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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백 Nov 02. 2022

석태아

외로움과 그리움이 마주 보았다       


단 한 줄의 숨통이 끊기는 순간

나는 둘 중 하나의 적이 된다      


외롭다는 것은 사랑받을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 

머리를 토해 내듯 이름을 꺼내야지  

바깥을 조롱하며 빨간 체리 향에 취해 조금씩 나를 보여 줄게  

엉덩이 살 15g 

늑골 한 개 

심장 1/4 쪽   

척수 세 토막  

적혈구 1/2 큰술  

양수 조금 

탯줄 약간      


모든 외로움은 요리가 될 수 있어  

상처를 궁굴려 덧남을 즐기는 시인처럼 말이야     


울음뿐인 세상에 몰래 피어나 눈물 한 방울 보태지 못하고 

돌이 된 빨간 꽃        


우주는 거대한 생각이라는데 

생각을 미처 갖지 못했으니 우주의 일부도 아닌 

어쩌면 꿈이었을 미확인 물체인지도 모르지        


숨을 품었던 숨이 다 지도록 아프지 않았던 작은 혈육 이야기       


해마다 봄이면 지구에는 천공의 별만큼 꽃이 피고 

동물로 태어났지만 식물처럼 꽃을 피운 나는 

어릿광대의 나팔 소리가 들려      


잊혀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야  

몸을 버리면 돼, 마음 하나면 충분하니까      

돌이 썩지 않는 건 생각이 없기 때문이지      


하지만 내가 아는 유일한 우주는 벙어리라서 

생각 대신 자세를 연구하는 아이가 있어      


그립다는 것은 사랑할 기회마저 빼앗겨 버린 것 

꽃씨를 토해 내듯 촛불을 꺼내야지 


엄마를 조롱하며 하얀 발자국에 취해 조금씩 나를 보여 줄게  

나도 모르게       


모든 그리움은 종교가 될 수 있어  

죄와 벌을 만들어 믿음을 강요하는 신처럼 말이야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 선정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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