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백 Nov 02. 2022

새우

여인이 처음 보는 장마를 데리고 왔을 때 

나는 흐르는 물에 한 스푼, 고아들을 풀어놓았다 

이것은 안의 문제      


뱃속에 식물이나 키워볼까      


기대하지 마, 점점 더 나빠질 거야     


쏟아진 비만큼 아기가 태어났으면 좋겠어      


허튼 마중 뒤에 이우는 독백

식탁을 물리고는 안쪽부터 무너져 내리는 

여인은 이제 불 꺼진 빨간 기계였다    

근친의 감옥을 허물고 추락하는 자유     


빨강은 모두 연애를 한다  

성가신 불면과 함께 마지막 축제를   

불 속에서 물 속에서       


작은 나들을 품고 더 작아진 나를 빚어온 내막의 두께도 모자라 모자라      


녹슨 버릇을 주워 담으며 붙임성 없는 나는  

다진 한숨 반 컵에 으깬 눈물 세 모금을 더해 유실물보관센터의 헌 가방처럼 삐딱하게 파란 공기를 견디고 있는 여인을 견디고 있었다 

누군가의 기후가 된다는 것 지진과 함께 흔들려 준다는 것       


베개의 무표정을 닮아가던 여인이 조금씩 투명해질 무렵  

나는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을 내다 버리듯 여러 겹의 서랍을 데리고 우르르 나갔다 

때마침 옥상에서는 무슨 비밀결사대인 양 십각목十脚目들이 와르르 뛰어 내리는데  

소실점의 시간이 와도 꽃잎 한 장 썩으면 그만인 것을 

밤은 너무 중요해서 달에게 맡겨둘 수가 없다      


매번 늦게 도착하는 둥근 선물을 손에 쥐고 

나는 나보다 작은 새벽별을 맴돌았다 그리고 돌아와 

여인 옆에 기울면       


밖은 멀쩡해?      


아무 일도 없어?     


식어가며 새우는 단맛을 흘린다 

오죽하면 아름다울까  

이전 01화 그늘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