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를 열자
여름이 들어 있었다
그림자는 먼저 움직이지 않는 자
어떤 그림자는 생각해선 안 될 것을 생각하다가 다치곤 한다
노랑에 맞서는 여우팥처럼
털을 생각하다니
여름은 계절이 아니라 짐승이 아닐까
여름을 꺼내자 그림자만 남았다
그림자가 생각을 갖게 되거든
그림자에 못을 박아 두어야지
팔월의 그늘에 들어선 그림자는 더 두꺼워졌을까
녹아 버렸을까
그림자 없는 소년과 그림자뿐인 소녀가 서로를 발굴했다
한 겹씩 벗겨 낼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유물처럼 과거에 관해서만 말했다
그해,
두 입술은 아주 더디게 지워졌고
쌍니은처럼 닮아 갔다
똑같은 꼬리를 나누어 가진 우리는
바닥에 너무 오래 있어서 나는 법을 잊어버린 펭귄처럼 뒤뚱거렸다
서로에게 앞자리를 양보하듯 무릎을 꿇고서
상처는 아무는 게 아니라 노을처럼 저무는 거라고 바람이 말했던가
전생의 깊이를 재던 유목의 수호신이 말했던가
얘들아, 더 가난해져야지
경계마저 버리고 자유로워져야지
지층 깊숙이 울음을 파묻던 쌍니은은 그제야
그림자에서 그늘로 넘어갔다
꼬리에게 물려 본 사람은 안다
여름에서 하나씩 버리면
어른이 되지
그늘은 빛을 죽이는 꿈을 꾸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제 창조주를
기다림이 어두울수록 끄트머리가 헐거워지는 그늘의 실패
그날,
절반의 피조물
더 진해진 여름이 멸망하고 있었다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 선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