤 장르가 내게 맞는 글인지 몰라 이것저것 써보았다. 해요체로 써보기도 하고 청소년이 읽을 만한 글을 써보기도 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많이 배웠다.
4. 학원이나 학교를 다녔다면 다른 사람 스타일에 더 쉽게 영향받았을지도 모른다.
- 한겨레아동작가학교를 마친 후 다른 수업도 얼쩡거렸다. 동시합평, 동화 합평을 위한 수업도 들었고, 듣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동화를 공부한 지 1년이 채 안 됐다. 그래서 이 수업들이 굉장히 도움이 되는 편이다.
작가가 홍대에 있는 미술학원에 등록해 그림을 그리고 선생님에게 받은 피드백이 있다.
이 조언이 내게도 꽤 인상적이었다.
지금 그린 이런 초상화 그림이 50개 있으면 바로 개인전을 해도 돼요. 그림의 문턱을 너무 높게 볼 필요 없어요. 자기만의 것이 수십 개 있으면 그냥 그것으로 작가가 되는 거예요. p224
비슷한 이야기를 동화작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이미 등단했음에도 나와 함께 동기가 되어 동화 수업을 들었던 선생님이다. 그 선생님 역시 동화 50편만 써보라고 했다. 그러면 어느 정도 눈이 생기고 글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감사했다. 그 이야기를 작가의 스승에게도 듣고 있다.
역시 꾸준함과 노력이 동반해야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11년 동안 작가가 노력한 산물을 책으로 보고 있으니 내게 주어진 시간 역시 값지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그림들을 그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뇌를 했을까?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아무런 생각 없이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괜히 이리저리 재고하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도전하기가 더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일이든 10년이면 전문가가 된다고들 한다. 결혼 전 프로그래머로 10년 넘게 일을 하면서 그래도 남들이 알아주는 프로그래머가 되었고 팀을 이뤄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다. 함께 일했던 팀원이 다시 일하고 싶어 하던 설계자로 불리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지금 내가 하려는 글도 10년을 포기하지 않고 쓴다면 10년 후 작품 하나 내게 안겨 있지 않을까?
열심히 50편을 써봐야겠다.
그리고 10년 후의 나의 모습을 그리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