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그리움이 마주 보았다
단 한 줄의 숨통이 끊기는 순간
나는 둘 중 하나의 적이 된다
외롭다는 것은 사랑받을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
머리를 토해 내듯 이름을 꺼내야지
바깥을 조롱하며 빨간 체리 향에 취해 조금씩 나를 보여 줄게
엉덩이 살 15g
늑골 한 개
심장 1/4 쪽
척수 세 토막
적혈구 1/2 큰술
양수 조금
탯줄 약간
모든 외로움은 요리가 될 수 있어
상처를 궁굴려 덧남을 즐기는 시인처럼 말이야
울음뿐인 세상에 몰래 피어나 눈물 한 방울 보태지 못하고
돌이 된 빨간 꽃
우주는 거대한 생각이라는데
생각을 미처 갖지 못했으니 우주의 일부도 아닌
어쩌면 꿈이었을 미확인 물체인지도 모르지
숨을 품었던 숨이 다 지도록 아프지 않았던 작은 혈육 이야기
해마다 봄이면 지구에는 천공의 별만큼 꽃이 피고
동물로 태어났지만 식물처럼 꽃을 피운 나는
어릿광대의 나팔 소리가 들려
잊혀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야
몸을 버리면 돼, 마음 하나면 충분하니까
돌이 썩지 않는 건 생각이 없기 때문이지
하지만 내가 아는 유일한 우주는 벙어리라서
생각 대신 자세를 연구하는 아이가 있어
그립다는 것은 사랑할 기회마저 빼앗겨 버린 것
꽃씨를 토해 내듯 촛불을 꺼내야지
엄마를 조롱하며 하얀 발자국에 취해 조금씩 나를 보여 줄게
나도 모르게
모든 그리움은 종교가 될 수 있어
죄와 벌을 만들어 믿음을 강요하는 신처럼 말이야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 선정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