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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동물들을 애도하는 미술 작품

브랜든 밸린지의 생태미술

by 와이아트



현대미술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작품이 순수한 미술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현대미술가들은 예술뿐만 아니라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새로운 조합을 찾아내고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것을 창작 동기로 삼는다. 그렇기에 미술 자체를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대 세계정세나 자본주의, 철학, 역사, 과학을 이해하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꼽히는 문제는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는 생각이 든다.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 환경에 큰 영향을 끼쳐 이제까지의 지질학적 시기였던 홀로세가 끝나고 새로운 지질시대가 시작됐다는 의미에서 사용된 것이다. 인류세는 곧 환경 문제를 뜻한다.


현대미술가들이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놓칠 리 없다. 이들은 기후위기가 가져온 지구상의 변화와 생명체들 사이의 관계를 미술의 주제와 내용으로 삼는다. 오늘은 환경을 주제로 작업하는 여러 예술가 중 브랜든 밸린지(Brandon Ballengée, 1974-)의 작품세계에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환경미술가이자 생물학자인 밸린지는 국내에는 잘 알려있지 않지만, 미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대표적인 예술가이다.


브랜든 밸린지, <지옥의 계절(Season in Hell)>, 2010-2012. ⒸBrandon Ballengée (출처: 작가 홈페이지)


밸린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지옥의 계절>을 꼽을 수 있다. 2010년부터 지속해온 <지옥의 계절> 프로젝트는 다쳐서 날개를 잃거나, 날개가 발달하지 못하고 세상에 나오기 전에 죽거나, 알수 없는 원인으로 야생의 둥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어린 새들을 스캔해 특수 디지털 색소 프린트로 출력한 작품이다.


작가는 최근 들어 새들이 더 많이 죽어간다는 사실에 주목해 이러한 작업을 진행했다. 생물학자이기도 한 밸린지는 현재 지구상에서 여러 종들이 멸종하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하는데, 특히 새들이 도심 속 높은 빌딩의 유리에 부딪혀 다치거나 전광판 구조물 때문에 길을 잃는 상황을 직시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작품으로 제작하고 있다.


브랜든 밸린지, <지옥의 계절(Season in Hell)>, 2010-2012. ⒸBrandon Ballengée (출처: 작가 홈페이지)


<지옥의 계절>이라는 제목은 랭보 시인의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1873)에서 따온 것이다. 랭보는 이 시집에서 천재적인 감수성과 함께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았는데, 밸린지는 이 시에서 영감을 받아 또 다른 시인과 함께 “Deadly Born Cry(치명상을 입고 태어난 존재의 외침)”라는 시를 지어 고통을 겪어 죽은 새들에 대한 애도를 표현한다.


브랜든 밸린지, <부재의 액자(The Frameworks of Absence)>, 2006- ⒸBrandon Ballengée (출처: 작가 홈페이지)


멸종된 새들에 대한 애도를 표현하는 밸린지의 또 다른 작품으로는 <부재의 액자>를 들 수 있다. 작가는 동식물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남긴 미술가들의 그림 중 지금은 사라진 동물들을 찾아내 아카이브로 만들었다. 그런데 사실 미국에서만 해도 어떤 종이 멸종되어가고 있는지 리스트를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고 한다. 집요한 조사 끝에 멸종된 동물들의 리스트를 얻어 옛 화가들의 그림을 재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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