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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백 Nov 02. 2022

빵 나오는 시간

여인이 방을 나오는 시간은 빵들의 장례식 

너는 두 개의 창문 너머로 방을 본다 

부풀어 오를 대로 올라야 숨이 멎는 곡물의 뼛가루      


여인은 반죽이 모양을 배신할 때면 손바닥 우려낸 물에 방을 헹구곤 했다 

오븐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던 많은 밤들    

달에 간 엄마의 뒷면을 열어보듯 여인은 구경꾼의 공복을 팔아치울 것이다     


너는 포르투갈에서 살다 온 사람처럼 여인에게 말한다

저 두드러기들을 모두 살 테니 당신의 세 번째 얼굴을 주시오     


흙의 진절머리며

바람의 설왕설래며

물의 동안거며

불의 우격다짐 같은      


빵이 있던 자리에 이름만 남았다

빵이라 불리기 이전의 빵처럼 다소곳이       


여인의 세계는 팥도 계란도 이스트도 없다 여인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나중엔 우유도 설탕도 밀가루도 없다 맛을 버리고 북쪽으로 날아오르는 기러기 떼에 편승해 여인은 방을 떠날 것이다 재귀함수의 탈출 조건인 양, 마지막 얼굴은 계산대 옆에 남겨두고서     


무에서 유가 태어나는 우연과 

빈 고택에 누룩이 움틀 확률에 기대어  


텅이 가득 찬 빔에서 

멍이 분주한 함까지      


여인이 없어도 빵은 나오고 

방이 없어도 몰려드는 아랫목들은 일찌감치 누울 자리를 폈다        

너는 가라앉은 심장의 꼭지를 살짝 비틀어 미뢰를 창밖으로 흘려보낸다 젖은 말들을 

한 계절 부스러기도 아니면서 너는 눈먼 

종소리에 나부껴 시식을 외칠 때      


여인의 첫 번째 얼굴이, 지워진 얼굴이 

객석에 흥건하고     

여인 뒤로 소보로만 한 구멍들이 덩달아 따라 나온다    


커튼콜이 밀려 나오는 무렵에 

식욕들이 줄을 서는 벌건 대낮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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